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새로운 반도체 거점으로 호남을 점찍으면서 해외 시장까지 들썩이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패권을 지키기 위한 초대형 베팅"이란 반응이 나오는 가운데 메모리 호황기 이후 사이클 하락기를 맞을 경우 수백조원대 투자가 공급 과잉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경고도 함께 나왔다.로이터통신은 30일(현지시간)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서남권 투자 계획에 대해 "AI 붐에 건 가장 큰 베팅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호남을 포함한 국내 반도체 생산 거점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면서 한국 정부의 AI·반도체 전략에 힘을 실었다는 관측이다.
삼성전자는 광주광역시에 반도체 팹 2기를 시작으로 약 400조원 투자한다. SK하이닉스도 서남권에 400조원을 들여 팹 2기를 건설하기로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를 "6000억달러 규모의 반도체 제조 확장"이라고 언급했다.
해외 매체들은 호남 투자를 산업정책의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한국이 삼성·SK 등 주요 기업을 앞세워 메모리칩·데이터센터·로봇 등에 최소 약 1350조원을 투입하는 구상이라고 설명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도 지역 균형발전 공약과 AI·반도체 전략이 맞물린 "가장 과감한 추진책"이라고 평가했다.
다른 한편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해외 애널리스트들은 가장 큰 변수로 공급 과잉을 꼽았다. 투자정보업체 모닝스타의 징제위 애널리스트는 로이터를 통해 "향후 10년간 설비투자가 빨라지면 장기적으로 공급과잉 위험이 더 커진다"고 했다. 그는 FT에서도 "초기에는 수요가 공급을 앞선다"면서도 막상 신규 생산시설이 본격 가동되는 시점에 수요가 둔화해 공급 과잉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짚었다.
정창원 노무라증권 아시아리서치 공동대표는 로이터에 "다른 지역에 투자하는 것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싼 불확실성을 '헤지'하는 방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 호남 투자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인허가·인프라 불확실성을 분산하는 성격도 있다는 분석이다.
홍콩 증권사 CLSA의 산지브 라나 선임 애널리스트도 신중론을 폈다. 그는 "메모리 산업 침체는 이 계획에 분명한 리스크"면서 다만 "메모리 업체들은 투자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유연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메모리 업황 침체가 현실화할 경우 기업들이 투자 속도를 조절할 여지는 있다는 얘기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장비 공급망 측면으로 이번 투자를 조명했다. 이 업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800조원 규모 투자 계획이 글로벌 반도체 산업을 "새로운 전국시대"로 밀어넣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TSMC·인텔의 2나노 이하 공정 확대 속도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 반도체 공급망엔 긍정적 효과가 예상된다는 평이 나왔다. 블룸버그가 인용한 씨티그룹 보고서는 한국 정부 주도의 대규모 투자가 반도체 장비를 포함한 국내 공급망 성장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씨티그룹은 '유망한 AI 수요 전망과 가속화된 신규 생산거점 확장 계획'을 근거로 한국 반도체 장비주에 우호적 시각을 유지했다.
김대영/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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