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자동차그룹 로봇 자회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미국 상장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자회사의 해외 상장에도 중복상장 규제가 적용되지만 까다로운 주주 동의와 같이 엄격한 규제는 피할 수 있게 되면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분 22.6%를 보유한 보스턴다이내믹스는 ‘피지컬 AI’라는 상징성과 함께 그룹의 숙제인 지배구조 개선과도 맞닿아 있다. 일각에서는 보스턴다이내믹스 해외 상장에 따른 이익을 현대차 등 국내 모회사 주주들과 나눌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회사 주주 동의 없이 상장 가능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가 지난 7월 6일 발표한 ‘중복상장 원칙 금지 및 예외 허용을 위한 거래소 규정과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중복상장 심사 기준은 자회사 등을 해외 증시에 기업공개(IPO)할 때도 그대로 적용된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미국 나스닥 증시에 상장하려면 △주주 영향평가 △주주 보호방안 마련 △주주 소통 및 주주 동의 확인 △이사회 찬반 결의 및 자회사 통지 △단계별 공시 등 5대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현대차(28%)를 비롯해 기아(17.2%), 현대모비스(11.3%), 현대글로비스(11.25%)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보스턴다이내믹스는 현대차가 ‘종속회사에 준하는 수직적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계열사로 간주된다.
하지만 기존 주주가치 훼손 지적을 받아온 물적분할 자회사 상장이 아닌 경우에는 모회사 대비 매출과 영업이익, 자산 비중이 모두 10% 미만인 저비중 기업은 이사회 결의만으로 투자자 보호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본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지난해 매출 1501억원을 기록했지만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연구개발 등 투자 확대 영향으로 5284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자산도 7774억원으로 현대차의 총자산(연결기준) 368조8488억원의 0.2% 수준에 그친다. 사실상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저비중 자회사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별도 주주 동의 없이도 상장을 추진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의무 이행이 미흡하다고 판단될 경우 거래소로부터 최대 10억원의 제재금과 매매거래정지 1일을 부과받을 수 있다.
자회사를 해외에 상장할 때는 모회사 주주 동의 이후 상장하려는 국가 측 감독당국의 규제를 받는다. 미국에 있는 보스턴다이내믹스가 나스닥시장에 상장하려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심사를 받는 방식이다. 이 경우 한국거래소의 깐깐한 중복상장 특례 심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 대신 금감원이 증권신고서 심사를 통해 중복상장 절차와 관련해 추가 검증을 할 방침이다. 미국 상장 주식을 국내 투자자에게 재판매할 때는 국내에 별도로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현대차그룹 100% 자회사로
현대차그룹은 일본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9.65%를 전량 인수하기로 했다. 현대차그룹과 정의선 회장이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100%를 확보해 나스닥 상장과 2028년을 목표로 잡은 아틀라스 양산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 6월 소프트뱅크로부터 8억8000만달러에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80%를 인수했다. 당시 계약을 하면서 일정 기한 내 상장하지 않으면 소프트뱅크가 보스턴다이내믹스 잔여 지분을 현대차그룹에 팔 수 있는 풋옵션(주식을 팔 수 있는 권리) 조항을 넣었다. 소프트뱅크의 풋옵션 행사기간은 2021년 6월 21일부터 5년이 경과한 시점(2026년 6월 20일)부터 30일 이내다. 소트프뱅크가 이달 초 이 조항에 따라 풋옵션을 행사하면서, 현대차그룹은 그룹 차원에서 지분 전량을 인수하기로 했다.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등 현대차그룹 내 주요 계열사들은 앞서 임시 이사회 등을 열고 보스턴다이내믹스 잔여 지분 인수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금액은 3억2500만달러(약 4900억원)로 책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그룹이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100%를 확보하면 정의선 회장을 중심으로 한 그룹 지배구조 개편도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주요 대기업 중 유일하게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다. 특히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에 대한 정의선 회장 지분율은 0.33%에 그친다.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려면 기아(18.10%)와 정몽구 명예회장(7.47%) 등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해야 한다. 올 들어 피지컬 AI 바람을 타고 현대차그룹 계열사 주가가 오르면서 기아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사들이는 데만 8조원 가까운 자금이 필요하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나스닥 상장 시점은 아틀라스 양산과 맞물린 2027~2028년으로 예상된다. 증권가에서는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업가치를 30조원 이상으로 평가하고 있다. 아틀라스 상용화가 본격화하면 기업가치가 100조원에 육박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소프트뱅크의 보스턴다이내믹스 잔여 지분(9.65%)은 기존 주주 지분율에 따라 분배될 가능성이 높다고 시장에서는 보고 있다. 이럴 경우 정의선 회장의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도 현재(22.6%)보다 더 늘어나게 된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상장 후 기업가치가 50조원에 달할 경우 정 회장의 지분 가치는 10조원을 훌쩍 웃돈다. 정 회장이 추후 보스턴다이내믹스 개인 지분을 처분해 현대모비스 지분 등을 사들이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도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할 수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 약발 끝? 현대차 주가 약세

보스턴다이내믹스 상장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최근 현대차 주가는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올해 최고 75만원을 돌파했던 현대차 주가는 7월 들어 30만원대까지 떨어졌다. 올 1월까지만 해도 35%를 웃돌던 현대차의 외국인 지분율은 7월 들어 25% 수준에 그친다. 아틀라스 등 피지컬 AI는 아직 갈 길이 먼 반면 당장 현대차의 본업인 자동차는 판매 부진과 미국발 관세 여파가 겹치면서 수익성이 악화된 탓이다. 올해 2분기(3~6월) 현대차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4% 감소한 2조8300억원에 그칠 것으로 증권가에서는 전망했다. 키움증권은 7월 8일 현대차 목표주가를 기존 75만원에서 70만원으로 내려잡기까지 했다. 원·달러 환율 상승에 따른 외화 기준 판매보증 충당부채 증가 등 일회성 요인도 있지만 당장 본업 경쟁력 확보가 중요한 시점이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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