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 이항복의 초상화를 보며 상상했다. ‘조선시대에도 포카(포토 카드)가 있었다면?’ 완벽한 45도 각도에 진중한 눈빛, 높은 인지도까지 딱 요즘 아이돌 포카의 모습이 아닌가!”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출간한 <유물멍: 오래 볼수록 사랑스러운 것들>은 박물관 유물이 따분한 옛것이라는 선입견을 뒤집는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학자의 그림을 보면서 연예인의 포토 카드를 떠올리는 식이다. 책을 기획하고 엮은 이는 김미소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이다.
북 디자이너 출신인 김 연구관은 1일 “‘잘 팔리는 박물관 책’을 만들겠다는 게 출간의 목표였다”며 “기획의 씨앗은 코로나19 시기 박물관이 운영하던 뉴스레터”라고 말했다. 박물관에선 일주일에 한 번씩 유물 사진 한 장과 짧은 글 한 편을 뉴스레터에 실어 보냈다. 4년 동안 보낸 편지가 쌓여 만들어진 책이 ‘유물멍’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유물멍: 가만히 바라볼수록 좋은 것들>이다. 지난해 1월 출간된 이후 1만 부가 팔리며 화제를 모았다.
‘불멍’ ‘물멍’처럼 친숙하면서도 신선한 제목으로 독자의 호응을 얻었다. “유물을 가만히 바라보며 떠오르는 솔직한 느낌을 적는 행위가 현대인의 ‘명상’과 닮았다고 느꼈어요. 여기서 착안해 ‘유물멍’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었죠.”
이번에 나온 제2권은 ‘나의 취향 저격 유물’을 주제로 했다. 공모전을 통해 250여 편의 응모작을 받아 60개를 엄선해 실었다. “300~400자짜리 짧은 글이다 보니 인공지능(AI)으로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잖아요. 그래서 상투적이지 않은, 자기만의 솔직한 사연이 담긴 글을 골랐습니다.”
‘취향’을 키워드로 삼은 데는 시대적 맥락이 있다. “알고리즘이 모든 것을 추천해주는 시대일수록,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차리는 감각이 더 중요해진다고 생각해요. 이 책이 ‘나 이런 거 좋아하네’라는 감각을 되살리는 계기가 됐으면 했습니다.”
독자 반응도 흥미롭다. 국보나 보물보다 연적, 작은 화장품 함, 문방구류 같은 소소한 일상 유물에 오히려 더 많은 애정이 쏠렸다. 1권이 반가사유상, 백제금동대향로 같은 스타 유물을 중심으로 꾸렸다면, 2권은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수정 박병래 선생, 김종학 화백 등이 자신의 안목으로 사적으로 수집한 고미술품 100여 점을 담았다.
책의 디자인도 눈길을 끈다. 유물 사진을 여백 속에 배치해 한 점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설계했고, 책이 완전히 펼쳐지는 사철 제본을 택했다. “마음이 지친 분들이 할머니 집에서 맡던 오래된 나무 냄새처럼, 쫓기지 않고 들여다보며 쉬어 갔으면 해요. 옛사람이 만든 물건에 담긴 이야기를 이미지로 읽어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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