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책, 패션 소품이냐고?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오브제야! [임이랑의 트렌드 산책]

입력 2026-06-02 10:34  

지하철 안 사람들은 대부분 휴대폰을 바라본다. 다음 영상, 또 다음 영상. 그렇게 끝없이 화면을 넘기는 사람들 사이로 책을 읽는 사람이 눈에 띈다. 한동안 거의 사라졌던 풍경인데, 요즘은 이상할 만큼 자주 보인다. 짧은 영상에 익숙한 세대가 다시 긴 문장을 읽기 시작한 것일까.


카페와 터미널에서도 책을 읽는 젊은 사람들을 종종 마주친다. ‘종이책’ 시대의 사람으로서, 그리고 읽고 쓰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반가운 장면이다. 혼자 있는 시간에 공원에서, 카페에서,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보는 것이 좋았다. 20대의 나는 그런 사람이 가장 섹시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멋있어 보이고 싶어 일부러 책을 들고 다닌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의 독서는 조금 다르다. 나 역시 책을 더 많은 이유로 읽고 또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요즘 젊은 세대가 책을 읽는 이유도 단순한 지식 습득과는 달라 보인다. 영상 세대는 왜 다시 활자로 돌아왔을까. 더 빠르게 소비할 수 있는 것들이 넘치는 시대에 사람들은 왜 굳이 느린 것을 선택할까.

사람들은 점점 더 ‘경험’을 소비하고 싶어 한다. 물건을 사는 것보다 여행을 가고, 전시를 보고, 새로운 클래스를 경험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둔다. “이걸 샀어” 보다 “여기에 다녀왔어”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물건은 쉽게 비교되지만 경험은 비교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경험을 더 ‘나만의 것’처럼 느낄 것이다. 이제 소비의 대상은 물건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에 가까워졌다.

독서 역시 비슷한 흐름 안에 있다. 최근 예스24에 따르면 20대의 문학 분야 구매 비중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독서 모임 플랫폼 이용자 수도 크게 늘고 있다. 책 읽는 풍경 자체가 하나의 취향처럼 소비된다. 필사, 뜨개질, 러닝처럼 혼자 조용히 반복할 수 있는 취미들도 함께 주목받고 있다. 화려하거나 즉각적인 자극 대신, 느리고 정적인 시간을 통해 스스로를 회복하려는 흐름이다.


아마 모두가 공감할 ‘숏폼 피로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짧은 영상을 본다. 무의식 속에서 끊임없이 자극을 소비하고, 의미 없이 시간을 흘려보낸다. 사람들은 농담처럼 “뇌가 절여졌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숏폼에서 누적된 피로감은 꽤 깊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복잡한 인간관계 역시 사람들을 쉽게 지치게 만든다. 그래서 이제 취미는 단순한 즐거움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시간이 되어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세상은 점점 짧아지는데, 사람 마음은 오히려 길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단순한 ‘교양 트렌드’가 아니라 피로와 결핍에 대한 반작용처럼 보인다. 숏폼이 뇌를 순간적인 자극으로 깨우는 방식이라면, 독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마음을 눕히는 방식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상 세대의 독서는 도피가 아니라 회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무작정 자기계발서를 읽는 과거의 독서 방식과도 다르다. 멍하니 읽고, 감정을 정리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고, 타인의 문장을 빌려 자신의 감정을 설명한다. 공부의 의미보다 정서의 의미가 더 강한 독서를 즐기고 있다. 숏폼의 도파민에서 벗어날 퇴로를 찾은 것 같다. 끊임없이 재생되는 영상 속에서 사람들은 마침내 멈춰 있을 수 있는 문장을 찾기 시작했다.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는 이른바 ‘텍스트힙(Text Hip)’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감각적인 취향으로 소비되는 현상이다. SNS에서는 ‘라이브러리코어(Librarycore)’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책을 읽는 행위뿐 아니라 도서관 특유의 조용한 분위기와 아날로그적인 무드 자체를 하나의 취향으로 소비하는 흐름이다. 이런 흐름은 패션 셀럽들의 인스타그램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독서를 장려하거나 북클럽을 운영하는 셀럽들도 늘어나고 있다.


독서는 이제 지식보다 취향을 드러내는 언어가 되었다. 예전에는 책이 교양의 상징이었다면 지금은 정체성에 가깝다. 어떤 책을 읽는지, 어떤 문장에 밑줄을 긋는지, 어떤 구절을 저장하는지로 자신의 취향을 표현한다. 책장 분위기와 카페에서 책 읽는 사진, 독서 브이로그 같은 콘텐츠도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독서는 더 이상 혼자만의 행위가 아니다. 책 역시 하나의 경험재가 되었고, 사람들은 타인의 감정 리뷰를 궁금해하고 자신의 감상도 공유하고 싶어 한다. 어쩌면 지금은 책이 유행하는 시대라기보다 ‘읽는 사람의 분위기’가 유행하는 시대인지도 모른다.


이런 흐름은 라이프스타일 전반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사람들은 점점 ‘과한 것’보다 자연스러운 것을 선호한다. 패션에서는 꾸민 듯 안 꾸민 듯한 ‘꾸안꾸’가 유행하고, 로고를 과하게 드러내는 브랜드보다 소재와 실루엣으로 완성되는 조용한 브랜드를 좋아한다. 더 많은 물건을 소유하는 사람보다 미니멀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은 점점 노력의 흔적마저 감추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꾸안꾸처럼 보이기 위해 사실은 더 많은 관리와 노력이 필요하지만, 사람들은 애쓴 티가 나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더 멋있다고 느낀다.


요즘 사람들은 “지적인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게 아니라 “조용한 세계가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책이 패션 소품이 된 게 아니라,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오브제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왜 다시 아날로그를 찾고 있을까. 필름카메라, LP, 손글씨, 종이책처럼 느리고 불편한 것들이 다시 사랑받고 있다. 더 쉽고 빠르고 편리한 것이 많은데도 사람들은 굳이 불편한 방식을 선택한다. 아마 그 불편함 속에는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느림은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든다. 편리함이 넘치는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불편을 통해 쉼을 찾는다.

영상은 빠르게 소비되지만 문장은 오래 머문다. 릴스 하나는 몇 초 만에 사라지지만 어떤 문장은 사람 안에 몇 년 동안 남아있기도 하다. 누군가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을 때 “괜찮아”라는 말보다 책 속의 한 문장이 더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정보보다 문장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의 독서 열풍은 단순한 유행이 아닐지도 모른다. 너무 빠른 세상 속에서 잃어버린 자기 속도를 되찾으려 한다. 사람들은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자기 마음과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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