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이건희 컬렉션’에 열광하는 건 단지 작품이 좋아서만은 아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재력과 안목을 지닌 인물이 직접 고른 수집품이라는 사실이 후광을 더한다. 한 사람이 확고한 기준으로 핵심적인 작품을 골라 쌓은 컬렉션은, 마구잡이로 긁어모은 작품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가치를 지닌다.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다음달 28일 개막하는 ‘인상주의를 넘어: 디트로이트 미술관 걸작전’에 나오는 소장품 대부분이 그런 컬렉션에서 나왔다.디트로이트라는 이름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자동차, 쇠락 그리고 파산이다. 2013년 미국 역대 최대 규모의 지방자치단체 파산을 겪은 기억이 워낙 강렬해서다. 하지만 이 도시에 있는 디트로이트 미술관(DIA)은 그 이미지와 정반대다. 1885년 설립돼 소장품 6만5000점을 갖춘 이 미술관은 ‘미국 6대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힌다.
쇠락한 산업 도시에 이런 탁월한 미술관이 존재하는 건, 디트로이트가 미국 자동차산업의 수도로 전성기를 보내던 시절에 탁월한 안목을 가진 관장과 기증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DIA를 소개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설명은 ‘빈센트 반 고흐 작품을 가장 일찍 구입한 미국의 미술관’이다. 주인공은 1924년부터 1945년까지 미술관을 이끈 빌헬름 발렌티너 관장. 그는 고흐, 에드가르 드가, 클로드 모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같은 화가들이 아직 미국에서 거장 대우를 받지 못할 때 선제적으로 작품을 구입했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 그가 1922년 뉴욕 플라자호텔 경매에서 고흐의 ‘자화상’(1887)을 4200달러에 낙찰받은 것이다. 지금 가치로 약 7만5000달러(약 1억1000만원)로, 미국 공립 미술관 최초의 고흐 작품 구입이었다. 당시 “왜 이런 걸 비싸게 사느냐”는 말을 들었던 이 작품은 지금 가치가 수백억원으로 추정된다.
DIA의 컬렉션을 결정적으로 바꾼 사람은 로버트 허드슨 태너힐(1893~1969)이다. 디트로이트 최대 백화점 J.L.허드슨의 창립자 집안 출신인 그는 막대한 가문의 재산을 물려받아 미술 수집에 평생을 바쳤다. 그는 매년 유럽의 미술 중심지를 돌며 작품을 사들였다.

태너힐은 탁월한 안목으로 시대를 앞서갔다. 지금은 세계 어디서나 폴 세잔, 앙리 마티스, 파블로 피카소가 거장 대우를 받지만 1930~1940년대 보수적인 도시 디트로이트에서 이들의 작품은 역시 “이것도 미술이냐”는 말을 듣곤 했다. 하지만 태너힐은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들을 샀다. 결과적으로 이는 탁월한 ‘저가 매수’로 판명됐다.
1969년 세상을 떠나며 태너힐은 556점의 작품과 55만달러를 DIA에 기증했다. 생전에 기증한 475점을 합치면 총 1000점이 넘는 컬렉션이다. 이번 서울 전시의 핵심작 상당수가 여기서 왔다. 고흐의 ‘오베르의 우아즈 강가’, 마티스의 ‘양귀비’, 피카소의 ‘안락의자에 앉은 여인’과 ‘광대의 얼굴’, 르누아르의 ‘앉아 있는 목욕하는 여인’과 ‘흰 피에로’, 모딜리아니의 ‘남자’와 ‘모자를 쓴 청년’, 세잔의 ‘목욕하는 다섯 사람들’과 ‘생트빅투아르산’ 등이다. 전시장에 적힌 작품 설명에서 ‘로버트 H 태너힐 유증’이라는 문구를 유심히 살펴보자. 예술을 사랑한 수집가, 태너힐의 탁월한 안목이 이 전시의 뼈대를 구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잘나가던 시절의 디트로이트시가 시 예산으로 직접 사들인 작품도 상당수다. 마티스의 ‘창문’(1922년 구입), 드가의 ‘녹색 방의 무용수’, 헤켈의 ‘여인’, 페히슈타인의 ‘나무 아래에서’ 등이 대표적이다.
성수영 기자
디트로이트 미술관 걸작전은 지난 27년간 총 3400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은 국제 전시 기획사 몬도모스트레가 한국경제신문과 협력했다. 5월 28일부터 8월 23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린다. 현재 얼리버드 티켓을 판매 중이다. 성인 정가(2만3000원) 대비 약 35% 할인된 1만5000원으로 7월 22일까지 입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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