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이주비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등 부동산 금융 규제 개선에 들어갔다. 과도한 대출 규제로 정비사업이 지연되면서 수도권 집값은 물론 전셋값까지 치솟고 있어서다. 업계에서는 이주비 대출만 정상화해도 서울에서 3만여 가구 공급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당정과 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지난달 말 건설업계 관계자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열어 정비사업 이주비 대출 관련 애로 사항을 들었다. 정부는 다음달께로 예상되는 금융, 세제 등 부동산 종합대책 발표를 앞두고 PF 대출과 이주비 대출 완화 등 금융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주비 등 사업 목적성 대출은 일반 가계 주택담보대출과 별도 유형으로 관리하고, 담보인정비율(LTV) 한도를 늘리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지난해 ‘6·27 대책’ 이후 부동산 금융 규제를 강화해온 정부의 기조가 바뀐 것은 공급 확대를 위한 ‘생산적 대출’을 풀지 않으면 부동산시장이 더 불안해질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최근 1년간(지난 8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와 전셋값은 각각 10.76%, 7.16% 상승했다.
정부는 지난해 두 차례 대책을 통해 서울 전역과 경기 12곳의 주담대 한도를 6억원으로 묶고 1주택자와 다주택자의 LTV를 각각 40%, 0%로 조정했다. 이 과정에서 정비사업 이주비 대출도 동일한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택 매입에 활용되는 레버리지 성격의 대출과 이주비 대출 등 공급을 위한 사업성 자금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고 지적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이주하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장 43곳 중 81%인 35곳이 이주비 조달에 난항을 겪고 있다. 철거와 착공 일정도 연쇄적으로 늦어진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서울에서 신규 아파트 10가구 중 8가구는 재건축·재개발로 공급된다”며 “이주비 규제만 완화돼도 3만여 가구의 공급이 앞당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집값 우려에 완화폭 미미할 수도
17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국토교통부가 건의한 정비사업 관련 대출 규제 개선 과제를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국토부 건의를 받아 주택 공급 확대 측면에서 관련 대출 규제의 개선 필요성을 전반적으로 살펴보고 있다”며 “가계부채 관리 기조를 유지하는 범위에서 실수요와 공급 지원 목적에 부합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 고민은 크게 두 갈래다. 한쪽에서는 최근 집값 불안과 가계대출 증가세를 감안해 수요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압박이 커지고 있다. 은행권 가계대출이 신용대출을 중심으로 다시 불어나는 흐름을 보이고 있어서다.
서울 등 일부 지역 집값 상승세도 가계부채 관리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투기성 비거주 1주택자의 전세대출과 고가 전세대출의 보증 문턱을 높이는 방안 등이 우선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공급 측면에서 대출 규제가 일률적으로 적용돼 정비사업 자체가 지연될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집값 안정을 위해서는 도심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이 중요한데 대출 규제가 정비사업 자금 흐름을 막아 공급 확대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가계부채 증가세가 다시 확대되는 상황에서 금융위가 공급 지원 명목으로 규제를 폭넓게 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주요 정비사업장은 조합원의 자산 가치 상승 기대가 큰 만큼 대출 규제 완화 움직임이 부동산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이유정/조미현 기자 y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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