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대만의 '반도체 신흥계급'이 보내는 경고

입력 2026-07-13 17:52   수정 2026-07-14 00:21

“지금이라도 대입 시험을 다시 보고 이공계 전공을 선택할 순 없어?”

대만 TSMC 본사가 있는 신주과학단지에서 만난 TSMC 엔지니어가 인터뷰 도중 갑자기 기자에게 물었다. 자신이 받는 성과급을 설명하다가 갑자기 동갑내기인 한국 기자의 미래가 걱정된 것이다. TSMC의 10년 독주 속에 ‘신흥계급’에 오른 반도체 엔지니어 입장에서 자신들과 다른 길을 가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울 만했다.

돌이켜보면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 새로운 사회 계급을 만들어 내는 일은 반복돼 왔다. 19세기 후반 미국의 철도 붐으로 ‘철도 귀족’이 등장했고, 20세기 중반 세계 최고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에서는 자동차 노동자가 중산층으로 성장했다.

지금은 반도체의 시간이다. 대만에서 TSMC 등 반도체 기업의 엔지니어는 일반 직장인의 4~5배에 달하는 연봉을 받는다. 신주 일대 집값도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그만큼 그 사다리를 오르려는 열망은 커졌다. 2026학년도 9월 학기 대학 지원 결과, 전기·전자·정보기술(IT)·인공지능(AI) 학과에 고득점 지원자가 대거 몰렸다. 화학공학과 1차 합격선도 지난해보다 많이 높아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거액 성과급 지급을 시작으로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TSMC를 주름 잡는 ‘리궁난(理工男·반도체업계 종사자)’은 ‘삼전닉스남’으로, 이들과 결혼한 ‘위안취마마(園區??·과학단지 엄마)’는 ‘동탄맘’으로 치환할 수 있다. 박정호 명지대 산업대학원 교수는 “반도체 기업의 성과급 지급으로 직간접적인 수혜를 본 약 40만 가구가 고급 주택 수요층으로 떠오르면서 집값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TSMC 독주로 대만 사회가 겪는 양극화 문제도 경계 대상이다. 고임금으로 인해 오른 집값과 생활물가는 90%의 비반도체 업종 종사자가 함께 떠안는다. 우제민 대만중앙연구원 특임연구원은 “물가 상승만 보면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대만 중앙은행으로서는 경기와 산업 전반에 미칠 충격을 고려해 통화정책을 운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론 자동차와 2차전지 등 다른 산업도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은 대만보다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산업 발전의 열매가 사회 전체에 돌아가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은 매한가지다. 이정동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술 발전이 초래하는 불평등과 실업을 방치하면 사회적 저항이 커져 기술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며 “이를 국가적 아젠다로 삼아 대응하지 않으면 인구 문제보다 더 심각한 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TSMC의 눈부신 성과와 함께 그림자를 응시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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