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팔이 성지'에 무슨 일로?…아이들까지 돈 쓰러 몰렸다 [프라이스&]

입력 2026-06-24 06:00   수정 2026-06-24 08:19

'폰팔이 성지'에 무슨 일로?…아이들까지 돈 쓰러 몰렸다 [프라이스&]



HDC그룹의 유통 계열사 IPARK몰(아이파크몰)은 한때 2030 사이에서 ‘던전’으로 불렸다. 전자상가 골목마다 휴대폰과 PC 부품을 파는 매장이 빽빽했고, 가격을 모르면 손해 볼 것 같은 공간이었다. ‘용산역 폰팔이 성지’라는 말도 붙었다. 소비자가 전자기기를 싸게 사기 위해 가는 곳이었지만, 동시에 눈치껏 흥정해야 하는 피로한 공간이기도 했다.

그랬던 아이파크몰이 달라졌다. 휴대폰과 전자제품을 사러 가던 ‘용산 던전’은 이제 불교 팝업, 커스텀 키보드, 종이접기, 괴근식물 같은 취향 콘텐츠를 즐기러는 쇼핑몰로 바뀐지 오래다. 휴대폰 가격 경쟁의 상징이던 곳이 ‘덕후 성지’로 재해석되면서 관련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팝업 시장 키워드는 ‘취향의 세분화’

아이파크몰의 변화를 현장에서 기획하는 사람 중 한 명이 김기훈 아이파크몰 콘텐츠개발팀 바이어(MD)다. 김 바이어는 지난해 3월 불교박람회장에서 한참을 멈춰 섰다. 불교 용품과 사찰 문화를 소개하는 행사장 앞에 20대 관람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종교 콘텐츠라면 어렵고 무겁고, 젊은 세대와는 거리가 멀 것이라는 선입견과 다른 장면이었다.

'왜 여기서 줄을 설까'. 그가 던진 질문은 단순했다. 김 바이어는 이 장면에서 팝업스토어의 가능성을 봤다. 불교를 믿어서라기보다 마음을 달래고, 가볍게 웃고, 위로받고 싶은 수요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후 아이파크몰은 ‘해탈컴퍼니’, ‘아미울’과 함께 불교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종교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마음 챙김’과 ‘위로’를 MZ세대 감성으로 풀어낸 기획이었다. 결과는 흥행이었다. 앵콜 팝업에는 하루 평균 1만 명이 방문했다.

그가 보는 최근 팝업 시장의 키워드는 ‘취향의 세분화’다. 과거 쇼핑몰 팝업은 패션, 뷰티, 식음료 브랜드 중심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작고 깊은 관심사가 사람을 움직인다. 누군가에게는 종이접기가 즐거움이고, 누군가에게는 기계식 키보드의 타건감이 도파민이다. 또 다른 사람에게는 명상과 비움이 소비의 이유가 된다.

그렇다고 마니아 문화라면 무엇이든 팝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김 바이어가 가장 먼저 보는 기준은 ‘공감 가능성’이다. 아무리 독특해도 일반 고객이 보기에 부담스럽거나 진입 장벽이 높으면 쇼핑몰 콘텐츠로는 어렵다. 지나가던 고객이 “저건 뭐지” 하고 한 번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마니아에게는 깊이가 있고, 일반 고객에게는 낯설지만 불편하지 않아야 한다.

그는 이를 “한 걸음이 아니라 반 걸음 앞서 있는 콘텐츠”라고 표현했다. 너무 앞서가면 대중이 따라오지 못하고, 너무 익숙하면 새롭지 않다. 반 걸음 정도 앞선 취향을 찾아 쇼핑몰 안으로 가져오는 것이 바이어의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종이접기 팝업 … 일주일간 1만 명 방문

종이접기 팝업도 그런 판단에서 나왔다. 종이접기는 얼핏 상업성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김 바이어는 유튜브 구독자 11만 명을 보유한 기미로 작가의 콘텐츠를 보며 수요를 확인했다. 특히 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종이접기 선호도가 높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이 콘텐츠를 단순 전시로 두지 않았다. 방학 시즌에 맞춰 초등학생 동반 가족을 핵심 고객으로 잡았다. 굿즈존, 체험존, 전시존을 나눴고 시중에서 쉽게 구하기 어려운 금·은종이 등 희귀 종이접기 용품도 준비했다. 취미를 가진 아이에게는 ‘갖고 싶은 상품’을, 부모에게는 ‘데려갈 이유’를 만든 셈이다.

결과는 예상을 넘었다. 올해 1월 열린 국내 첫 종이접기 팝업스토어에는 평일에도 2시간 이상 입장 대기가 발생했고, 1주일간 1만 명 이상이 방문했다. 조용한 취미라고 여겼던 종이접기가 방학철 가족 집객 콘텐츠가 된 것이다. 김 바이어는 “종이접기는 색종이를 접는 놀이를 넘어 정사각형 종이 한 장을 자르지 않고 접기만 해 완성하는 예술 영역”이라며 “조용하지만 강력한 팬덤을 가진 콘텐츠라고 봤다”고 말했다.

