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안양에 사는 직장인 이정은 씨(32·가명)는 4년 전 트립닷컴을 통해 베트남행 항공권을 예매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갑작스럽게 코로나19에 감염돼 비행기를 탈 수 없게 돼 환불을 요청했지만 트립닷컴은 카드 결제 취소나 현금 환불은 어렵다고 답했다. 대신 본인만 6개월 내 쓸 수 있는 항공사 바우처를 지급했다. 휴가 일정이 맞지 않은 탓에 이 씨는 이 바우처를 결국 사용하지 못했다. 항공권 비용을 고스란히 날린 셈이다.
트립닷컴 플랫폼을 운영하는 법인 트립닷컴 싱가포르 프라이빗 리미티드와 트립닷컴 코리아는 2020년 2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일부 소비자들이 예매한 항공권의 환불을 요청할 때 소비자가 결제한 수단으로 대금을 환급하지 않고, 항공사 바우처로 환급했다. 예를 들어 인천에서 베트남 하노이로 가는 비엣젯항공 왕복 항공권을 50만원에 신용카드로 결제해 구매한 소비자에게 카드 결제 취소 대신 비엣젯항공을 예매할 수 있는 50만원 상당의 기간 한정 바우처를 지급했다.
이런 행위는 전자상거래법 위반이다. 전자상거래법상 통신판매업자인 통신판매중개자는 소비자가 결제한 수단보다 불리하지 않은 수단으로 대금을 환급할 의무가 있다. 공정위 조사 결과 트립닷컴이 2020년부터 5년여간 소비자에게 바우처로 환급해준 금액은 31억55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립닷컴은 항공사 예약·발권·취소 과정에서 '환불은 항공사 바우처 형태로만 제공된다'는 내용을 고지하기도 했다. 소비자의 자유로운 청약 철회권 행사를 제한하는 행위로 이 역시 전자상거래법 위반이다. 트립닷컴은 통신판매업 신고도 하지 않고 회사를 운영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는 트립닷컴이 지난해 7월부터 바우처로만 항공권 대금을 환급하는 항공사의 항공권을 판매하지 않는 상황이고, 일부 소비자에겐 바우처 대신 현금을 다시 지급하는 등 소비자 피해 회복 조치를 완료했다는 점을 감안해 처벌 수위를 정했다. 다만 공정위는 트립닷컴이 소비자에게 바우처로 환급해준 금액 31억5500만원 중 소비자 피해 회복 조치가 이행된 규모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트립닷컴은 한국소비자원에 신고하거나 소송에 나선 일부 소비자들에게만 선별적으로 환불 조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도 일부 소비자들은 과거 일방적인 바우처 환불 초치에 반발해 소송 등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과태료 1000만원은 트립닷컴에 부과할 수 있는 최대치이고, 트립닷컴이 과징금을 부과할 만한 위법 행위를 한 건 아니라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트립닷컴과의 소송 경험을 바탕으로 유사 피해 소비자를 돕고 있는 홍웅기 법무법인 소울 변호사는 "글로벌 기업에 부과한 과태료 1000만원은 제재 효과보다는 오히려 '한국에선 이 정도 과태료만 내면 불공정 영업을 해도 된다'는 면죄부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며 "시정조치만으로 소비자에 대한 피해 보상이 불가능한 만큼 매출액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었던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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