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으로는 재생에너지를 쓰려는 기업들이 발전사업자를 일일이 찾아다니지 않아도 온라인에서 계약 상대를 찾고 가격 협상까지 할 수 있게 된다. 정부가 구축한 '전력구매계약(PPA) 중개플랫폼'을 통해서다. 그동안 기업들이 높은 관심을 보여온 '햇빛소득마을'과의 계약 물꼬도 한층 쉽게 트일 전망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15일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PPA 수요기업을 연결하는 PPA 중개플랫폼 시범사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한국에너지공단이 운영하는 이 플랫폼에서는 발전사업자, 중개사업자 등 공급자와 수요기업이 각각 판매 가능한 전력량과 필요한 전력량을 등록한 뒤, 서로의 조건을 비교하고 계약 협상까지 원스톱으로 진행할 수 있다.
플랫폼은 이달 말까지 모의거래를 거쳐 내달 초 정식 운영에 들어간다. 이날 서울에서 열린 모의거래 행사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수요기업 20여 곳의 관계자가 참석했다. 에너지공단 관계자는 "이번 플랫폼은 기존 민간 중개사업자의 비즈니스 영역을 침범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시장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던 소규모 공급자와 수요기업을 효율적으로 이어주는 '가교' 역할에 집중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대기업을 중심으로 RE100(재생에너지 100% 조달) 이행 수요가 급증하면서 PPA 시장은 빠르게 영토를 넓혀왔다. 누적 계약 건수는 2023년 13건에서 2024년 29건, 지난해 79건으로 늘어난 데 이어 올해는 5월 기준 이미 118건을 돌파했다. 하지만 기업들은 그동안 PPA를 맺을 발전사업자를 직접 찾아다녀야 해 계약 상대를 탐색하는 데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든다는 지적을 제기해왔다.
특히 최근 수요기업들은 정부가 추진 중인 '햇빛소득마을'과의 PPA 체결에 관심이 많았으나, 물리적 한계에 부딪혀왔다. 햇빛소득마을은 농어촌 주민들이 마을 지붕이나 공공부지에 태양광을 설치해 발전수익을 나누는 사업이다. 최근 진행된 1차 공모에만 설비용량 117MW에 달하는 공급량이 모였지만, 이는 전국 11개 시·도의 129개 마을이 쪼개어 참여한 결과다. 향후 햇빛소득 사업을 희망하는 마을이 1000곳을 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수요기업이 전국 각지의 마을을 직접 찾아다니며 개별 계약을 추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업계에서는 이번 중개플랫폼이 활성화되면 여러 마을의 소규모 태양광 발전량을 하나로 묶어 대기업 한 곳과 장기 계약을 맺는 '공동 PPA' 사례가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은 RE100을 달성하고, 주민은 안정적인 발전수익을 얻는 상생 구조가 안착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정부는 플랫폼 이용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유인책도 마련했다. 1MW 이하 소규모 발전사업자에게는 계량기 설치비를 지원한다. 국산 기자재 설비를 이용한 발전사업자와 PPA를 맺는 수요기업에는 망 이용요금 지원 기간을 중소·중견기업은 최대 7년, 대기업은 최대 5년으로 늘린다. 지붕형 태양광의 경우 보증보험료 지원 비율도 최대 50%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플랫폼 출범을 계기로 고공행진 중인 PPA 단가가 하향 안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기업들이 체결하는 PPA 평균 가격은 kWh당 175~185원 선으로, 일반 산업용 전기요금과 비슷한 수준이다. 앞으로 플랫폼 내에서 여러 발전사업자의 제안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게 되면 판매자 간 가격 경쟁이 이뤄질 전망이다.
특히 이 같은 플랫폼 기반의 경쟁 체제는 정부가 추진 중인 '입찰제도(계약제도) 개편'과 맞물려 단가 인하를 한층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들은 대기업과 PPA를 맺을 때, 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를 현물시장에 팔아 얻을 수 있는 기대수익을 가격 기준으로 삼아왔다. 최근 재생에너지 수요 급증으로 공급자 우위 시장이 형성되면서 REC 가격이 치솟자, PPA 단가 역시 동반 상승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하지만 정부가 앞으로 REC 현물시장 의존도를 낮추고 정부 주도의 '고정가격계약 입찰제도'를 통해 시장 기준가격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하면 판도가 달라진다. 발전사업자들은 정부 입찰 시장의 기준가격을 참고해 PPA 단가를 현실적인 수준으로 조정할 수밖에 없고, 수요기업들 역시 이를 근거로 적극적인 가격 인하를 요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발전사업자들 사이에서는 지금이 상대적으로 좋은 가격에 장기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시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현재 RPS 제도에서 운영 중인 태양광 고정가격계약의 평균 계약가격은 2017~2019년 180원 안팎이었지만, 2021년에는 130원대까지 떨어진 적이 있다. 최근에는 다시 150원 안팎 수준으로 올라왔지만, 업계에서는 정부가 RPS 개편 이후 계약시장 입찰가격을 단계적으로 낮춰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 수준에서 장기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발전사업자에게는 유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가 주도하는 입찰계약 시장과 민간 PPA 시장이 상호작용하며 전체 재생에너지 거래 단가를 끌어내리는 효과를 낼 것"이라며 "두 제도의 시너지를 통해 국내 RE100 이행 비용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추겠다"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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