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교 한양대 교수(지속가능공급망센터장)는 1일 열린 ‘한·베트남 그린 제조 밸류체인 협력포럼’에서 “복합 위기를 거치며 글로벌 기업들이 깨달은 것은 효율적 공급망이 반드시 안전한 공급망은 아니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다수 제품이 베트남에서 생산되고 있다”며 베트남 공급망의 안정성이 한국 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과거 글로벌 기업들이 단일 공급원에 의존해 단가를 낮추고 효율을 높이는 전략을 정답으로 여겼다고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 등이 잇따르면서 공급망 교란은 구조적 리스크로 바뀌었다. 그는 도요타 사례를 들며 “세계 최고 제조업체도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영업이익이 77% 감소했다”며 “효율성의 함정이 현실화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회복탄력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봤다.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 등 지속가능성 규제가 새로운 충격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CBAM이 탄소 대응 문제라면 CSDDD는 공급망 책임의 문제”라며 “배출량을 검증해 제출하지 않으면 기업에 불리한 기본값이 적용될 수 있고, 공급망 책임 위반에는 전 세계 매출의 5%까지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베트남 지원이 한국 기업 경쟁력
특히 한국 기업에는 ‘스코프 3 딜레마’가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배출은 베트남 생산 현장에서 발생하지만 비용과 책임은 한국 본사가 부담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한국 대기업이 베트남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한국 기업 자신을 위한 길”이라며 “베트남 공급망이 살아야 한국 기업도 EU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 공급망의 취약 요소로는 데이터 가시성, 재생에너지 접근성, 인증·표준 격차, 하위 협력사 역량, 거버넌스 격차가 꼽혔다. 선진국은 전력구매계약(PPA)과 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시장이 성숙했지만 베트남은 관련 시장이 초기 단계이고 자동화된 측정·보고·검증(MRV) 체계도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1차 협력사를 넘어 2차, 3차 협력사로 갈수록 탄소 데이터 가시성이 사라진다”며 “어느 누구도 혼자 끝까지 갈 수 없다”고 했다.
김 교수는 한국 기업이 데이터·인증·기술 역량을 제공하고 베트남 기업은 MRV 체계를 내재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 정부는 공적개발원조(ODA)와 정책금융을 활용해 중소 협력사의 그린 전환을 지원하고, 베트남 정부는 PPA·REC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기업이 잘돼야 베트남 공급망이 살고, 베트남 공급망이 살아야 한국 기업이 EU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며 “이는 선의가 아니라 생존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산업 탈탄소, 디지털 인프라가 주도
이어 함진기 글래스돔코리아 대표는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핵심 수단으로 탄소 데이터 관리 기술을 제시했다. 함 대표는 “제품 단위 탄소발자국(PCF) 데이터 관리 시스템은 글로벌 시장 진입의 기본 인프라가 됐다”고 밝혔다.
함 대표는 EU CBAM, EU 배터리 규정, 디지털 제품 여권(DPP) 등 주요 규제가 동시에 시행되면서 기업들이 제품별 탄소 배출량과 원산지, 재활용 정보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설명했다. 철강·알루미늄 등 CBAM 대상 품목은 배출량 검증과 보고가 중요해졌고, 배터리와 전자·모빌리티 분야는 공급망 전반의 탄소 데이터 확보가 수출 경쟁력과 직결되고 있다.
그는 글로벌 완성품 기업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협력사의 데이터 공유 기피, 낮은 데이터 품질, PCF·ISO 14067(제품 탄소발자국에 관한 국제표준) 전문성 부족, 제3자 감사 비용 부담 등을 꼽았다. 특히 다단계 공급망에서는 1차 협력사를 넘어 2차·3차 협력사로 갈수록 데이터 가시성이 급격히 낮아진다고 봤다. 함 대표는 “글로벌 OEM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협력사의 데이터 공유 기피와 낮은 데이터 품질”이라고 말했다.
글래스돔은 인공지능(AI) 기반 디지털 LCA 플랫폼을 통해 현장 데이터 수집부터 PCF, 기업 탄소발자국(CCF), CBAM, 환경성적표지(EPD) 산출, 제3자 검증 연계, 카테나-X(자동차 업계 탄소 등 데이터 교환 플랫폼) 데이터 교환까지 자동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함 대표는 “현장 데이터 수집부터 산출, 검증, 데이터 교환까지 전 과정을 자동화해야 한다”며 탄소 데이터 관리가 단순 보고 업무를 넘어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는 디지털 인프라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함 대표는 KG모빌리티 3개 차종 PCF 인증, LG전자 VS사업부 공급망 탄소 관리, 롯데알루미늄·조일알루미늄 현장 계측 통합, 베트남 철강 구조물 기업 ATAD와의 EPD·CBAM 디지털화 협력 사례 등을 소개했다. 그는 베트남 산업단지에 탄소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하면 한국 기업과 현지 협력사의 규제 대응 비용을 낮추고 수출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승균 기자 cs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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