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년 전의 페르시아를 닮아가는 미국 [배성빈의 워싱턴 인사이드]

입력 2026-04-13 08:40   수정 2026-04-15 13:57



인류 최초의 비극으로 알려진 아이스킬로스의 희곡 ‘페르시아인들’은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1세가 당시 압도적 전력만 믿고 오만함에 빠져서 전쟁을 일으켰다가 아테네의 좁은 살라미스 해협에서 궤멸되는 역사적 사건을 다룬 내용이다. 인간의 한계를 망각하여 자신의 힘만 믿고 닥쳐오는 위험도 보지 못하는 휴브리스(hubris)에 갇히게 되면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nemesis)의 처벌을 받게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가르칠 때 자주 인용된다. 2500년이 지난 현재 미국은 과거의 페르시아를 닮아가고 있다. 미국은 과거 페르시아였던 이란에 비해 비대칭적일 정도의 압도적 전술 우위를 가지지만 이번 전쟁을 쉽게 끝내지 못하고 있다. 휴브리스에 갇히는 걸까.

이란과의 전쟁 시작 후, 브렌트 유가는 배럴 당 최고 109.44달러까지 치솟았으며 미국 내 휘발유 값은 휴전 협상 소식에도 갤런 당 4.16달러를 기록하며 전쟁 이전보다 40% 상승했다. 이란이 중동지역 석유 유통의 숨통인 좁은 호르무즈 해협을 움켜쥐고 봉쇄한 탓이다. 중동전 장기화의 경제적 여파는 이제 미국 소비자에게 체감되기 시작했고, 불확실성과 경기 침체 신호가 국채 시장에서 확인되고 있다. 멀게만 느껴졌던 중동 분쟁이 이제 미국인의 생계를 직접 위협하며 일상으로 다가온 것이다. 미국 에너지 정보청(EIA)은 이번 달 말까지 이란 사태가 종식되더라도, 미국 평균 유류비는 연말까지 $3.70선을 상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종전의 영향이 물가에 반영되기까지 시차가 있다는 의미다. 전쟁은 끝날 수 있어도, 한 번 시작된 인플레이션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3월 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미국 인플레이션을 석 달 전 제시했던 3.0%의 기존 예측을 4.2%로 크게 상향 조정했다. 중간 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상반기에 있었던 초기 관세 인상의 영향이 소비자 가격에 부분적으로만 반영됐고 에너지 가격 상승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수입품에 대한 실효 관세율 하락 효과를 상쇄하는 것보다 더 커졌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인플레이션이 재점화되면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후보 지명자인 케빈 워시의 구상은 흔들린다. 그의 시나리오는 양적긴축(Quantitative Tightening)으로 Fed 자산을 줄이는 동시에 금리를 내려 실물경제를 부양하는 정책 조합인데 이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금리를 내리기 힘들어졌고 이런 상황에서 급하게 양적긴축 정책을 펼칠 경우 시장에 이중 타격을 줄 수 있다. 국채 공급이 늘어나 금리는 오르고 시중 유동성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편 Fed 이사이자 전 경제자문위원회(CEA) 의장으로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경제정책을 주도하는 스티븐 마이런은 “현재의 연방기금금리 수준(3.50~3.75% 범위)이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억누르고 있다”고 주장하며 100~150bp(1.0~1.5%p) 이상의 대폭적인 금리인하가 정당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관세가 환율 조정과 병행될 경우 인플레이션 효과를 제한할 수 있다”고 믿지만 현실에서 관세만큼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환율을 조정하지 않았고, 에너지발 물가상승과 관세발 물가상승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인플레이션은 더욱 심해지기만 했다. 따라서 그의 본래 계획대로 금리를 인하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이에 더해 중동분쟁으로 인한 불안심리는 시장에 직접 영향을 주어 채권 변동성을 나타내는 MOVE 지수가 상승했다. 결국 JP모간, 골드만삭스 등 월가 주요 기관들은 향후 2년 내 경기침체 확률을 30~35%로 상향조정했다. 이들이 우려하는 것은 단일 충격이 아니라 인플레이션, 고금리 장기화, 불확실성 및 재정 적자 확대가 함께 작동하는 복합 리스크다. 