그런데 이렇게 봄꽃에 탐닉하는 상춘(賞春) 행위가 실로 수천 년의 역사적 서사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전통이었음을 알려주는 전시가 지금 열리고 있다. <금상첨화 錦上添花_비단 위에 더해진 봄꽃> (서울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3월 5일~7월 31일) ‘아름다운 비단 위에 꽃을 더한다’(錦上添花)니, 만물이 소생하는 경이로운 계절을 표현하는 말로 이보다 더 적합한 말이 또 있을까.

이 전시를 특히 주목할 만한 이유는 상춘 전통이 미학적, 예술적으로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를 규명하는 보기 드문 기획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봄꽃은 찰나의 기간만 명멸한다. 비단 위에 갖가지 봄꽃을 때론 실제보다 더 실제처럼 수놓은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리 선조들이 지닌 아름다움에 대한 도저한 집념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전시는 의외의 작품으로 시작한다. 당연히 비단 위 화려하게 수놓은 자수 작품이 오프닝을 장식하리라는 예상을 여지없이 깨고, 봄꽃이 새겨진 고아(古雅)한 자기가 관람객을 맞는다. 도자 분야에 있어서는 명실상부 국내 최고(最高)의 컬렉션을 자랑하는 뮤지엄인 호림박물관의 정체성을 특별전에서도 잊지 않는다.

그러나 그저 봄꽃이 담긴 진귀한 도자 작품만 있다면 밋밋했을 터. 전시는 여기서 다시 한번 반전을 꾀한다. 바로 섬유공예 작가 최은정이 만든 봄꽃 작품을 도자에 접목한다. 섬유의 물성을 살려 꽃잎의 결을 구현한 최은정의 작품은 봄꽃이 새겨진 백자와 찰떡궁합을 자랑한다.
꽃을 품은 백자는 이 꽃을 보고 빚어진 것 같고, 꽃은 이 백자를 위해 피어난 것 같은, 과연 무엇이 먼저인지를 알 수 없게 절묘하게 어울리는 안성맞춤인 광경. 궁극의 예술은 시대를 초월해서 조화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봄은 꽃도 피지만, 만물이 소생한다. 생명이 다시 움트는 계절인 것이다. 전시는 그 당연하지만 놀라운 사실을 잊지 않는다. 경칩(驚蟄)은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 등 삼라만상이 겨울잠을 깨는 절기. 봄을 맞은 생명들의 역동적인 움직임도 놓치지 않았다. 특히 꼬리를 한껏 올리고 생명의 에너지가 가득한 물고기 연적은 이 전시를 본 예술애호가 BTS RM이 벌써 자신의 SNS에 올릴 만큼 매력적이다.

백자와 현대 섬유예술로 봄꽃을 살짝 미리 맛봤다면, 이제 본격적인 절정의 상춘(賞春)을 누릴 시간이다. 전시는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현란한 자수 예술의 세계로 이끈다. 근대 이전 섬유공예의 핵심은 방직(紡織)과 자수(刺繡). 그중 특히 자수는 밑그림이 되는 수본(繡本)을 놓고 천 위에 한 땀 한 땀 바느질하여 완성하는 인내의 예술이며, 완성까지는 헤아릴 수 없는 시간과 정성이 요구되는 축적의 예술이다.
대표적 규방 문화의 하나로, 여성 예술가들의 주도하에 전승된 자수 예술에는 사회적 역할에서는 소외됐지만, 일상 소품과 공간 장식, 그리고 의식주의 하나인 의복에 길상(吉祥)과 부귀영화(富貴榮華)를 투영하려는 여성들의 집념이 응축되어 있다. 세상은 ‘나를’ 인정해 주지 않아도, 자수를 통해 ‘나의’ 존재 의미를 되새긴 그녀들의 혼(魂)과 한(恨) 덕분에 우리는 오늘날 아름다운 자수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특히 홍인선이 1970년 완성한 <자수공작모란도 8폭병풍>은 56년이 흐른 작품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동시대적이다. 지금의 시선으로 봐도 ‘힙하다’는 표현이 절로 나올 정도. 공작과 모란이라는 부귀영화의 상징을 거대한 화면에 담대하게 배치한 구도, 그리고 마치 붓으로 그린 듯한 회화적 자수의 색감과 선이 어우러져 강렬한 시각적 에너지를 발산한다. 담대하고 거침없는 구도와 색감, 선이 굵으면서도 뇌쇄적인 느낌까지. 팝아트적 요소에 전통적 아름다움이 내재되어 눈길을 떼기 힘들다.
전시는 일상에서 가장 흔하게 쓰인 자수를 수놓은 수저집부터 자수 예술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궁중 혼례복 활옷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일상은 물론 최고의 예식까지 어디든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낸 자수와 그것을 구현한 여성들의 정신문화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봄바람도 저물고 꽃 역시 가버릴 테니 春風且暮又卷歸
부디 꽃을 대하는 데 망설이지 마시길 愼勿對花還草草
?이규보(李奎報, 1168~1241), 『동국이상국전집』 제2권
이번 전시는 봄이 다 지나고, 한여름까지 계속된다. 봄이 지나도 봄을 만끽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봄은 우리네 인생 같다. 너무나 순식간에 지나니까.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일장춘몽(一場春夢)처럼 지나는 봄을, 그리고 우리 인생을 누리고 즐기는 데 절대 망설여서는 안 된다.
최효안 예술 커뮤니케이터·가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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