새로운 시장 … '키꾸' 문화도 파고들어

키보드 페스티벌은 더 큰 모험이었다. 커스텀 키보드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일부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영역이다. 국내 유통사에서 이를 1000평 규모 팝업으로 만든 사례도 드물었다. 내부에서도 집객 우려가 컸다. 하지만 김 바이어는 키보드 시장을 단순 전자기기 시장으로 보지 않았다. ‘키꾸’로 불리는 키보드 꾸미기 문화, 타건감, 키캡 수집, 책상 꾸미기 수요가 결합한 새로운 취향 시장으로 봤다.

아이파크몰은 국내외 키보드 브랜드와 키캡 브랜드 20여 곳을 한자리에 모았다. 기계식 키보드 100여 종과 스페셜 에디션, 신제품을 직접 만져보고 비교할 수 있게 했다. 핵심은 판매보다 체험이었다. 키보드에 이미 빠진 사람뿐 아니라 “이런 세계도 있구나” 하고 처음 관심을 갖는 사람까지 끌어들이는 것이 목표였다.

반응은 바로 터져나왔다. 사전 예약 8000명은 모두 마감됐고, 4일간 1만5000명이 방문했다. 김 바이어는 “키보드 페스티벌의 본질은 키보드를 파는 것이 아니라 키보드에 관심 갖게 만드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었다”며 “유통사 한 공간에서 20여 개 브랜드를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점이 고객에게 가장 큰 소구점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팝업을 볼 때 매출은 중요한 지표지만 전부는 아니다. 팝업은 상품 판매보다 경험을 설계하는 일에 가깝기 때문이다. 방문객 수, SNS 확산, 바이럴 반응, 체류시간, 멤버십 가입, 교차 구매 등을 함께 본다. 팝업을 통해 특정 취향이 오프라인에서 작동하는지 검증하고, 그 결과를 다음 MD 구성에 반영한다.

키보드 페스티벌 이후 국내 커스텀 키보드 브랜드 ‘스웨그키’는 아이파크몰 도파민 스테이션에 입점했다. 팝업이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정규 매장 구성으로 이어진 사례다. 김 바이어가 말하는 “취향의 검증”이 실제 매장 전략으로 연결된 셈이다.


"백화점 팝업, 주변 매장 매출에도 엄청난 영향"

팝업은 주변 매장에도 영향을 준다. 아이파크몰에 따르면 인기 콘텐츠 팝업이 열릴 때는 주말 기준 2시간 안팎의 대기가 발생하고, 방문객이 식음료와 굿즈 등 주변 매장으로 이동한다. 주변 식당과 카페 매출은 전주 대비 평균 40% 늘고, 일부 매장은 최대 120% 증가한 사례도 있었다.

김 바이어는 팝업을 열기 전부터 마케팅팀, 영업부서와 함께 연관 구매를 유도하는 구조를 설계한다. 행사 후에는 아이파크몰 앱과 CRM 분석을 통해 신규 회원 가입, 쿠폰 사용, 교차 구매, 타 상품군 연관 매출을 살핀다. 발레 브랜드 연합 팝업에서는 참여 브랜드 간 교차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같은 브랜드에는 쓸 수 없는 리워드 할인 쿠폰을 발급했고, 멤버십 가입률과 교차 구매율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확인했다.

아이디어는 박람회와 커뮤니티, 해외 사례에서 온다.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 괴근식물 팝업은 김 바이어가 일본 오사카 백화점에서 본 콘텐츠가 출발점이었다. 처음에는 특이한 외형의 식물로만 봤지만, 한국에서도 마니아층과 수요가 깊다는 것을 확인한 뒤 팝업으로 연결했다. 유튜브와 온라인 커뮤니티, 관련 업계 관계자와의 교류도 중요한 정보원이 된다.



김 바이어는 아이파크몰의 핵심 콘텐츠를 ‘팬덤을 형성한 취향 콘텐츠’라고 정의한다. 과거에는 비주류 소비, 덕후 문화, 마니아 시장으로 불리던 영역이 팬덤의 규모와 소비력에 따라 갑자기 주류 콘텐츠로 떠오르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취향을 있는 그대로 쇼핑몰에 옮겨놓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연인, 일반 고객도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번역하는 일이다.

아이파크몰이 이 같은 실험을 계속할 수 있는 배경에는 빠른 의사결정 구조가 있다. 김 바이어는 이를 “거절당할 용기와 의사결정의 경량화”라고 표현했다. 새로운 MD와 팝업은 기획 단계에서 무산되는 경우가 많지만 아이파크몰은 하지 말아야 할 이유보다 해야 할 이유를 찾는 조직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바이어가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하려면 거절당할 용기가 필요하다”며 “아이파크몰은 합리적이고 빠른 의사결정 구조가 있어 타사보다 조금 더 빠르게 브랜드를 유치할 수 있다”고 했다.


'바이어 생생노트'는 유통 현장의 최전선에서 상품을 고르는 바이어(MD)의 시선으로 소비 트렌드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대형마트와 백화점, 편의점, e커머스 등에서 실제로 어떤 상품이 잘 팔리는지, 왜 소비자들이 지갑을 여는지, 앞으로 어떤 제품이 시장을 바꿀지를 현장감 있게 짚어냅니다. 숫자로 드러나는 매출 흐름뿐 아니라 상품 기획 과정과 진열 전략, 소비자 반응까지 함께 들여다봅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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