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3세인 변호사 A씨는 2년 전 국내 대형 로펌에 취직했다. 연봉이 1억원을 넘지만 형편이 어려운 부모의 대출을 대신 갚고 동생에게도 매달 생활비를 보내는 등 지출이 많아 돈을 모으기 쉽지 않다. 소득 요건 탓에 디딤돌대출 등 정책대출은 받을 수 없다. 부모 도움으로 집을 마련한 주변 동료와의 자산 격차를 좁히기 위해 주식 투자를 시작했지만, 널뛰는 장세에 스트레스가 더 커졌다. 그는 “부모 지원을 받은 이들과는 출발선이 다르다”며 “10년, 20년 뒤에는 격차가 더 벌어질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35.0%. 2023년 기준 가진 재산은 적지만(순자산 1·2분위) 연봉이 중상위(소득 3·4·5분위)인 청년층(20~34세)이 2년 뒤인 2025년 순자산 상위 계층으로 한 분위라도 이동했을 확률이다. 이 확률은 2017~2019년 42.9%에서 2020~2022년 40.7%로 떨어진 데 이어 30%대로 내려앉았다.
A씨 같은 ‘성실한 흙수저’가 자산 상위 계층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갈수록 낮아지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고소득·저자산 계층을 지칭하는 미국의 ‘HENRY(High Earners, Not Rich Yet)’가 국내에서도 확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최근 급속하게 진행되는 인공지능(AI) 전환은 새로운 소득 격차를 낳고 있다. ‘삼전닉스’ 등 정보기술(IT) 부문은 성과급을 중심으로 임금이 대폭 오른 반면 다른 분야 임금 상승은 정체된 영향이다. 반도체는 고용유발 효과도 낮다. 15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6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층(15~29세) 취업자는 19만7000명 감소했다. 44개월 연속 내림세다.
바늘구멍을 통과한 삼전닉스 직원과 그렇지 못한 청년들이 새로운 계층을 형성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반도체 호황을 경험한 대만에서 일어난 일이다. TSMC 직원은 대만 직장인 평균의 다섯 배가 넘는 임금을 받는다. TSMC 본사가 있는 신주과학단지의 집값은 나홀로 폭등했다.
자산과 소득의 복합 양극화는 사회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려 중장기적으로 혁신을 저해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챗GPT 등장 후 청년 취업자 감소…IT-비IT 종사자간 소득격차 커져
#2. 서울에 사는 프리랜서 33세 C씨는 스타트업을 다니다 경영 악화로 퇴사했다. 1년간 직업 없이 ‘쉬었음 청년’으로 지낸 그는 논술학원 강사로 재취업해 월 200만원가량을 벌고 있다. 집안 형편상 지원을 기대할 수 없어 서울에 전셋집도 마련하기 어렵다. 월세, 생활비 등을 쓰고 나면 남는 돈은 없다. 주식 투자는 남의 일이다. 그는 친구들과의 소득·자산 격차가 노력해서는 좁힐 수 없을 만큼 벌어졌다고 느껴 결혼도 포기했다. 최근엔 다니는 학원에서 쫓겨나지 않을지 더 걱정이다. 이 학원이 논술 문제를 인공지능(AI)으로 채점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면서다. C씨는 “요즘은 글쓰기를 가르치는 것보다 AI가 좋아할 만한 표현을 분석하는 게 일”이라고 말했다.
과거 한국의 양극화는 노동시장 이중 구조에서 비롯된 가계소득 격차가 주를 이뤘다. 이제는 부동산, 주식을 비롯한 자산 가격 상승과 AI발(發) 기술 변화에 따른 업종별 소득 격차 등 복합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다. 가진 게 많으면서 AI 수혜까지 누리는 계층은 고소득을 바탕으로 자산을 빠르게 늘리는 반면 그렇지 않은 계층은 높은 주거비 부담에 수입마저 불안정해 자산 기반이 더 무너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출발이 엇갈린 30대 부부가 그런 사례다. D씨 부부는 둘 다 SK하이닉스에 다닌다. 높은 연봉을 바탕으로 2017년 경기 화성 동탄 아파트를 7억원에 샀다. 이 아파트는 현재 20억원까지 올랐다. 자사주를 포함한 금융자산은 부부 합산 15억원에 이른다.
반면 자영업자인 30대 E씨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아내와 함께 서울 중랑구 전셋집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지금은 전세 5억원에 59㎡ 규모 아파트에 거주한다. 전세 만기 때마다 집을 살까 고민했지만 치솟는 가격에 포기했다. 부부 월급은 600만원 수준인데 전세대출 이자에 생활비 등을 쓰고 나면 남는 돈이 100만~200만원에 불과하다. SK하이닉스 주식 한 주도 살 수 없는 형편이다.
AI 기술 확산은 경력 초기 단계인 청년층 직무를 대체해 앞으로 소득 격차를 더 벌릴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있다. 청년층은 AI에 따른 실업 우려가 다른 연령대보다 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챗GPT가 출시된 2022년 11월을 100으로 했을 때 올해 1월 기준 AI 노출도 상위 산업의 청년층 취업자는 84로 줄었다. AI 고노출 산업의 50대 취업자는 108로 오히려 증가했다.
AI발 소득 양극화는 기존의 자산 양극화를 더욱 굳히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정보기술(IT) 부문 근로 가구와 비(非)IT 가구에서는 소득 격차와 자산 격차가 동시에 확대되고 있다. 2020년 IT 근로 가구와 전체 가구의 중위소득은 각각 6200만원, 5900만원으로 격차는 300만원이었다. 그러나 2024년엔 각각 7800만원, 6200만원으로 격차가 1600만원으로 벌어졌다. 마찬가지로 IT 근로 가구와 전체 가구의 중위순자산 격차는 2020년 4000만원에서 2024년 1억원으로 확대됐다.
청년층은 이미 그 격차가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청년 가구(20~39세) 자산 상위 20%(5분위)와 하위 20%(1분위)의 평균 순자산은 각각 9억3022만원, 2301만원으로 격차가 약 40.4배에 달했다. 또 순자산과 소득이 모두 1분위인 가구 중 청년층 비중은 2020년 7.9%에서 15.2%로 크게 늘었다.
여러 차원의 양극화가 동시에 심해지는 상황은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저해할 우려가 크다. 특히 청년층 내부의 소득·자산 양극화는 개인의 박탈감을 넘어 사회 전체의 역동성과 지속 가능성을 위협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결혼·출산 양극화와 근로 의욕 상실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김윤태 고려대 공공정책대학 교수는 “성공한 청년은 스스로의 노력 덕분이라고 믿고, 낙오된 청년은 스스로를 책망한다”며 “(이런 인식이 확산하면 구성원 간 연대가 약해져) 사회적 신뢰가 낮아지고 혐오가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기술 발전 성과가 경제 전반에 확산할 수 있도록 세금 제도 등을 재편하는 한편 비IT산업에 과감하게 투자해 성장 엔진을 다각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일규/정희원/김익환/남정민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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