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산업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지형의 변화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전망에 따르면, 글로벌 데이터센터의 총 전력 소비량은 2024년 약 460TWh에서 2030년 1000TWh를 넘어설 전망이다. IEA는 이 기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증가분의 약 절반을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가 충당할 것으로 분석했다. AI 인프라는 24시간 중단 없는 전력 공급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1차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0%를 상회하는 전력 구조를 가지고 있어, 지정학적 리스크나 화석연료 가격 변동이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 제조업의 전력 비용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기 쉽다. 이에 따라 전력 공급의 안정성 확보는 단순한 에너지 전환 문제를 넘어 국가 통상 및 안보 거버넌스 차원의 주요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제조·인프라·해양 서비스의 집약체, '산업 플랫폼' 해상풍력
이러한 상황에서 해상풍력은 대형화가 가능한 재생에너지 공급원이자 조선·철강·건설·해저케이블 산업 등 국내 주요 산업 분야와의 협력이 가능한 새로운 먹거리로 검토된다.
발전 비용의 단기적 관점에서는 태양광이나 육상풍력이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선택지로 분류되기도 한다. 반면, 해상풍력은 바다의 풍황 특성 상 태양광보다 발전 효율이 높은 편이며, 육상 부지 확보 제약이 적어 단지 자체를 대형화할 수 있다는 물리적 특성을 지닌다.
산업 파급효과의 정량적 수치를 살펴보면, 최근 국내 해상풍력 사업의 비용은 MW당 약 80~100억 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이를 대형 상업 단지의 표준 규모인 500MW로 환산하면 한 프로젝트당 약 4~5조 원 안팎의 인프라 투자가 일어나는 구조다. 이러한 자본 투입은 국내 터빈 기자재, 특수 선박, 철강, 전력기기, 해저케이블 및 지역 항만 인프라의 수요로 이어질 수 있으며, 완공 후 수십 년간 지속되는 유지보수 과정에서 선박 운항 및 부품 교체 등 장기적인 지출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또한 해상풍력만이 제공할 수 있는 대규모 재생에너지 전력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같은 반도체 기업, LG화학, 롯데화학을 포함한 주요 화학 회사, 나아가 철강 및 자동차 등의 분야에 점점 더 까다로워지고 있는 국제 탄소 배출 규제로부터 수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대안이 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해상풍력은 개발사 단독으로 완결되는 산업이 아니다. 입찰 이전부터 국내 터빈 제조사, 해저케이블 업체, 특수선 운영사 등 다양한 공급망 기업들과 사업 계획을 함께 구체화하는 과정이 선행되며, 프로젝트의 성사 여부는 이들 전체의 사업 기회와 직결된다. 해상풍력의 산업적 가치가 개별 프로젝트를 넘어 국내 산업 생태계 전반과 맞닿아 있는 이유다.
선진국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해상풍력의 전략적 가치를 먼저 간파한 국가들은 이미 정부가 나서서 중장기적인 제도적 지원을 진행 중이다. 세계 최초로 해상풍력 단지 건설·운영을 시작한 덴마크, 유럽의 재생에너지 강국 영국, 그리고 아시아에서 해상풍력단지 보급이 가장 빠른 대만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다. 조 단위 선투자를 감행하는 민간 사업자에게 안정적인 장기 수익 흐름을 보장하는 차액계약제도(Contracts of Difference)와 같은 제도를 마련해, 글로벌 자본과 공급망이 자국 시장으로 유입되는 구조를 일찌감치 설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제도의 파급력은 입찰 규모가 클수록 커진다. 터빈 제조사, 해저케이블 생산업체, 특수 설치선 운영사 등은 충분한 수주 파이프라인이 보장될 때 비로소 전용 공장과 설비에 대한 자본 투자를 결정할 수 있다.
영국 에너지산업협회(Energy UK)에 따르면 지난 1월, 영국의 7차 입찰(AR7)에서 8.4GW 규모의 해상풍력 프로젝트가 단일 라운드에 확정되자, 영국 산업 생태계 전반에 220억 파운드(약 40조 원)의 민간 투자가 유입되고 7000개의 숙련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추산됐다. 대규모 입찰이 단순히 전력 설비를 확충하는 것을 넘어, 산업 생태계를 자국 내에 고정시키는 지렛대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미래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인프라, 이제는 행동할 때
결국 AI 시대의 산업 환경은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전력 인프라의 체급에 의해 좌우되는 양상을 보인다. 수입 연료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완화하고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국내 공급망이 참여할 수 있는 청정에너지 기반을 넓히는 것은 향후 첨단 융합 산업 부문의 경쟁력과 연결되는 과제다.
해상풍력은 국내의 제조업 및 중공업 역량과 풍부한 해양 자원을 연계할 수 있는 선택지이자 이들의 미래 먹거리 분야 중 하나로 꼽힌다. 데이터센터 확대로 전력 수요 지형이 급변하는 현시점에서, 해상풍력이 가진 대규모 전력 공급 능력과 산업적 전후방 효과는 향후 국가 전력 믹스 다변화 전략에서 주요한 검토 지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성혜 한경닷컴 기자 shkim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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