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추미애의 '첫 수', 반도체에 놓인 포석

입력 2026-07-02 17:39  


바둑에서 첫 수는 돌 하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판 전체를 어떻게 운영하겠다는 구상의 압축이기 때문이다.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취임 1호 결재로 'K-반도체 혁신 대책'을 결재판에 올린 것은, 민선 9기라는 대국의 첫 수를 '반도체'에 두겠다는 선언이다.

착점 자체는 나무랄 데 없다. 반도체는 진영 논리를 넘어선 국가 생존 전략이어서 어느 쪽도 흔들기 어렵고, 성과가 나면 파급력이 판 전체에 미친다.

수원의 연구개발과 용인·화성·평택·이천의 제조로 이어지는 클러스터는 경기도가 이미 세력을 쌓아 놓은 지역이다.

자기 진영이 두터운 곳에서 두는 수이니 빠르고 확실하게 성과를 낼 수 있다. 이번 1호 결재는 강성 정치인이라는 오랜 이미지를 '실용적 경제 도지사'로 바꿔 보이려는 행마이기도 하다.

포석의 야심은 그다음 수에서 드러난다. 추 지사는 도지사 직속 반도체전략위원회를 만들고 대통령 주재 특별위원회와의 정례 협의까지 공식 제안했다. 정부가 두는 대로 받아내는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라, 국가 반도체 전략의 판을 함께 짜는 쪽에 서겠다는 것이다.

오는 8월 반도체 특별법 시행으로 지자체 간 경쟁이 본격화하기 전에 유리한 자리를 선점하려는 계산도 읽힌다. 경기미래투자공사 설립과 팹리스 200개 육성까지 보면, 대기업 투자에 좌우되는 구조에서 벗어나 경기도 자체의 기반을 두텁게 하려는 긴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바둑은 포석만으로 이기는 게임이 아니다. 기자가 주목하는 것은 중반전이다. 반도체 정책의 요처인 세제·전력·규제는 여전히 중앙정부가 쥔 돌이다. 위원회를 구성하고 협의를 제안하는 것만으로 판이 열리지는 않는다.

전임 지사들도 반도체를 앞세우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용인 산단의 전력 문제 하나를 매듭짓는 데도 수년이 걸렸다.

첫 수에 무게를 실을수록 부담이 커진다. 1호 결재로 우선순위를 못 박은 이상, 반도체의 성패는 곧 이번 도정 전체의 성패로 이어질 수 있다. 스스로 '속도전'을 공언했으니 한 수 한 수에 주어진 시간이 짧아졌다.

도민이 기다리는 것은 화려한 포석 해설이 아니라 반상에 실제로 지어진 집이다. 첫 수는 좋았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이 포석이 명국의 서막이 될지, 구상만 거창한 대국으로 남을지는 앞으로의 도정 운영에 달려 있다. 추 지사의 다음 행마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원=정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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