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리, 온갖 소스로 식탁 위 낙서… 이런 게 혼돈의 미식

입력 2026-03-29 17:23   수정 2026-03-30 00:58



“설거지대로 향하는 빈 접시를 보면서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셰프가 10시간 공들여 만든 아름다운 요리도 포크나 스푼에 의해 몇분만에 사라지잖아요. 하지만 그래서 더 특별하죠. 이번 퍼포먼스를 통해 제가 느낀 감정을 온전히 느껴보셨으면 해요.”



에드워드 리 셰프가 접시 위에 소스를 플레이팅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그저 접시에 소스를 담는가 싶더니, 덜어 놓은 자주빛 소스를 숟가락으로 내리쳐 수직으로 낙하한 듯 연출하고, 캔버스에 붓질을 하듯 주황색 소스를 접시 위에 쓸어 바른다. 초록색 소스는 흘리듯이 흩뿌려 마치 한 폭의 추상 작품같은 모습을 완성했다. 아트 바젤 홍콩 14주년을 기념하며 14가지 소스를 활용해 지난 25일 진행한 그의 퍼포먼스 장면이다.



아트 바젤 홍콩 VIP 프리뷰가 시작된 날 밤, 홍콩 서구룡 문화지구의 현대미술관 엠플러스(M+)가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에드워드 리의 퍼포먼스에 참여하기 위한 이들이 뿜어내는 에너지였다. 스테이크가 꽂힌 포크를 하나씩 집어 든 200여 명의 관객들은 무대 위로 올라가 에드워드가 플레이팅한 소스를 찍은 후 맛봤다. 퍼포먼스에 참여한 관객은 200명이지만, 이 파티에는 총 800명의 인원이 모여 파티 분위기를 함께 즐겼다.

찍는 방식은 자유롭다. 그림을 그리듯 일직선을 그어도 되고, 모양을 내도 된다. 스테이크에 소스를 묻힌 후 다른 접시 위에 뿌리는 방식도 가능하다. 관객이 원하는대로 자유롭게 접시 위 소스들이 어지럽혀지면 그 자체로 작품이 된다.

이번 퍼포먼스는 '댐굿파티(THEM Good party)'라는 이름을 걸고 진행됐다. 댐굿파티는 IP 콘텐츠 기업 댐(THEM)의 첫번째 프로젝트로, 아트 바젤 홍콩에서 처음으로 관객과 만나게 됐다. 댐은 감탄이나 놀람을 표하는 영어 슬랭 'DAMN'과 같은 발음의 THEM을 사용해 언어 유희적으로 풀어낸 표기다. 댐굿파티는 다양한 문화권의 크리에이터와 아티스트가 서로 영감을 주고 받으며 관객과 함께 하는 자리다. 이들은 향후 파티뿐 아니라 식문화,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THEM' 시리즈를 선보일 계획이다.



그래피티의 자유분방함 닮은 퍼포먼스

에드워드 리 셰프는 예술 분야에 꾸준히 관심을 표현해왔다. 퍼포먼스 이후 아르떼와 만난 그는 17세기 바로크 미술의 대표 화가 렘브란트부터 20세기 추상표현주의의 선두자 잭슨 폴록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미술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는 총 세 권의 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소개하기도 했다. 에세이 <그래피티 버터밀크>에서 그는 그래피티 예술이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이번 프로젝트 역시 즉흥적인 행위와 자유로움으로 완성된다는 점에서 그래피티 예술과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 있다.



“저는 그래피티의 핵심이 ‘영구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항상 일시적이죠. 그리고 이 프로젝트는 음식이 얼마나 순간적인지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음식은 몇 초 만에 사라지고, 한 번 지나가면 영원히 사라지니까요. 사람들이 이 특별한 순간을 느꼈기를 바랍니다. 한 번 하고 나면 영원히 사라지는 그런 경험이요.”

그는 요리에 이야기를 담는다. 이민자로서 자신이 경험한 삶과 문화는 물론, 철학을 보여준다. 이번 작업에도 그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담겼다.

“셰프로서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었어요. 오늘 이 작업은 제가 혼자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레스토랑도 손님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듯이, 항상 공동체가 중요하죠. 오늘 제가 선보인 퍼포먼스 역시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듯이요. 그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수 홍콩 건축가도 참여




이번 이벤트를 위해 네 명의 크리에이터가 의기투합했다. 에드워드 리 셰프를 비롯해 건축가 오토 응, 미디어 아티스트 에디 강, 바텐더 김하림이 함께 했다. 오토는 침사추이의 문화예술공간 K11 뮤제아, 필립스 옥션 홍콩 사옥 등 굵직한 대형 프로젝트를 담당한 건축사무소 LAAB의 수장이다.

그의 팀은 길이 3.6m에 달하는 접시를 제작해 무대 위에서 100여 명의 경험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확장될 수 있도록 했다. 접시의 이름은 ‘하버 플레이트(Harbour Plate)’로, 홍콩인들에게 사랑받는 빅토리아 항구가 모티브가 됐다.

“이 접시에는 우리가 있는 위치와 구룡 반도, 홍콩섬이 표현돼 있어요. 엠플러스가 항구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이 풍경을 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토는 안성재 셰프의 레스토랑 모수 홍콩의 공간을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협업으로 그는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는 두 명의 셰프와 함께 호흡을 맞춘 건축가가 됐다.

“두 세프 모두 완벽함을 중요시하고 디테일에 매우 신경을 씁니다. 아이디어를 빠르게 떠올리고, 다듬어가며 아름답게 구현하죠. 어떤 면에서는 그들이 매우 시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저 역시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있어서 함께 즐겁게 일했습니다.”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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