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치' 사재기 벌어졌다…'16조 세금 누락' 의혹에 발칵

입력 2026-06-26 17:56   수정 2026-06-26 19:00

'100년치' 사재기 벌어졌다…'16조 세금 누락' 의혹에 발칵


작년 말 국회를 통과한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지난 4월 24일 시행되면서 37년간 ‘연초의 잎’이었던 담배 정의가 ‘연초나 니코틴’으로 확대됐다. 합성니코틴으로 만든 액상 전자담배를 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여들어 새금을 매길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액상 전자담배 시장은 당분간 무과세 상태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 입법 방치와 정부의 엇박자 규제를 틈타 수입업자들이 100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규모의 ‘니코틴 사재기’를 마친 탓이다.
◇ 100년 치 사용할 니코틴 사재기 폭탄
26일 한국무역협회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연간 7000㎏대이던 니코틴 원액 수입량은 지난해 1만1315㎏으로 급증했다. 올 들어 1~4월 수입량도 3717㎏에 달했다. 가공을 마친 전자담배 액상 수입액도 2021년 45만㎏에서 2024년 123만7618㎏, 2025년 191만5677㎏으로 늘어나더니, 올해 초 4개월 동안만 154만9125㎏이나 수입됐다.

지난해부터 올해 4월까지 수입된 양은 국내 연간 소비량(30mL 완제품 기준 약 3000만 병)을 감안할 때 100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규모라는 게 업계 추정이다.

개정 담배사업법엔 법 시행 전 수입된 물량에 소급 과세하는 조항이 빠져 있다. 수입업자들이 사재기한 액상 니코틴이 수십년간 면세 혜택을 누리게 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사재기 물량 상당수가 합성니코틴으로 위장된 ‘천연니코틴’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화학적으로 철저히 통제된 100% 합성니코틴은 유해성이 상대적으로 낮아 영국 등에선 금연 보조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반면 연초에서 추출한 천연니코틴은 1급 발암물질(TSNAs)이 포함돼 있어 가짜 합성 액상이 유통되면 건강에 치명적이다. 정진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 특히 청소년 건강이 위협받으면서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태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또 꼼수 수입으로 최소 16조원의 세금 탈루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액상 전자담배 시장이 본격적으로 활성화한 2016년부터 합성니코틴으로 수입된 액상 전자담배가 30mL 기준 약 3억 병 팔렸고, 이 물량에 천연니코틴 기준으로 정상적으로 과세(병당 약 5만4000원)했을 경우와 비교하면 탈루 규모가 16조원에 달한다는 계산이다.

이에 재정경제부는 “그동안 합성니코틴은 관리 사각지대에 있어 공식적인 판매량 통계가 없기 때문에 3억 병이라는 수치는 확인할 수 없는 숫자”라며 “수입된 전량이 천연니코틴인데 합성니코틴으로 둔갑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반박했다.
◇ 입법 방치·부실 검증이 꼼수 키워
관리 사각지대에 있던 액상 전자담배를 과세 대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목소리는 2021년께부터 나왔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입법에 소극적이었다.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현 재정경제부)는 ‘합성니코틴의 유해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규제를 미뤘다. 2024년 11월 발표된 보건복지부의 연구용역 결과 합성니코틴도 상당한 유해성이 있다는 것이 확인됐지만, 이후에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소상공인 피해 규모와 액상 담배 가격 변동에 대한 조사를 요구해 또다시 1년 이상 입법이 지연됐다.

업계 관계자는 “법안 처리가 3~4년 늦춰지는 사이 불법 업자에게 막대한 비과세 물량을 비축할 시간만 벌어준 셈”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환경 규제 완화도 사재기에 기름을 부었다. 2025년 1월부터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상 신규 화학물질 수입 한도를 100㎏에서 1000㎏으로 대폭 늘려주자 업계는 유해성 심사를 피하며 전례 없는 규모로 원액을 끌어모았다. 관세청의 부실한 검증 시스템도 꼼수 수입에 날개를 달아줬다고 업계는 평가하고 있다. 현재 관세청 시스템으로는 천연·합성 니코틴을 구별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시장 생태계 왜곡도 우려된다. 세금을 내고 정상 수입하는 진짜 합성니코틴 업자들은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도태될 수밖에 없다. 반면 수십년간 팔 수 있는 물량을 세금 없이 들여온 꼼수 업자들은 높아진 시장 가격에 편승해 막대한 마진을 챙기게 된다. 일반 소비자가 천연니코틴과 합성니코틴을 구분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한 합성니코틴 수입업자는 “사재기 탓에 담배사업법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며 “10년간 이어진 위장 수입 의혹의 실체를 규명하고 시중 유통 천연니코틴을 전수조사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정희원/하지은 기자 to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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