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로는 단순한 교통 인프라를 넘어 부동산 지형도를 재편하는 핵심 축이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개통이 가시화하면서 집값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바뀌고 있다. 한경닷컴은 노선별 개통 효과와 역세권·비역세권 간 가격 격차, 거래 흐름 변화를 데이터와 현장 취재로 짚는다. 철로를 따라 달라지는 집의 가치와 시장 재편의 실체를 검증할 예정이다 [편집자주]
"한마디로 신세계가 열린 거죠. 서대문구까지 원래는 지하철을 타든 광역버스를 타든 편도로 1시간30분 이상 걸렸어요. GTX 들어오고 나서는 환승까지 포함해도 1시간 안으로 서울에 도착해요. 비용이 부담스러워서 매일 타지는 못하지만, 급할 때 이용할 수 있어서 든든하죠." (일산 동구에서 서대문으로 출퇴근하는 30대 직장인 A씨)
일산은 1990년대 초 분당화 함께 화려하게 역사를 시작한 1기 신도시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후 경기 남부권을 중심으로 주요 일자리가 집중되면서 일산은 수도권 집값 상승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왔다. 한때 '가장 성공한 신도시' 자리를 두고 다투던 분당과의 자산 격차는 이제 회복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 도심을 관통해 강남까지 빠르게 연결되는 GTX-A 노선은 일산에 단순한 교통망 확충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오랜 시간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일산 부동산이 GTX 철길 소리에 기지개를 켜면서, GTX 노선이 일산의 집값 계급장을 다시 쓰는 반전의 기회가 될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GTX-A 노선이 가져온 시간 단축은 파격적이다. 킨텍스역을 기준으로 서울역까지는 17분이 소요된다. 기존 지하철 3호선 대화역이나 주엽역 등에서 GTX-A 노선으로 갈아탈 수 있는 대곡역을 기준으로 하면 서울역까지는 단 12분이 걸린다.
이러한 '철길 프리미엄'은 이미 가격으로 증명되고 있다. GTX-A '킨텍스역'을 도보로 이용할 수 있는 '킨텍스원시티'는 고양시 내에서 독보적인 집값을 형성하며 일산 집값의 천장 역할을 하고 있다.
'킨텍스원시티2블럭' 전용면적 84㎡는 지난 3월 13억75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2016년 분양 당시 5억원 중반대였던 가격이 10년 만에 2배 이상 오른 것이다. 일산에서 보기 드문 '신축'이라는 점과 GTX 노선의 힘이 결합한 결과다.
반면 재건축 선도지구로 지정된 '후곡4단지 금호한양' 전용 83㎡는 지난 2월 5억8800만원에 거래되는 데 그쳐 격차를 보였다. 다만 원시티 역시 여전히 전고점인 17억원에는 못 미치는 상황으로, 현지에서는 상승 여력이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킨텍스원시티' 내에 있는 A+킨텍스 부동산 공인중개업소의 안영숙 대표는 "일산 부동산 시장이 워낙 오랫동안 조용했기에 매수를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도 있지만, 삼성역까지 노선이 연결돼 '강남 출퇴근 시대'가 입증되면 기존 최고가를 넘어설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며 "실제로 최근에는 파주나 김포, 부천 등 인근 지역에서도 이쪽으로 집을 보러 많이들 온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GTX-A 노선의 진정한 위력은 전 구간 개통 이후에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일산 내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서울 주요 업무지구로의 접근성 개선은 주거 가치를 결정짓는 핵심적인 변수이기 때문이다.
오는 6월에는 각각 분리 운영되던 '파주 운정~서울역' 구간과 '수서~동탄' 구간을 잇는 '서울역~수서역' 구간이 연결될 예정이다. 삼성역은 복합환승센터 건립 지연으로 당분간 무정차 통과하지만, 이 구간이 연결되면 일산(킨텍스역)에서 강남권인 수서역까지 23분이면 도착한다.
GTX-A 킨텍스역이 도보권인 일부 단지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일산시민이 버스를 타고 킨텍스역으로 가거나 대곡역에서 갈아타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강남 20분대' 진입은 시장에 엄청난 파급력을 미칠 전망이다.

다만 이러한 교통 호재가 집값에 온전히 반영되기 위해선 결국 '재건축'과 테크노밸리 등 자체 일자리 조성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일산은 1기 신도시 중 재건축 진행 속도가 가장 느린 축에 속하며, 선도지구 지정 이후에도 눈에 띄는 실행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GTX 효과'를 실제 집값 상승으로 치환할 실행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연구소장은 "일산 신도시는 인프라와 주거 쾌적성 면에서 분당이나 과천에 뒤처지지 않음에도 시세가 저렴하다"며 "경기 남부권의 절반 가격도 안 되는 수준으로 뛰어난 주거 환경을 누릴 수 있다"고 짚었다. 이어 "GTX-A 노선이 완전히 연결되면 교통 편의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서울뿐 아니라 화성과 동탄 등 경기 남부의 주요 일자리 지역과의 접근성도 극대화된다"며 "10년 이상 장기적 관점에서 새로운 주거 상품 가치가 창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김 소장은 일산 신도시 재건축과 관련해선 "현재 가장 큰 걸림돌은 약 5억원에 달하는 추가 분담금을 감당하기 어려운 낮은 집값"이라며 "전반적인 시세가 킨텍스 급으로 상향 평준화돼 사업성이 확보되는 시점이 일산 재건축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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