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업노조는 교섭 과정에서 DS부문 메모리사업부 성과급만 챙긴다는 내부 반발에 면했다. 실제 노사 임단협을 보면 메모리사업부에 한해 영업이익 중 10.5%를 특별경영성과급으로 지급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경우 메모리사업부 직원은 1인당 평균 6억원에 이르는 성과급을 받지만 DX부문은 600만원 수준에 불과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내용의 노사 간 잠정 합의안이 공개되자 초기업노조 내 비메모리 사업부·DX부문 소속 조합원들이 빠르게 이탈했다. 이들은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나 DX부문 조합원들로 구성된 삼성전자 노동조합 동행(동행노조)을 선택했다.
동행노조는 지난달 29일 초기업노조를 상대로 냈던 잠정 합의안 찬반투표 절차 중지 가처분 신청 심문기일에서 '합의안 효력 정지'로 방향을 틀었다. 잠정 합의안 찬반 투표 당시 동행노조를 일방적으로 배제한 것도 문제지만 DX부문 조합원들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는 교섭 내용이 타격 대상이다.
초기업노조는 대규모 조합원 이탈에 이어 노노 갈등이 심화하는 국면으로 접어들자 '투트랙 교섭 체계'를 꺼내들었다. "앞으로 교섭은 초기업노조 내에서 DS부문과 DX부문을 분리해 각 부문의 특수성과 현안을 반영할 수 있도록 집행부를 분리(DS 5명·DX 3명) 운영하겠다"는 설명이다.
이는 잠정 합의안 투표 당시 DX부문 조합원들 반대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은 데 따른 대응 조치로 해석됐다. 전삼노 조합원의 잠정 합의안 찬성률은 21.1%에 달했다. 찬반투표는 불가능했지만 자체 조사를 진행한 동행노조에선 99%가 잠정 합의안을 반대했다.
분리 교섭 자체는 회사도 거부할 이유가 없다. 교섭 실무상으로도 분리 교섭 자체는 흔히 이뤄지고 있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교섭 1회차엔 DS부문을, 2회차엔 DX부문을 놓고 교섭을 진행하면 되는 기술적 문제여서 법적으로 문제될 건 아니다"라면서 "소수 노조가 교섭 단위를 분리해 다수 노조로 올라서려고 교섭 단위 분리 신청을 하지만 과반 노조가 굳이 이걸 할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희 광운대 법학과 교수도 "초기업노조의 투트랙 교섭 요구를 이유로 단체교섭을 거부하는 것은 정당한 단체교섭 거부라고 보긴 어려울 것"이라며 "단체교섭을 하나의 노조가 진행해서 적용 단위별로 단체협약을 두 개 또는 세 개 작성하는 경우도 있다. 분리 교섭이란 말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교섭을 거부하는 건 교섭 거부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노동조합법은 교섭대표노조를 정해야 하는 교섭 단위를 원칙적으로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이라고 못 박고 있다. 현격한 근로조건 차이, 고용형태, 교섭 관행 등을 고려해 교섭 단위를 분리할 필요가 있을 때만 예외적으로 당사자 신청을 받아 허용된다.
법원도 교섭 단위 분리를 엄격한 기준으로 판단한다. 대법원은 교섭 단위를 분리하려면 별도로 단체교섭을 진행해야 할 만큼 현격한 근로조건 차이 등이 있어야 한다고 봤다. 교섭창구 단일화가 오히려 안정적 교섭체계 취지에 맞지 않는 예외적 사정도 고려해야 한다. 이는 모두 교섭 단위 분리를 주장하는 쪽이 입증할 책임을 갖는다.
하지만 이는 복수노조 사업장에서 교섭창구 단일화로 발생하는 노노 갈등, 노사 분규에 대응하려는 취지로 설계된 장치다. 예컨대 한 회사 내 생산직 중심 노조와 사무직 중심 노조가 각각 존재하고 서로 다른 근로조건을 요구해야 하는 상황일 때 교섭 단위 분리를 신청하는 식이다. 교섭 단위 분리 제도는 단일 노조가 한 회사 내 사업부문별 교섭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장치가 아니다.
김승현 노무법인 시선 대표노무사는 "하나의 노조는 하나의 교섭 주체이고 부문별 교섭은 내부 위임 형태로만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교섭 단위를 쪼개 노조 영향력을 축소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작용할 땐 회사가 이를 수용할 가능성도 있다. 노조는 조합원 수가 많을수록 재정적 여유가 생기고 교섭력도 강화된다. 동행노조가 DX부문만 떼어내는 교섭 단위 분리를 신청해 받아들여지게 되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이때 삼성전자는 DX부문에 한해 7만여명 규모의 초기업노조 대신 1만여명 규모로 비교적 덩치가 작은 동행노조를 상대하면 된다.
회사 입장에선 생산 차질 같은 리스크도 덜 수 있다. 초기업노조가 DX부문 교섭 과정에서 간극을 좁히지 못해 파업을 하게 될 경우엔 반도체 생산라인도 멈춰 세울 수 있다. 하지만 교섭 단위가 분리된 상황에선 DX부문에서만 생산 차질 리스크가 발생할 뿐, 반도체와는 무관한 일이 된다. 회사가 교섭 과정에서 부문별로 '핸들링'할 수 있는 범위도 그만큼 커지는 셈이다.
김 대표노무사는 "회사가 (부문별 교섭 단위 분리 구조를) 수용한다면 그건 분할교섭이 사용자에게 가장 유리한 구도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초기업노조가 '분리 교섭' 카드를 꺼낸 이유를 놓고 노조를 이탈한 DX부문 조합원들을 다시 끌어모으려는 포석이란 관측도 나온다. 공지를 보면 집행부를 분리하고 DX부문에서 3명을 배치하겠다는 내용이 확인된다. 이들을 중심으로 분리 교섭을 할 경우 '메모리만 챙긴다'는 비판을 피하면서도 교섭 과정에서 실익도 챙길 수 있단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란 추측이다.
업계 관계자는 "(초기업노조가) 교섭을 분리해서 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지도부를 두 개로 만든다는 의미로 보인다"며 "(교섭 단위 분리는) 현시점에서 가능한 일이 아닐 텐데 신청을 할 순 있겠지만 받아들여질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