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한글로? 영어로?…그건 아티스트에게 맡겨라 [더 라이프이스트-홍재화의 매트릭스로 보는 세상]

입력 2026-08-24 12:00  

K팝 한글로? 영어로?…그건 아티스트에게 맡겨라 [더 라이프이스트-홍재화의 매트릭스로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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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장면, 한 달 사이
2026년 봄, K-POP 업계에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두 장면이 거의 동시에 나타났다. 3월27일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BTS: The Return』에서 리더 RM은 스튜디오에서 "우리 음악이 앞으로도 한국어가 주(主)가 되는 프로젝트로 남을 수 있겠느냐"며 영어 가사 비중이 너무 커진 점을 우려한다. 슈가도 한국어 파트를 더 늘리자고 제안한다. 반면 레이블 측은 글로벌 도달성을 강조한다.

한 달도 지나지 않은 4월13일, 미국 캘리포니아 인디오의 코첼라 무대에서는 정반대 광경이 펼쳐졌다. 9년 만에 완전체로 오른 빅뱅 공연에서 지드래곤과 태양이 힙합 메들리로 열기를 끌어올린 뒤 대성이 혼자 무대 중앙에 섰다. "웰컴 투 마이 유니버스"를 외친 뒤 그가 꺼내든 카드는 트로트 두 곡, '한도초과'와 '날 봐, 귀순'이었다.

LED 전광판에는 '안녕하세요 대성입니다', '날 봐 귀순'이 한글로 대문짝만하게 떴다. 영어 가사는 단 한 줄도 없었다. 그런데 객석에서 외국인 관객들이 '룩앳미 귀순(Look at me Gwisun)'을 떼창으로 따라 불렀다. "이 노래를 어떻게 알고 따라 부르냐"고 대성이 되물을 정도였다.

한쪽에서는 세계 최대 팝 그룹의 리더가 "한국어를 지키자"고 고민하고, 다른 쪽에서는 데뷔 20년 차 가수가 세계 최대 음악 페스티벌에서 트로트를 뽕짝 그대로 꽂아 넣는다. 이 두 장면 사이 어딘가에 한류의 미래가 있다.
논쟁은 10년째 헛돈다
<h2>K팝의 언어 논쟁은 새로운 게 아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빌보드 2위에 올랐을 때도, BTS의 '다이너마이트'가 전곡 영어로 빌보드 1위를 찍었을 때도, "한국어를 지켜야 한다"와 "영어로 가야 더 팔린다"가 맞부딪혔다. 10년째 같은 자리를 맴도는 건 질문 자체가 틀렸다는 뜻이다.</h2>음악평론가 김성대는 "한국어를 제거하면 'K'의 정의 자체가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영어 가사를 썼다는 이유로 'K팝'이 아니게 되는가? 그것도 아니다. 블랙핑크가 2026년 2월 발매한 EP 『DEADLINE』은 선공개 싱글 '뛰어(JUMP)' 하나만 빼고 전곡이 영어 가사였다. 첫날 146만 장을 팔아 K팝 걸그룹 최고 기록을 경신했고, '빌보드 200' 8위에 올랐다.

