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벤처캐피털(VC)업계에서 나도는 우스갯소리다. 최근 VC 투자를 받은 로봇 스타트업의 기업가치가 시장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빠르게 불어난다는 의미다. VC의 ‘돈쭐’은 일부 스타트업에만 돌아간다. 로봇이나 인공지능(AI) 등 일부 업종 딥테크 스타트업, 그중에서도 학계에서 명성을 떨쳤거나 연쇄 창업자가 있는 ‘검증된’ 창업팀에만 자금이 집중되는 모습이다.

벤처투자정보 플랫폼 더브이씨에 따르면 13일 기준으로 최근 1년간 400억원 이상 투자금(M&A 제외)을 유치한 스타트업은 총 25곳이다. 이들 중 16곳이 AI, 반도체, 로봇 관련 기업이다. 대형 초기 투자의 절반 이상이 딥테크에 집중됐다. 초기 투자 규모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지자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시드(씨앗)가 코코넛처럼 커졌다”는 표현이 나오기도 했다.
대형 투자 시점도 앞당겨졌다. 과거에는 사업 성과를 어느 정도 입증한 기업이 메가 라운드를 열었다. AI 스타트업 업스테이지도 시리즈A에서 316억원을 유치한 뒤 시리즈C에 이르러서야 1800억원을 투자받았다. 최근에는 분위기가 다르다. 홀리데이로보틱스와 컨피그인텔리전스처럼 창업 초기부터 수백억원 이상 자금을 확보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벤처투자 시장의 자금 흐름은 철저히 딥테크 중심이다. 더브이씨에 따르면 올 상반기 말 기준 시드와 시리즈A 등 초기 라운드 투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AI·로봇 분야에 몰렸다. 시드 투자로만 한정하면 투자금의 90% 이상이 AI·로봇 분야에 집중됐다. 투자 주체가 다양해진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과거에는 VC가 초기 투자를 이끌었다. 최근에는 전략적투자자(SI), 정책자금, 해외 투자자까지 한 기업에 동시 참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리벨리온처럼 국내외 자본이 함께 투자하는 구조도 나타났다.
시장 유동성은 증가했지만 온기가 모두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투자금은 소수 기업으로 더 빠르게 쏠리고 있다. 한 VC업계 관계자는 “미국도 소수 기업으로 투자금이 몰리는 K자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국내 역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많지 않아 투자 대상이 자연스럽게 좁혀졌다”고 말했다.
VC가 초기부터 수백억원을 베팅하는 것은 딥테크산업의 특성 때문이다. AI와 반도체, 로봇은 연구개발 기간이 길다. 그래픽처리장치(GPU)와 클라우드, 연구 인력 확보에도 큰 비용이 든다. 시장을 선점하려면 창업 초기부터 충분한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졌다.투자자들은 ‘누가 창업했느냐’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검증된 창업자를 고르면 실패 확률이 낮다고 보는 것이다. 홀리데이로보틱스는 AI 비전 기업 수아랩을 창업해 회사를 성공적으로 매각한 송기영 대표가 세웠다. 컨피그인텔리전스는 KAIST 김재철AI대학원 부교수 출신인 서민준 대표가 메타, 네이버, 트웰브랩스 연구원 출신 전문가를 모아 설립했다. 위로보틱스는 이연백, 김용재 공동대표 등 삼성전자 로봇개발팀 출신 핵심 엔지니어 4명이 공동 창업한 기업이다.
VC업계 관계자는 “딥테크에서는 창업자 프리미엄이 분명히 존재한다”며 “검증된 창업자가 팀을 꾸리면 우수 연구진이 모이고, 투자 경쟁도 자연스럽게 치열해진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과거엔 VC가 ‘분산 투자’를 했다면 이제는 성공 가능성이 큰 딥테크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남준우 기자 njw082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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