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인이 뉴욕 현지 은행에서 원화계좌를 만들고 다른 외국인에게 원화를 송금하는 길이 열린다. 정부가 원화를 사실상 자유교환통화로 바꾸기 위한 국제화 작업에 착수하면서다. 외국인의 국내 주식·채권 투자를 늘리고 장기적으로 잠재성장률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국내 주식시장이 세계 6~7위 규모로 커졌고 세계국채지수 편입까지 이뤄진 만큼 개방을 더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 외환위기 방지에 초점을 맞춰 거래를 막던 정책에서 원화 보유와 활용을 촉진해 투자 유입을 늘리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이다.
정부는 19일 이 같은 내용의 ‘원화 국제화 로드맵’을 발표했다. 핵심은 외국인이 해외에서 원화를 조달하고 쓰는 데 따르는 제약을 단계적으로 없애는 것이다. 외환시장을 24시간 운영하는 데 이어 역외원화결제기관을 통한 외국인 간 거래도 제한 없이 허용한다.
최종 결제를 뒷받침할 ‘역외원화결제망’은 한국은행에 새로 구축한다. 내년 1월부터 24시간 가동할 예정이다. 이형렬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은 "앞으로 미국에서 미국인이 뉴욕 미국 은행에서 원화계좌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라며 "역외원화결제기관이란 뉴욕에 있는 미국 은행을 말하는 것으로, 인가제가 아닌 등록제"라고 설명했다.
야간에 원화가 부족해지는 상황에 대비해 외국 금융기관의 일시차입도 폭넓게 허용한다. 필요하면 한국은행이나 외국환평형기금이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외국인 대상 원화대출 등 자본거래의 사전신고 기준은 2배 이상 높이고, 현행 신고제도는 사후보고 중심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디지털 결제 인프라도 손본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유통·거래 근거를 마련하고 한은 기관용 중앙은행디지털화폐와 연계한 국채 토큰화 실증사업을 내년 시작한다. 국경 간 디지털 지급결제 프로젝트인 ‘아고라’에도 정식 참여한다.
외국인 투자 절차 개선도 병행한다. MSCI 자본시장 접근성 과제 25개 가운데 22개를 마쳤고, 증권 거래·결제 자동화와 투자자 등록 개선, 영문공시 확대도 내년까지 끝낼 계획이다. 외국인이 일시 보유한 원화를 단기상품에 굴릴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국내 은행의 커스터디업도 제도화한다. 외국 중앙은행과 국제금융기구의 국내 채권 투자를 돕고 선도은행에는 원화 유동성 공급 인센티브도 제공한다.
무역 결제에서 원화 사용도 늘린다. 원화로 대금을 주고받는 기업에는 금리와 무역보험 한도를 우대한다. 인도네시아에 도입한 현지통화 직거래 체계는 다른 주요 교역국으로 확대를 검토한다.
정부는 시장 개방에 따른 충격을 막기 위해 공공부문의 외화자산을 ‘제2의 외환보유액’으로 활용한다. 이 국장은 "원화 국제화는 포기했던 경제적 혜택을 모두 다 누리겠다는 정책 전환"이라며 "이 정책 전환은 잠재 성장률을 상승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외환 정책이 전환된다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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