중동전의 경제적 여파가 점점 커지면서 트럼프 정부 경제정책의 타이밍과 실효성 여부가 전반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현재와 같은 경제적 균열이 정치적으로 어떤 영향을 줄지 이해하려면 유권자가 경제를 어떻게 판단하는지에 대한 실증연구를 살펴봐야 한다. Quinn & Woolley(2001)는 민주주의와 경제 성과의 상관 관계를 분석한 결과 비대칭성을 발견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유권자들은 경제성장에 대한 보상으로 투표할 때(여당에 투표)보다 경기침체에 대한 응징투표(야당에 투표)를 할때 3배 더 가혹하게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더 주목할 것은 유권자들은 성장률 자체보다도 변동성, 즉 불확실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경제 변동성(불확실성)이 증가할수록 집권여당을 응징하는 투표를 한다는 것이 여러 국가의 선거 데이터에서 확인됐다. 1964년과 2009년 갤럽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전쟁과 불확실한 경제 상황이다. 또 지난 60년간 주요 여론조사에서 유권자들은 대통령 및 중간선거에서 경제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이는 단순히 경기가 나쁘면 여당이 불리하다는 상식적 명제를 뛰어넘어 정부정책의 결과보다 국정운영 과정의 불안정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뜻이다. 현재 미국의 거시경제 환경은 유권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전쟁을 통해 불확실성에 기반한 경제 변동성이 지속적으로 커지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트럼프 정부는 왜 혼란을 자초했는가. 트럼프와 스티븐 마이런, 케빈 워시 이 세 인물의 발언을 종합하면 미국 행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보인다. 트럼프는 “모두가 들어와서 우리 것을 가져가려 한다(Everybody wants to come in and take from us)”며 세계가 미국의 부와 일자리를 약탈해 왔다고 말한다. 마이런은 2024년 11월 허드슨베이캐피털 재직 당시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은 글로벌 무역 및 금융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의 불균형한 몫을 부담해왔다(The United States has borne a disproportionate share of the costs of maintaining the global trading and financial system)”면서 대대적인 관세 적용을 통해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시는 이 프레임을 통화정책 영역에서 완성했다. 비대해진 연준 자산을 축소(양적긴축)하고 시장 기능을 복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 사람의 기조는 경제 이론적인 정합성보다는 지금까지 달러패권과 헤게모니의 비용을 미국이 혼자 너무 오래 치러왔으며 이를 재조정해야 한다는 단순한 정치경제적, 심리적 논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비용 재조정 논리와 모순은 경제정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는 비용 부담 없는 패권을 원한다. 미국의 주도로 만들어졌던 유엔 산하기관들로부터의 탈퇴, USAID 예산 감축으로 인한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 철수는 미국이 글로벌 리더십을 행사할수 있는 일종의 비용을 줄여 나가는 모습이다. 이런 조치는 장기적으로 미국의 글로벌 파워를 축소시킨다.역사적으로 패권 형성 및 유지는 패권국의 공공재 공급 능력과 그 비용 부담으로 가능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이란 전쟁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우방국들에게 참전을 요구했지만,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 도덕적 명분이나 공동의 이익에 대한 당위성보다는 경제적인 계산을 앞세워 비용 분담만 요구했기 때문이다. 관세와 방위비 분담로 압박받아온 동맹들은, 정작 필요한 순간 설득의 언어를 잃어버린 미국 곁에 쉽사리 설 수 없었다. 비용 부담은 타국에게 이전하고, 국제기구는 이득이 될 때만 참여하는 등의 행보는 책임은 지지 않은 채 영향력을 유지하겠다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오늘날 국제 사회에서 이런 미국의 모습은 곧 휴브리스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제공하던 안보, 개발 원조, 국제 기구 분담금 등의 공공재를 하나씩 거둬들이면서 국제 사회의 책임 분할만 요구할 때, 패권은 정당성을 잃고 결국 무너진다. 비용 부담없는 패권은 역사상 존재한 적 없기 때문이다.

크세르크세스는 살라미스에서 패배한 후에야 자신의 오만함을 깨달았다. 지금 미국은 국내외적으로 기로에 서있다. 국내에서는 인플레이션과 경기 불확실성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집권당을 위협하고, 국제 무대에서는 리더십이 퇴색하는 모양새다. 역사와 경제 지표는 네메시스의 복수를 경고하고 있다.

배성빈 대륙아주 미국전략본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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