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제외한 서방 '방산 동맹' 강화...전쟁 비용 조달할 ‘방위 세계은행’ 추진

입력 2026-07-09 08:38   수정 2026-07-09 08:40

美 제외한 서방 '방산 동맹' 강화...전쟁 비용 조달할 ‘방위 세계은행’ 추진


캐나다와 룩셈부르크 등 서방 동맹국들이 군사 장비 조달을 위한 새로운 다자 금융기관 설립에 나섰다. 무기 생산과 공급망 확대의 병목으로 꼽히는 자금 조달의 어려움을 풀려는 시도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주도

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캐나다, 룩셈부르크, 튀르키예, 우크라이나 등 9개국은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린 NATO 연례 정상회의에서 ‘방위·안보·회복력 은행’ 출범을 발표했다. 은행이 러시아, 중국 등 권위주의 세력에 맞서는 막대한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과거 공산주의 붕괴 뒤 동유럽 재건에 쓰인 정부 보증 금융 방식을 방위 분야에 적용하려는 구상이다.

각국 정부는 한 세대에 한 번 있을 수준의 무기 증강에 들어갔다. 그러나 장비를 만드는 많은 기업은 여전히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새 은행은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한 군사 장비판 세계은행으로 설계되고 있다.

이 은행을 추진하는 국가들은 군사 강국의 최상위권에 속하지 않는 나라들이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구상의 핵심이다. 캐나다와 룩셈부르크, 튀르키예, 우크라이나 등은 자체 국방력과 금융 여력만으로는 빠르게 커지는 안보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보고 '공동 금융기관'을 통해 생산 능력과 회복력을 키우려 한다.

은행 지지자들은 방위 전용 대출기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기존 다자개발은행들은 방위산업 금융을 대체로 피해왔다. 윤리 기준과 대중적 반대 여론은 오랫동안 군수산업을 담배, 포르노 산업과 함께 우량 금융기관이 피해야 할 고객군으로 묶어왔다. 이 때문에 방산기업, 특히 공급망 하위의 중소 부품업체들은 자금 조달에 제약을 받아왔다.

방위·안보·회복력 은행 구상은 지난해 나토 회원국들이 국내총생산의 5%를 방위와 안보에 쓰기로 약속한 뒤 속도를 냈다. 그러나 각국은 돈을 실제 무기와 회복력 강화로 전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기 생산 공급망 곳곳의 병목이 제조 확대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은행의 가장 강한 지지자는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다. 영국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그는 중견국들이 함께 뭉쳐 지정학적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카니 총리는 올봄 방위·안보·회복력 은행 헌장 초안을 마련하기 위한 협상을 주재했다. 금융 중심지인 룩셈부르크도 이 구상을 지지했다.

2018년 이 은행 구상을 처음 제안하고 최근 헌장 협상을 이끈 전 나토 혁신 책임자인 롭 머리는 더 이상 과제가 단순히 방위비를 더 찾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영국 육군 장교 출신인 그는 정치적 약속을 공장, 생산라인, 군사 능력으로 바꿀 수 있는 금융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머리는 "금융이 더 이상 경제 문제에 그치지 않고 억지력의 일부"라고 말했다. 충분한 물자와 생산 능력이 갖춰져 있으면 적국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방산 금융을 단순한 산업 지원이 아니라 군사적 억지 구조의 한 축으로 보는 접근이다.
소극적인 민간 투자의 대안

방위산업 금융을 확대하려는 다른 움직임도 있다. 핀란드, 영국, 네덜란드, 폴란드는 6일 투자와 조달 협력을 가속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유럽과 동맹국들이 무기 생산 확대를 위해 재정 지출뿐 아니라 금융, 조달, 산업정책을 함께 동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방위·안보·회복력 은행은 전 세계 민주국가 정부들이 출자해 새 은행의 자본을 만들고, 각국의 국가신용등급을 활용해 트리플A 등급으로 더 많은 자본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설계된다. 이후 이 기관은 군수업체에 자금을 대는 상업은행에 보증을 제공하거나, 국가안보에 필수적이라고 판단되는 프로젝트에 직접 대출한다. 이는 세계은행과 최근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이 닦아놓은 방식과 유사하다.

유럽과 캐나다는 방위비를 늘렸지만, 아직 실제 역량 증대로 충분히 이어지지 않고 있다. 공급망 병목 때문이다. 나토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이후 나토 유럽 회원국과 캐나다의 누적 추가 핵심 방위 지출은 계속 증가해왔다. 그러나 자금이 중요한 안보 공급망 구석구석, 특히 소규모 공급업체까지 충분히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문제가 남아 있다.

JP모건체이스와 씨티그룹 등 상업 대출기관은 방위 부문 대출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은행, 보험사, 투자자는 여전히 주저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특히 유럽에서 강하다. 상업과 군수 고객을 함께 상대하는 부품 공급업체들은 자금 압박을 더 크게 받고 있다.

미국과 독일 등 자금력이 큰 군사 강국들은 방위·안보·회복력 은행의 발전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며, 향후 참여할 수도 있다. 다만 창립 멤버로 참여하지는 않는다고 주최 측은 전했다. 카니 총리는 최근 이 구상에는 이미 충분한 핵심 규모가 있다며, 이제 모두에게 참여 기회를 주는 문제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은행 자금은 무기 구매와 탄약 공장 건설부터 사이버보안 강화까지 다양한 프로젝트에 쓰일 수 있다. 위험이 커졌다고 판단되는 국가, 특히 중국 투자자로부터 핵심 인프라를 되사오는 데도 활용될 수 있다. 이는 방위금융의 범위가 전통적 무기 조달을 넘어 경제안보와 공급망 회복력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뜻한다.
"전쟁 특화 은행" 비판도
일각에선 전쟁에 특화된 은행이라는 발상 자체를 공격한다. 방산 내부의 회의론자들은 정부가 최근 지출을 늘렸고, 유럽에는 이미 나토와 유럽연합을 통한 다국가 조달과 프로젝트가 있다고 지적한다. 유럽연합도 방위 생산에 자금을 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더 빠른 행동을 요구하는 은행 지지자들은 기존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반박한다. 이들은 현재 제도가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본다. 나토 최고 군사자문역을 지낸 롭 바우어 전 네덜란드 해군 제독은 "대출 제약에 묶이지 않는 방위·안보·회복력 은행 같은 기관이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통적 사고방식을 깨는 모든 시도가 도움이 된다고 평가했다.

대형 방산업체들도 이 은행의 보증 금융에서 혜택을 볼 수 있다고 은행 지지자들은 말한다. 정부 예산은 해마다 변동하는 경우가 많아 자금 불확실성을 키우고, 이는 방산업체의 차입 비용을 높일 수 있다.

방위·안보·회복력 은행의 높은 신용등급으로 뒷받침되는 장기 대출은 자금 흐름을 안정시키고 군수업체가 부담하는 위험 프리미엄을 낮출 수 있다. WSJ는 "앞으로 관건은 이 은행이 충분한 출자국과 신용도를 확보해 방산 공급망의 자금난을 실질적으로 푸는 것"이라며 "러시아와 중국 견제에 필요한 생산 역량을 얼마나 빠르게 키울 수 있느냐도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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