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와대가 지난 16일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었다. 한미 통상·안보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NSC가 위임한 사항을 처리하는 상설 위원회다. NSC 의장을 대통령이 맡는 것과 달리 상임위 위원장은 국가안보실장이 맡는다.
NSC의 기능은 국가안전보장회의법에 한 줄로 규정돼 있다.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된 대외정책, 군사정책 및 국내정책 수립에 관해 대통령 자문에 응한다’는 것이다. NSC 상임위는 NSC의 ‘대통령 자문’ 기능이 ‘관련 사항 협의’로 바뀌어있다. 실질적으로는 같은 주제를 논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NSC 상임위에는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도 참석을 했다. ‘국가 안전 보장’ 관련 협의를 하는 NSC 상임위에 경제 부처 수장이 직접 참석한 것은 드문 일이다. 산업통상부에서는 김정관 장관을 대신해 다른 관계자가 참석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 지시로 일시 귀국한 강경화 주미대사도 참석했다.
NSC 운영 규정에 따르면 NSC 상임위원장은 필요한 경우 관계 부처 장관이나 관계자를 부를 수 있다. 그럼에도 NSC 상임위에 경제부총리와 경쟁 당국 수장, 주미대사를 한꺼번에 부른 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양국 주요 현안을 둘러싼 긴장감이 관리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자 적극적인 관리 모드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야권에서는 ‘한미 동맹 균열’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여러 한미 현안을 함께 조율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사안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정부 관계자도 “이제는 경제와 안보를 따로 생각하기 어려운 시대”라며 NSC가 경제 부처까지 소집한 이유를 설명했다.

NSC 상임위 핵심 의제 중 하나는 대미 투자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미 정상은 지난해 정상회담 결과물로 ‘한미 조인트팩트시트’를 도출했다. 한국이 연간 200억달러 상한으로 총 2000억달러를 미국에 투자하는 내용이 담겼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우리 측의 대미 투자가 늦어지는 상황에 상당한 불만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1호 대미투자를 일찌감치 결정지은 일본과 달리 관련 법 제정 등의 절차가 선행되느라 투자 스케쥴이 늦춰진 측면이 있다는 게 우리 정부 입장이다. 산업계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대미투자 지연을 빌미로 수출 관세를 다시 인상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19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1호 대미투자 시기에 대해 “8~9월쯤 돼야하지 않겠냐”고 했다.
외교안보 라인을 중심으로는 정책실의 이 같은 인식에 대한 답답함이 감지된다. 대미투자 지연이 안보 협상에도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는 판단이 작용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외교안보 핵심 관계자는 “대미 투자를 하기로 했으면 해야하는 게 당연하다”며 “이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지금의 (한미 관계) 상황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와중에 쿠팡 제재를 둘러싼 잡음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사안의 심각성이 커지는 듯한 기류다. 애초 미국 워싱턴DC 정가에서 산발적으로 등장하던 쿠팡 옹호 목소리가 의회와 행정부 공식 채널을 통해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5월 김범수 쿠팡Inc 의장의 총수(동일인) 지정은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총수 지정은 공정위가 담당한다. 주 위원장이 NSC 상임위에 이례적 배석을 한 배경으로 지목된다.
이달 초 한국 정부가 쿠팡을 ‘표적 삼고 있다(single out)’는 내용의 미 하원 법사위원회의 중간 보고서가 나왔고, 이는 백악관의 공식 우려 메시지로 이어졌다. 외교 당국은 지난 16일 ‘미국이 설득될 상황이 아닌 것 같다. 쿠팡 관련 타협을 염두에 두고 있나’라는 취재진 질문에 “미국 의회와 행정부를 상대로 적극적으로 아웃리치(outreach) 활동을 하겠다”고만 했다. 이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얘기로 해석이 됐다. 강 대사도 국내 기자들과 만나 쿠팡 문제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오래 가는 이슈”라고 말하기도 했다.

쿠팡은 지난해 약 3300만명 개인정보 유출 사고을 내 정부로부터 역대 최대 과징금(6248억원)을 맞았다. 쿠팡은 한국 정부가 자신들을 부당하게 대우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에서 전방위 정·관계 로비를 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7일부터 시행된 정보통신망법(정통망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한국은 미국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며 “과도한 콘텐트 규제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훼손할 수 있는 점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개정 정통망법은 허위·조작 정보 유통에 대해 징벌적 책임을 묻는 게 핵심이다. 자국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미국 측 우려다.

경제 부처 장관이 참여한 NSC가 과거와 달라진 국제 경제·안보 여건을 반영한 결과라는 시각도 있다. NSC가 군사 안보 현안 중심에서 경제안보 영역까지 기능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한미 조인트팩트시트에는 대미 투자 뿐만 아니라 핵추진잠수함 건조, 농축 우라늄 및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등 안보 분야 협의 결과도 함께 담겨있다. 정부 관계자는 “NSC는 외교안보 관련 이슈는 어느 주제든 논의될 수 있다”며 “그 중에서도 한미 관계는 굉장히 중요한 외교안보 이슈여서 NSC 형태로 유관 부처가 모여 논의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같은 맥락에서 NSC의 기능이 북한 문제를 위시한 남북관계, 안보 영역 만으로 제한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진단도 나온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8월 개최된 NSC에서 NSC 상임위원장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아닌 통일부 장관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대착오적이다”는 지적이 나왔던 이유다.
정 장관은 노무현 정부 당시 통일부 장관으로서 NSC 상임위원장을 맡은 적이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때 NSC 상임위가 폐지됐고, 이후 박근혜 정부 들어서 안보실장이 NSC 상임위원장을 겸임하는 형태로 상임위 시스템이 부활했다. 안보실장은 국방(1차장), 외교(2차장), 경제안보(3차장) 영역을 담당한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