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성그룹이 창립 60년 만에 인문계 전공자만 뽑는 신입 특별채용에 나선다. 화학과 전력기기 등 전통 제조업 기반 기업인 효성에서 전례 없는 일이다. 인공지능(AI) 열풍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새로운 사업 기회가 해외에서 늘고 있는 상황에서 현지 문화를 이해하고 성과를 내려면 인문학, 언어 역량이 필수라는 판단 때문이다.
산업계에서는 효성뿐만 아니라 다른 대기업도 문과 인재 확보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해외에선 AI산업을 선도하는 기업들이 인문학 전공자 채용을 늘리는 분위기다.
효성이 창사 60년 만에 처음으로 문과생 신입사원 채용에 나선 것은 최근 급변한 회사 사업 구조 때문이다. 글로벌 사업이 많아지면서 그룹 매출의 80% 이상이 해외에서 나온다. 주요 계열사인 효성티앤씨와 효성화학의 지난해 매출 중 수출 비중은 각각 91%, 73%다. 효성중공업도 전력기기 사업의 수출 비중이 57%로 반 이상이다. 계열사 세 곳의 해외사업장 직원은 지난해 기준 9841명이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열풍으로 해외 비중은 더 높아질 전망이다. 효성중공업의 올 1분기 신규 수주는 4조1745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다. 효성중공업은 지난해 말 미국 멤피스 초고압 변압기 공장에 1억5700만달러를 추가 투자해 2028년까지 생산능력을 50% 이상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회사 관계자는 “국내 본사에서 현지 고객사와 소통하거나 현지에서 직원을 관리할 인력이 필요하다”며 “현지 문화에 잘 스며들고 외국인과 자유자재로 소통하려면 인문학적 소양과 어학 능력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평소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해 온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의 경영 철학이 반영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 회장은 “우리 세대엔 기술이 인문학과 결합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생각도 있다”며 “변화를 읽어내는 힘, 롤러코스터 타는 타이밍을 읽어내는 힘은 인문학에 있다”고 말했다.
오픈AI는 챗GPT 등 자사 AI 모델을 검증하는 ‘레드팀’에 언어학·심리학·사회학·인류학·법학 등 각계 전문가를 투입했다. AI가 중의적 표현을 잘못 이해하는지, 역사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특정 국가의 관점에서만 해석하는지 등을 지속적으로 검사한다.
아마존은 지난달 ‘AI 튜터’ 채용 공고를 냈다. 생성형 AI 기반 쇼핑 도우미를 개발하는 직무로, 문체뿐 아니라 제품 정보가 불충분할 때 어느 수준의 답을 내놓을지 등을 판단한다. 지원 자격은 영어나 언어학, 커뮤니케이션 관련 학사 학위 취득자다.
산업계 관계자는 “AI가 정형화된 업무를 대체하는 시대에 창의성과 도약적인 논리를 적용할 수 있는 인문학 전공자가 주목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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