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쓸어담는데 환율은 왜 1500원?

입력 2026-05-22 17:56   수정 2026-06-02 15:58


미스터리다. 원·달러 환율 얘기다. 국내 기업들이 역대급 규모의 달러를 수출로 벌어들이는데, 환율은 1500원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나 보던 숫자다. 올해 1분기 경상수지 흑자는 작년 같은 기간의 네 배에 달했다. 인공지능(AI)발(發) 슈퍼호황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환율이 지속되자 전문가들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22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517.2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지난 15일부터 6거래일 연속으로 1500원을 뚫었다. 올 들어 환율이 1500원 위에서 장을 마친 것은 이날까지 18거래일이다. 금융위기 당시에도 2008~2009년 2년을 통틀어 14거래일에 불과했다. 국가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전날 0.2265%포인트를 기록했다. 금융위기 때의 최고치 6.99%포인트(2008년 10월 27일)와 비교해 30분의 1 수준이다. 고환율이 국가 리스크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환율은 한국 기업의 달러 창출력과도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한국은 1분기 누적으로 737억8000만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냈다. 작년 1분기(194억9000만달러)의 거의 네 배다. 예전 같으면 환율이 급락했어야 할 수준이다. ‘무역수지 흑자=원화 강세’라는 공식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경제학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 판이다.


왜 이럴까. 시장 전문가들은 이제 상품 수지(수출-수입)가 아니라 자본 흐름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인의 해외 투자에서 외국인의 한국 투자를 뺀 ‘금융계정 순자산’은 1분기 654억2000만달러에 달했다. 경상수지 흑자와 맞먹는 달러가 해외로 빠져나갔다는 뜻이다. 연기금과 개인의 해외 투자가 급증하는 것은 고령화에 따른 구조적 변화다. 자의 반 타의 반 미국에 투자해야 하는 기업들이 달러를 쌓아놓는 현상도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고환율이 고착화할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 이유다.

여기에 차익 실현에 나선 외국인이 올해 들어서만 100조원어치가 넘는 주식을 순매도하며 환율을 밀어 올리고 있다. 중동 전쟁 장기화, 유가 급등, 미국 국채 금리 발작, 엔화 약세 등 대외 변수도 하나같이 원화에 불리한 것뿐이다.

더 미스터리한 건 이상할 정도로 차분한 한국인이다. 전반적으로 위기의식이 느껴지지 않는다. 외화 자산을 보유한 국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4분기 한국 순대외금융자산은 8856억달러에 달했다. 미국 주식은 환율이 올라서 좋고, 국내 주식도 불만을 제기하기에는 크게 올랐다. 문제는 물가다. 본격적으로 금리가 상승하기 시작하면 취약계층부터 무너질 것이다. 환율은 우리 경제의 모든 것을 함축한다.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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