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대문이요? 저희는 볼꾸(볼펜 꾸미기), 말랑이가 먼저 생각나요."
지난 25일 오후 4시경 서울 종로구 동대문 문구·완구 거리에서 박모씨(24)와 구모씨(24)는 구매한 '말랑이'를 보여주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완구거리는 주말 명동을 방불케 할 정도로 인파가 붐볐다. 매장 앞 매대마다 2030 여성들이 몰려 '말랑이'와 '키캡 키링' 등을 만져보면서 제품을 비교했다.
동대문 완구 거리 주 고객층이 어린이·단체 손님에서 2030 여성으로 바뀌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볼꾸'와 '말랑이'가 유행한 영향이다. 온라인에서도 동대문을 언급할 때 옷·패션보다는 볼꾸·말랑이와 같은 완구 관련 키워드가 상대적으로 많이 언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문객도 1년 전과 완구거리 주 소비자층이 들라진 걸 실감했다. 이날 1년 만에 완구거리를 찾은 방문객 김서연 씨(30)는 "완구거리는 동묘 갔다가 살짝 들려보는 정도였는데, 지금은 아닌 거 같다"며 "SNS에서 말랑이로 여기가 자주 언급되는 걸 알았지만 그 영향이 큰 거 같다. 데이트하러 왔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놀랐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상점 앞 매대에는 '릴스 인기템 구름빵 스퀴시 1차 2차 완판' 등 SNS에서 유행한 제품을 강조하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동대문을 찾는 2030 여성의 발걸음은 '단순 소비'보다 '콘텐츠 경험'에 가까웠다. SNS에서 볼꾸, 말랑이 성지로 동대문이 화제 되면서 '동대문 하루 코스' 등 체험형 콘텐츠가 잇따라 공유되고 있다. 박모씨는 "동대문에 와서 사는 과정이 하나의 콘텐츠"라며 "말랑이는 인터넷으로도 시킬 수 있지만 인스타 보니 직접 만져보고 비교하면서 고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나만의 완벽한 말랑이를 찾는 재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기준 인스타그램 '동대문' 해시태그 게시물은 292만개를 넘었다.
이 같은 변화는 데이터로도 확인된다. 인공지능(AI) 트렌드 분석 전문 기업 뉴엔AI의 분석 플랫폼 퀘타아이(Quettai)에 따르면 '동대문' 언급량은 올해 1분기 기준 전년 동기 대비 38.26% 증가했다. 15만8535건에서 21만9194건으로 늘어났다.
다만 세부 키워드를 보면 흐름은 엇갈린다. ‘패션’과 ‘옷’ 언급량은 각각 1.63%, 4.18% 감소했다. 실제로 동대문 의류상가는 비어가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동대문 상권의 집합 상가 평균 공실률은 12.8%로 서울 평균 9.3%을 뛰어넘었다. 의류 도소매를 중심으로 하는 대형 상가인 맥스타일, 굿모닝시티는 공실률이 80%에 달한다.
반면, 볼꾸, 말랑이, 키캡 등 완구 관련 키워드는 각각 43만11000%, 779.07%, 6981.58% 폭증했다. 분석 채널은 카페, 블로그, 커뮤니티, 인스타그램, 엑스(X·구 트위터), 유튜브, 지식인으로, 지난해와 올해 1분기 데이터가 비교 분석됐다.

올해 1월 화제 됐던 '볼꾸' 성지 동대문종합시장 액세서리 상가 또한 이날 2030 여성들로 붐볐다. 1분기가 지나도 '볼꾸' 열기가 식지 않은 것이다. 이날 액세서리 상가를 찾은 김모씨(28)는 "친구랑 왔는데 정신없어서 진이 빠지더라"며 "재밌긴 했는데 사람 많은 거만 빠지면 좋겠다. 아직도 사람 많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소비의 본질이 기능에서 경험으로 변하는 것"이라며 "옷은 기능이 중요한 상품으로 동대문은 기능적 소비 공간이었다 예전에는 제품을 구매하는 데 가격 대비 가치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경험 대비 가치가 중요시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 교수는 "동대문이 상품 중심 시장에서 경험과 콘텐츠를 생산하는 플랫폼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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