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티슈’와 ‘패러디’[김우균의 지식재산권 산책]

입력 2026-05-30 19:52  

[지식재산권 산책]

‘파스티슈(pastiche)’는 통상 예술·문학·음악 분야에서 다른 예술가나 특정 시대의 스타일을 모방한 작품 또는 여러 작품의 요소를 혼합하여 만든 창작물을 의미한다. 유럽연합(EU) 정보사회지침은 ‘캐리커처, 패러디 또는 파스티슈 목적의 이용’이라면 복제권 및 공중전달권(우리 저작권법상 공중송신권 유사 권리)이 제한된다는 조항을 두고 있는데 파스티슈의 위 의미를 생각해보면 왜 ‘파스티슈 목적의 이용’이 저작권 제한사유가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실제로 EU 정보사회지침은 파스티슈에 대한 정의조항도 두고 있지 않다.

그런데 최근 유럽사법재판소(CJEU)는 다른 사람의 음악(음반) 중 약 2초 분량 리듬 시퀀스를 임의로 전자적으로 복제(샘플링)해 연속 루프로 반복 사용한 사건에 관해 파스티슈의 의미와 적용기준을 처음으로 구체화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유럽사법재판소는 파스티슈의 요건과 적용 기준에 대해 첫째, 새로운 창작물이 하나 이상의 기존 저작물을 환기(evoke)하여야 한다고 했다.

둘째, 기존 저작물과 뚜렷이 구별(noticeably different)되어야 한다고 했다.

셋째, 기존 저작물의 저작권으로 보호되는 특징적 요소를 (샘플링을 포함한 방식으로) 이용한 것이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넷째로는 기존 저작물과 인식 가능한 예술적 또는 창작적 대화(artistic or creative dialogue recognisable as such)를 형성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넷째 기준에서 명시한 ‘창작적 대화’란 기존 저작물에 대한 스타일의 명시적 모방(stylistic imitation)이나 오마주(tribute), 유머적 또는 비판적 관여(humorous or critical engagement)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유럽사법재판소의 위와 같은 판시는 미국과 우리나라 저작권법상 공정이용 판단을 위한 네 가지 요소 중 ‘이용의 목적과 성격(the purpose and character of the use)’ 요소에 관한 ‘변형적 이용(transformative use)’에 대한 판례, 특히 ‘패러디’에 관한 판례들을 떠오르게 한다.

미국과 우리나라 법원은 기존 저작물을 이용한 목적과 성격이 ‘변형적(transformative)’이라면 공정이용으로 평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보고 있는데, 특히 우리 법원은 “그 이용이 원저작물을 단순히 대체하는 수준을 넘어 새로운 표현, 의미, 메시지 등을 나타내도록 변형한 것인지, 원저작물과는 구별되는 별개의 목적과 성격을 가지는지, 원저작물을 변형한 정도가 2차적 저작물 작성에 필요한 수준보다 더 높은 정도에 이르렀는지”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특히 미국 연방대법원은 ‘패러디’가 공정이용으로 인정되려면 원저작물에 대한 논평, 비평이어야 하고 원저작물에 새로운 표현, 의미, 메시지를 부가하는 ‘변형적 이용’이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파스티슈는 일응 패러디와 유사한 개념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럽사법재판소는 앞서 본 EU 정보사회지침의 저작권 제한 조항(Article 5(3)(k))에서 파스티슈와 함께 규정되어 있는 패러디에 관하여 이미 양자를 구별하는 판시를 한 바 있다.

유럽사법재판소는 패러디의 두 가지 요건으로서 첫째는 기존 저작물을 환기하면서도 그와 뚜렷이 다를 것(to evoke an existing work while being noticeably different from it), 둘째는 유머 또는 조롱의 표현일 것(to constitute an expression of humour or mockery)을 제시한 바 있는데, 위 첫째 요건은 파스티슈와 동일하지만 둘째 요건은 구별된다.

파스티슈는 패러디에서 요구하는 유명 또는 조롱의 표현일 것이라는 요건 대신에 ‘기존 저작물과 인식 가능한 예술적 또는 창작적 대화’를 요건으로 삼고 있는데, 이는 더 넓은 범위의 창작적 관여를 포괄할 수 있는 구조라고 볼 수 있다.

유럽사법재판소 판결은 이처럼 파스티슈의 적용요건과 기준을 명확히 하고 더 넓은 범위의 창작적 관여를 저작권법 안에서 적법하게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파스티슈에 해당하더라도 저작물의 통상적 이용과 충돌하지 않고 권리자의 정당한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않는 경우이어야만 저작권 침해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점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김우균 법무법인(유) 세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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