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스타내셔널이 보여준 진정한 어른의 길 [여기는 마스터스]

입력 2026-04-17 04:19   수정 2026-04-17 10:51




'명인열전' 마스터스 토너먼트(총상금 2250만달러) 2라운드가 열린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내셔널GC(파72) 2번홀. 2연패에 도전하는 로리 매킬로이의 티샷을 기다리던 기자의 등을 현장 직원이 톡톡 건드렸다. "마담, 모자를 똑바로 써주세요." 모자의 캡이 시야를 가려 뒤집어 쓴 것이 에티켓에 어긋난다며 바로잡아달라는 요청이었다.

오거스타 내셔널은 세계에서 가장 엄격하면서도 전통을 고집스럽게 유지하는 골프장이다. 1년에 단 한번, 일반인들에게 코스를 공개하는 '마스터스 주간' 8일 동안 패트런(마스터스의 갤러리들을 이르는 말)들은 코스안에서 절대 뛰어서는 안된다.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를 가져갈 수 없고 사용하는 장면이 적발되면 즉시 퇴장조치된다. 코스 곳곳에 추억의 공중전화 부스가 설치돼있는 이유다.



이 원칙은 예외없이 적용된다. 역대 메이저 챔피언 자격으로 특별초청된 1989년 디오픈 우승자 마크 캘커베키아(미국)조차 지난 9일 클럽하우스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모습이 적발돼 집으로 돌아가야했다.

대회장 안은 완벽한 아날로그로 운영된다. 그 흔한 전광판 하나 없이 리더보드는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이름과 숫자를 바꿔낀다.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스코어를 확인할 수 없기에 다른 홀 결과는 패트런들의 함성으로 유추해야 한다. 대회 자체에 집중하게 하려는 뜻이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하나"싶은 생각에 "다소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종라운드가 열린 12일, 이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매킬로이의 아멘코너 플레이를 지켜보다가 13번홀(파5)에서 투온에 성공한 모습까지 보고 기사 마감을 위해 돌아섰다. 1타 차이로 골프 역사가 새로 쓰여질 수 있기에 매킬로이의 버디 여부는 그 순간 모든 골프팬들의 관심사였다.



13번홀 그린 상황이 궁금해 견딜 수 없던 그때, 뒤편에서 우뢰같은 함성이 터져나왔다. 헐레벌떡 근처에 있던 다른 홀 리더보드 앞으로 갔다. 기자를 비롯한 수십명의 패트런이 지켜보는 가운데 직원이 매킬로이의 숫자를 12에서 13으로 바꿨다. 순간 옆에 있던 다른 패트런들과 환호하며 짜릿함을 공유했다. 디지털 기기가 제공하는 수많은 노이즈에 관심을 뺏기지 않고 경기 그 자체에 집중하는 골프대회의 원형이 이런 것이구나, 머리를 한대 강하게 맞은 느낌이었다.

전통에 대한 집요한 집착은 '꼰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마스터스 주간 동안 보여주는 다음세대를 위한 지원과 투자는 오거스타내셔널이 '진정한 어른'임을 보여준다. 마스터스 주간은 대회 전 토요일, 세계 각국에서 가장 뛰어난 여자 아마추어들이 참여한 '오거스타 내셔널 여자 아마추어 대회' 결선으로 시작한다. '금녀의 구역'이었던 오거스타 내셔널이 여성 인재들에게 최고의 코스에서 경쟁할 기회를 준다. 여자골프 강자인 제니퍼 컵초, 로즈 장(모두 미국) 등이 이 대회 우승자다.

이어지는 일요일에는 미국 전역의 골프 꿈나무들이 참여하는 '드라이브 칩 앤 퍼트'를 연다. 악샤이 바티아는 이 대회 우승자 출신으로, 2024년부터 3년 연속 마스터스에 초청받는 톱랭커로 성장했다. 대회 개막 전날인 수요일에는 출전 선수들이 가족, 지인들과 함께하는 '파3 콘테스트'로 가족의 가치를 되새긴다.



미래에 대한 투자는 본대회 기간에도 확인됐다. 올해 1, 2라운드에서 전년도 우승자 매킬로이는 US아마추어 오픈 우승자 메이슨 호웰과 같은 조에서 경기했다. 호웰은 비록 커트탈락했지만 "제 우상과 함께 경기했다는 것 자체가 제게 정말 특별했다"며 "저 역시 로리처럼 골프를 즐기고, 미소를 잃지 않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프로선수가 되고싶다"고 밝혔다. 매킬로이 역시 "호웰은 이틀간 제가 저지른 수많은 실수를 직접 목격했다. 좋은 스코어를 내기 위해 반드시 완벽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 보았길 바란다"고 애정어린 조언을 했다.

아마추어 호웰은 그랜드슬래머 매킬로이와의 라운드로 그 어느 곳에서도 얻을 수 없는 배움을 얻었을 것이다. 미래 세대에 대한 지지와 투자가 있기에 오거스타 내셔널의 고집은 꼰대가 아닌 진정한 어른의 길이 되고 있다.

오거스타=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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