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29일 증시에서 삼성SDI 주가는 연초 대비 170% 이상 치솟은 71만2000원을 기록했다. 메르세데스-벤츠로부터 약 10조원 규모(업계 추정)의 신규 수주를 확보하며 누적 수주액 30조원을 돌파했다는 소식과 함께 1분기 영업손실(1556억원)을 시장 전망치보다 1000억원 넘게 줄인 ‘어닝서프라이즈’가 기폭제가 됐다. LG에너지솔루션도 43만원대를 회복하며 시장의 기대감을 키웠다.
하지만 실적을 뜯어보면 사정은 다르다. LG에너지솔루션의 1분기 영업이익 중 미국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보조금 기여분은 80%를 웃돈다. 사실상 보조금에 의존한 ‘수익의 착시’다.
주가 100만원 시대의 안착 여부는 보조금이 아닌, 중국의 공세를 뚫어낼 자생력을 증명하느냐에 달렸다. 이제는 고성능 배터리가 아니라 시장이 원하는 ‘적정 배터리’를 누가 더 빨리 공급하느냐의 싸움이다.
나아가 AI 데이터센터의 전력을 책임지고 자원을 무한 순환시키는 ‘에너지 솔루션 플랫폼’으로의 진화 여부가 K배터리의 최종 승부를 가를 전망이다.
시장의 훈풍은 엉뚱한 곳에서 불어왔다. 중동 분쟁 여파로 유가가 리터당 2000원 선을 돌파하자 전기차의 경제성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유럽자동차제조협회(ACEA)에 따르면 올 1분기 유럽연합(EU) 주요국의 배터리전기차(BEV) 등록 대수는 전년 동기 대비 29.4% 급증했다. 고유가가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의 벽을 강제로 허문 모양새다. 문제는 이 ‘부활의 과실’을 한국이 아닌 중국이 독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SNE리서치가 집계한 올해 1~2월 비(非)중국 시장 내 한국 3사 합산 점유율은 28.4%로 전년(31.7%) 대비 3.3%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중국 CATL은 같은 기간 점유율을 30% 위로 끌어올리며 1위 자리를 꿰찼다.

고유가에 직면한 유럽 소비자들이 ‘가성비 모델’을 찾으면서 한국이 고집해온 값비싼 삼원계(NCM) 대신 중국산 LFP(리튬인산철)와 나트륨배터리 장착 차량으로 쏠린 결과다. 미국 시장 보조금 수익에 안주하는 사이 실제 수요가 폭발한 유럽에서의 ‘라인업 공백’이 뼈아픈 실책으로 돌아온 셈이다.
다만 국내 기업들이 LFP 양산을 본격화할 2026~2027년경에는 중국이 이미 에너지 밀도를 극대화한 진화형 LFP나 나트륨배터리로 시장점유율을 고착화할 가능성이 커 한국의 추격자 전략이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유럽 소비자는 더 이상 1회 충전 주행거리 600km라는 ‘스펙’에 집착하지 않는다”며 “일상적인 도심 주행에는 400km면 충분하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LFP의 가격 경쟁력이 NCM의 에너지 밀도 우위를 압도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올해 1분기 유럽 신규 전기차 중 B·C 세그먼트(소형·준중형)의 LFP 채택 비중은 70%에 육박한다. 테슬라 모델3 RWD와 폭스바겐 ID.3는 물론 최근 유럽 베스트셀링카로 등극한 스텔란티스의 e-C3까지 모두 중국산 LFP 셀을 채택했다.
K배터리가 하이니켈이라는 기술적 순혈주의에 갇혀 있는 사이 시장의 주도권은 이미 ‘가성비’로 넘어갔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가 부담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KOMIS)에 따르면 리튬 가격은 지난 4월 28일 기준 kg당 20.77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1월 14달러대까지 추락했던 가격이 넉 달 만에 40% 이상 급등한 것이다. 리튬 가격이 20달러 선을 회복한 것은 2023년 11월 이후 2년 5개월 만이다.
배터리 업계는 통상 판가 연동 계약을 맺지만 원재료 가격 상승분은 3~6개월의 시차를 두고 반영된다. 그사이 배터리사는 치솟은 원가 부담을 온전히 떠안아야 한다. 시장의 눈은 이미 리튬의 한계를 넘어선 ‘포스트 리튬’으로 향하고 있다.
주민우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나트륨전지(NIB)는 리튬이온전지(LIB)와 구조가 유사하면서도 가격 경쟁력은 압도적”이라며 “현재 60달러/kWh 수준인 LFP 셀 가격과 비교해 NIB는 2030년 40달러, 2045년 30달러까지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에너지 밀도가 낮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나트륨의 풍부한 매장량과 저가화 가능성이 ESS(에너지저장장치)와 저가형 EV 시장의 판도를 바꿀 핵심 변수라는 분석이다.

