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한류 성공을 벤치마킹해 일본 정부가 추진한 ‘쿨재팬(Cool Japan)’ 정책이 막대한 적자로 존폐 위기에 놓였다.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음식, 관광 등 문화 콘텐츠를 세계에 확산시키겠다는 목표로 시작했지만, 투자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일본 내에서도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24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의 관민펀드인 ‘해외수요개척지원기구’(쿨재팬기구)의 2025년도 누적 손실은 540억엔(약 5100억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 대상 기업의 실적 악화와 출자 사업 부진이 이어지면서 일본 정부는 기구 폐지나 다른 펀드와의 통합까지 검토하고 있다.
쿨재팬 정책은 2012년 12월 출범한 제2차 아베 신조 정권의 핵심 성장 전략 중 하나였다. 한국이 드라마와 음악 등 콘텐츠를 기반으로 세계 시장에서 국가 이미지를 높인 것처럼, 일본도 애니메이션·게임·음식·패션·관광 등 일본 문화의 매력을 산업화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아베 전 총리는 취임 후 첫 시정연설에서 “쿨재팬을 세계에 자랑하는 비즈니스로 만들자”고 강조하며 국가 차원의 문화 수출 전략을 추진했다.
일본 언론은 쿨재팬 정책의 배경에 한국의 ‘쿨코리아’ 전략이 있었다고 평가한다. ‘쿨코리아’라는 표현이 한국 내에서 널리 사용되지는 않지만, 일본에서는 1990년대 이후 한국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한류를 육성한 과정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쿨코리아 전략을 소개하며 “한국은 영화와 드라마 배우의 인기를 바탕으로 패션과 화장품 시장을 확장하고, 마지막에는 국가 이미지 향상으로 연결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일본의 쿨재팬은 콘텐츠 산업을 통한 경제 효과 창출이라는 목표와 달리 투자 판단과 사업 운영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2013년 설립된 쿨재팬기구는 출자금 1513억엔 가운데 약 90%를 정부가 부담했지만, 투자한 사업들이 성장하지 못하거나 적절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면서 적자가 누적됐다.
최근에는 오키나와 테마파크 ‘정글리아 오키나와’를 추진한 마케팅 회사에도 출자했지만, 전반적인 투자 성과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일본 정부는 오는 7월 이후 검토회를 설치해 연내 쿨재팬기구의 향후 방향을 결정할 계획이다. 다른 관민펀드와의 통합 가능성도 검토 대상이지만, 정부 내에서는 “폐지도 피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한류가 민간 콘텐츠 경쟁력과 글로벌 팬덤을 기반으로 성장한 반면, 일본의 쿨재팬은 정부 주도 투자 방식에 의존하면서 시장 감각과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 구축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사히는 문화 경쟁력을 산업 경쟁력으로 연결하려 했던 일본의 실험이 10년 만에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됐다고 평가했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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