한국어로 만들어도 팔리고, 영어로 만들어도 팔린다. 결론은 단순하다. 팔리는 것과 언어는 생각만큼 직결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도 왜 이 논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창작의 문제를 비평가와 기획사 임원이 '위에서 내려다보며' 규정하려 들기 때문이다.
중국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시선을 돌려보자. 중국 콘텐츠는 왜 한류처럼 세계로 못 나가는가. 인구도 자본도 역사도 충분하다. 그런데 K팝처럼 글로벌 가수나 『오징어 게임』 같은 드라마는 나오지 않는다. 이유는 뚜렷하다. 중국은 창작자를 틀 안에 가둔다. 검열이 있고, 소재 제한이 있고, 위에서 정해준 기준이 있다. 기술적으로는 잘 만들어도 세계인의 마음을 흔드는 작품이 안 나온다. 마음을 흔드는 작품은 항상 '뜻밖의 자리'에서 터지는데, 그 뜻밖의 자리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이 지난 20년간 한류를 만든 진짜 비결은 단 하나다. 창작자에게 틀을 씌우지 않은 것. 『기생충』, 『피지컬: 100』, 『케이팝 데몬 헌터스』, 『오징어 게임』 은 위에서 지시해 만든 작품이 아니다. 창작자 개인의 괴상하고 집요한 집착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K팝의 언어도 같은 원리다. 한국어로 하고 싶다면 한국어, 영어로 하고 싶다면 영어, 트로트로 코첼라에 나가고 싶다면 트로트로 내보내야 한다. 그게 한류가 작동해온 방식이고, 앞으로도 유일하게 작동할 방식이다.
대성의 '기세'가 증명한 것
<h2>다시 코첼라로 돌아가서. 대성의 트로트 무대가 왜 화제가 됐는가. 실력이 뛰어나서? 트로트가 세련돼서? 둘 다 아니다. 한 네티즌의 댓글이 정답에 가깝다. "영어 가사 한 줄 없이 한글 전광판으로 기강을 잡아버리는 모습에 전율이 돋았다." 다른 사람은 이렇게 썼다. "트로트는 기세다."</h2>
기세. 이 한 단어가 핵심이다. 대성은 "코첼라에서는 이런 음악이어야 한다"는 통념을 따르지 않았다. "외국 관객이 트로트를 알 리 없다"는 걱정도 무시했다. 그저 자기가 가장 잘하는 것, 가장 하고 싶은 것을 꺼냈다. 바로 그게 먹혔다.

BTS 진도 트로트 스타일의 '슈퍼 참치'로 빌보드 월드 디지털 송 세일즈 1위를 찍은 적 있다. 트로트라는 '가장 한국적이고 가장 촌스럽다고 여겨지는' 장르가 가장 세련된 글로벌 무대에서 먹힌다. 낯설기 때문이다. 낯선 것이 차별화를 만들고, 차별화가 기억을 남긴다. 대성이 만약 "코첼라니까 영어 힙합을 해야지"라고 생각했다면 그 무대는 잊혔을 것이다. 힙합을 더 잘하는 미국 래퍼가 바로 옆 스테이지에 있으니까.
글로벌 팬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레이블이 영어를 고집하는 논리는 단순하다. "영어로 해야 틱톡 알고리즘에 걸리고 빌보드에 진입한다." 2018년에는 맞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2026년에는 낡은 가설이다.

BTS의 새 앨범 『ARIRANG』이 나오자 수록 14곡 전부가 애플뮤직의 '가장 많이 조회된 가사' 목록에 올랐다. 외국인 팬들이 한국어 가사를 번역해가며 외운다는 뜻이다. 듀오링고(Duolingo)의 미국 사용자 중 한국어 학습자는 최근 1년 사이 약 22% 늘었고, 한국어능력시험(TOPIK) 응시자는 사상 처음으로 50만 명을 넘었다.

레이블은 "영어가 아니면 외국 팬이 못 따라온다"고 가정하는데, 외국 팬은 "한국어여도 상관없다, 우리가 배워서 따라갈게"라고 이미 행동하고 있다. 시장과 기획사의 시차가 몇 년째 메워지지 않는 셈이다.
풀어놓으면 알아서 한다
한국어냐, 영어냐의 논쟁은 이제 졸업해야 한다. 이 질문을 놓고 10년째 토론하는 동안 답은 현장의 창작자들이 계속 내놓고 있었다. BTS는 한국어로도 영어로도 빌보드 1위를 해봤다. 블랙핑크는 전곡 영어 앨범으로 146만 장을 팔았다. 대성은 한국어 트로트로 코첼라를 흔들었다. 진은 '슈퍼 참치' 하나로 세계 차트를 찍었다.

이들 모두가 답이고, 이들 모두가 서로 다른 답이다. 그게 한류의 진짜 힘이다. 하나의 정답이 없다는 것.

우리가 할 일은 창작자들에게 "이래야 세계에서 먹힌다"고 가르치는 게 아니다. 중국처럼 "이런 것만 해야 한다"고 틀을 씌우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멍석을 깔아주고, 자유를 보장하고, 망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러면 젊은 창작자들이 알아서 한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류가 여기까지 온 진짜 이유는, 우리가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강요하지 않아서다. 코첼라 무대에서 '날 봐, 귀순'을 외치는 대성의 얼굴, 그 자신감과 능청, 한글 전광판의 당당함. 저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다. 언어가 아니라, 언어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창작의 자유 그 자체 말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홍재화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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