중국 CATL은 이 틈을 타 ‘리튬 권력’ 무력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4월 27일 중국 ESS 솔루션 업체 하이퍼스트롱과 체결한 3년간 60GWh 규모의 나트륨이온배터리 공급 계약이 대표적이다.
NH투자증권은 2035년 기준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나트륨전지가 18%, 전고체전지가 5%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리튬이온 시장을 빠르게 잠식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전 세계적 전력 수요 폭증으로 급성장 중인 ESS 시장에서 LFP가 갖는 절대적 우위를 고려할 때 저가형 라인업의 부재는 한국 배터리 업계의 미래 수익성에 치명적인 공백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기업들도 대응에 나섰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7년 나트륨 전지(UPS, 납축전지 대체용) 양산을 시작으로 2030년 황화물계 전고체전지까지 라인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삼성SDI도 2027년 황화물계 전고체전지 양산을 목표로 기술 리더십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저가형 시장의 물량 공세에 맞서 압도적인 수익성을 보장하는 하이엔드 시장에서의 기술 초격차를 유지해 마진율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주 애널리스트는 “향후 배터리 제조사의 성패는 적기에 다양한 폼팩터 대응 능력을 확보하느냐에 달렸다”며 “LFP 시장 개화 당시의 실책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선제적 포트폴리오 다변화가 시급하다”고 짚었다.

중국의 물량 공세와 자원 무기화에 맞설 K배터리의 최후 반격 카드는 ‘순환경제’다. 광산이 없는 한국에 폐배터리는 사실상 유일한 자급 자원이다.
에코프로가 포항 캠퍼스에서 구현 중인 ‘클로즈드 루프(Closed Loop)’ 시스템은 환경 보호를 넘어 원가 경쟁력을 결정짓는 자원 안보의 핵심이다. 폐배터리에서 니켈과 리튬을 97% 이상 회수해 다시 양극재 공정에 투입하는 이 모델은 신규 광산 채굴 원료 대비 제조 원가를 대폭 낮추는 효과가 있다.
NH투자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NIB와 전고체전지 등 차세대 전지의 상용화가 임박한 시점에서 배터리 리사이클링의 경제성은 더욱 부각될 전망이다.
특히 LFP는 회수 가치가 낮아 폐기물 처리에 비용이 발생하는 반면, 한국이 주력하는 NCM은 수명이 다해도 그 자체가 고가의 자원이라는 분석이다.
시장에서는 유럽의 환경 규제가 강화될수록 리사이클링 기술을 확보한 한국 기업들의 원가 방어력이 중국산 LFP 대비 우위에 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규제 환경도 한국에 유리한 국면으로 흐르고 있다. 2027년 시행되는 EU 배터리 규정은 재활용 원료 함량 선언을 의무화하는 ‘배터리 여권제’ 도입을 골자로 한다.
이는 사실상 탄소배출량이 많은 중국산 광물에 대한 비관세 장벽이다. 리튬 추출 과정에서 막대한 탄소를 내뿜는 중국산 신규 광물보다 국내에서 고도화된 리사이클링 공정을 거친 원료가 유럽 시장 진입에 훨씬 유리하다.
결국 리사이클링은 단순한 캠페인이 아니라 리튬과 니켈 가격이 요동칠 때마다 수익성이 흔들리는 취약한 구조를 끊어낼 대안이다. NH투자증권은 향후 배터리 제조사의 성패가 적기에 다양한 폼팩터 대응 능력을 확보하는 것과 더불어 리사이클링을 통한 원가 주도권 선점에 달렸다고 봤다.
2030년 폐배터리 배출이 본격화되는 시점까지 ‘지상의 광산’을 선점하는 자가 미래 배터리 시장의 공급망 주도권을 거머쥐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목해야 할 지점은 전고체와 같은 기술적 초격차라는 환상이 아니라 당장의 수익성을 방어할 LFP 양산 속도와 리사이클링 밸류체인의 결합을 통한 실질적인 원가 통제력이다. 미국 보조금은 국내 배터리 기업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보다 단기 실적을 방어하는 수단에 가깝다.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 결과에 따른 ‘트럼프 리스크’가 현실화해 IRA 보조금이 폐기되거나 축소될 경우 현재의 수익 착시는 즉각적인 경영 위기로 전환될 수 있다.
2027년 이후 보조금 규모가 축소되고 중국의 차세대 배터리 물량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쏟아지기 시작하면 현재의 수익 구조는 유지되기 어렵다. K배터리의 위기는 점유율 하락 자체보다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라인업 부재와 비즈니스 모델의 경직성에서 기인한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업계는 향후 배터리 제조사의 성패는 하이니켈 위주의 기술 우위가 아니라 나트륨과 전고체 등 다양한 폼팩터에 대한 적기 대응 능력과 리사이클링을 통한 자원 자립도에 달렸다고 본다.
제조 하청 기지를 넘어 전력망 전체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에너지 솔루션 플랫폼으로의 진화가 시급하다. 2030년 폐배터리 시장이 본격화되는 시점까지 자원 공급망을 확보하고 중국의 물량 공세를 뚫어낼 자생력을 증명하는 것이 숙제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