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 3조 늘 때 증시엔 70조 '폭주'…은행 아성 넘보는 증권사

입력 2026-04-12 17:43   수정 2026-04-13 00:57

국내 금융산업의 ‘만년 조연’이던 증권사들이 명실상부한 ‘주연’으로 올라서고 있다. ‘한국판 골드만삭스 육성’을 표방한 자본시장통합법(현 자본시장법)이 2006년 제정된 이후에도 10여 년간 은행의 막대한 자본 규모와 수익성에 밀렸지만, 코스피지수 6000시대와 맞물려 은행의 이익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 증시 활황에 힘입어 다른 투자처에서 국내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머니무브 현상이 뚜렷해지는 추세다.

12일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올해 들어 국내 증시에 순유입된 자금은 지난 8일 기준 70조3100억원(주식형 펀드와 직접투자 자금 합산액)이었다. 주식 투자 열기에 불이 붙으면서 불과 한 분기 만에 ‘동학개미운동’ 절정기인 2021년 연간 순유입액(75조원)의 93% 수준까지 올라왔다. 업계에선 조만간 증시 순유입 자금이 역대 최대치를 경신할 것으로 보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의 요구불예금은 같은 기간 3조원 증가하는데 그쳤다.

증시에 유입된 막대한 유동성은 전통적으로 은행 영역인 기업 대출과 신용공여에서 증권사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이에 힘입어 증권사의 연간 순이익 규모가 은행을 앞지르는 사례도 나왔다. 지난해 한국투자증권은 업계 최초로 2조원대 순이익을 기록하며 농협은행(1조8139억원)을 추월했다. 5대 시중은행 대비 10대 증권사 순이익은 2024년 42%에서 지난해 57%로 높아졌다.

업계에서는 증권업이 위탁매매(브로커리지) 수수료 중심의 ‘천수답 영업’을 넘어 기업금융(IB), 자산관리(WM)를 아우르는 직접금융의 핵심이 됐다고 평가한다. 특히 기업대출, 회사채 매입 등으로 보폭을 넓히면서 10대 증권사의 순이자손익은 1년 새 5조6861억원에서 6조8135억원으로 19.8% 증가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증권사들이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생산적 금융의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정태적인 이자 수익 중심의 은행에서 역동적으로 부를 창출하는 자본시장으로 금융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라고 했다.
70兆 '머니무브 마법'…은행 순익 5% 늘때 증권사는 43% 껑충
IB·신용공여로 '돈버는 구조' 개선…10대 증권사 순이익 9조원 육박
증권업의 역사는 필연적으로 주가와 함께 움직인다. 국내 증권사의 첫 전성기이던 1980년대 3저 호황 때가 그랬다. 저유가·저금리·저달러에 힘입어 풍부한 유동성이 증시에 유입되자 대우증권, 동서증권 등이 급성장했다. 두 번째 전성기인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 당시엔 코스닥 열풍과 ‘바이 코리아’ 펀드 붐을 타고 현대증권, 미래에셋증권 등이 도약했다.

코스피지수 6000 시대가 열린 지금, 국내 증권업은 세 번째 전성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과거 호황과는 결이 다르다. 증권사들이 중개 수수료에 의존하던 ‘천수답식 사업구조’를 넘어 신용공여, 기업금융(IB) 등 ‘직접 자본 공급자’로 탈바꿈해서다.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키우기 위해 증권사에 자산운용, IB 영업 등을 열어준 2006년 자본시장통합법 제정 이후 20년 만에 국내 증권업이 금융·자본시장의 명실상부한 주인공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은행 위협하는 증권사 성장세
지난해 업계 최초로 순이익 2조원 시대를 연 한국투자증권이 대표적이다. 한국투자증권의 지난해 이익 구조를 보면, 순수수료손익(위탁매매·자산관리·상장주관 등)과 순이자손익(신용공여·기업대출 등)이 각각 1조4197억원, 1조1460억원이었다. 전년 대비 각각 28.7%, 43.7% 급증했다. 전통적인 수수료 기반 사업은 물론, 은행의 영역이던 이자 사업까지 동반 성장했다. 여기에서 판매관리비, 법인세 등을 뺀 한국투자증권의 순이익(2조134억원)은 지난해 처음으로 농협은행(1조8139억원)을 앞질렀다. 이 같은 성장세라면 올해 우리은행마저 제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10대 증권사로 범위를 넓혀도 성장세는 뚜렷하다. 지난해 이들 증권사의 순이자손익은 6조8135억원으로 1년 새 19.8% 증가했다. 순수수료손익도 9조2885억원으로 26.7% 늘었다. 수수료와 이자 사업이 고르게 성장하면서 지난해 10대 증권사의 순이익 총액은 전년 대비 42.5% 급증한 8조9730억원을 기록했다. 5대 시중은행의 순이익 증가세(15조7597억원·4.6%)를 압도하며 격차를 좁혔다.

증권사의 약진 뒤에는 증시로 자금이 쏠리는 ‘머니무브’ 현상이 있다. 그동안 증권사는 원금 보장과 연이율이 확실한 은행에 비해 수신 능력이 저조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코스피지수가 4000선을 돌파한 이후 은행 예금이나 가상자산 대신 주식시장에 돈을 넣는 투자자가 많아졌다. 곳간(고객예탁금)이 불어날수록 증권사는 한국증권금융을 통해 자금을 저렴하게 조달할 수 있다. 이렇게 확보한 자금은 개인 신용공여와 기업 대출 재원으로 활용하거나, 보수적인 은행권은 하기 어려운 회사채 인수, 모험자본 투자 등에 투입한다. 증시 활황이 기업 성장으로까지 이어지는 ‘자본 선순환’인 셈이다.
◇올해도 역대 최대 실적 전망
경영효율성을 의미하는 자기자본이익률(ROE)에서도 증권사들은 은행을 압도한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투자증권의 ROE는 17.9%로, 농협은행(6.8%)의 두 배를 웃돌았다. 농협은행이 26조원대 자본으로 1조8000억원을 벌어들일 때 한국투자증권은 11조원대 자본으로 2조원이 넘는 수익을 낸 것이다. 키움증권(16.6%), 삼성증권(12.5%), 미래에셋증권(11.7%) 등도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올해도 증권사들의 ‘실적 잔치’가 이어질 전망이다. 중동전쟁으로 코스피지수 변동성이 커졌지만, 여전히 증시 상승에 베팅하는 투자자가 많다.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올해 들어 국내 증시에 순유입된 자금은 지난 8일 기준 70조3100억원에 달했다. ‘동학개미운동’ 절정기이던 2021년 연간 순유입액(75조원)을 뛰어넘어 사상 최대치를 나타낼 전망이다. 증권사들은 발행어음과 종합투자계좌(IMA) 등을 통해 조달 창구를 넓히고 있다. 에픽AI에 따르면 올해 미래에셋증권 당기순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는 전년 대비 44.9% 급증한 2조3284억원으로 집계됐다. 키움증권(1조3990억원·48.5%), NH투자증권(1조2786억원·40.7%) 등도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선아/안상미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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