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이메일 한 통이었다. 지난해 말 미국 디트로이트미술관(DIA)의 살바도르 살로르트폰스 관장은 스페인 마드리드의 한 미술품 복원 공방에서 메일을 받았다. “스페인 미술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와 관련 있어 보이는 작품을 살펴봐달라”는 요청이었다.DIA는 20세기 초 디트로이트가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로 군림하며 ‘갑부 도시’로 이름을 떨치던 시절 반 고흐, 마티스, 피카소 등 세계적 명화를 쓸어 담은 미술관이다. 이 소장품들은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8월 23일까지 열리는 ‘인상주의를 넘어: 디트로이트 미술관 걸작전’ 전시로 한국 관객을 만나고 있다.
미국의 주요 미술관 관장이 스페인 미술품을 감정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살로르트폰스 관장은 스페인 출신의 미술사학자로, 박사 논문도 ‘벨라스케스의 이탈리아 여행’으로 쓴 벨라스케스 전문가다.
박사 논문을 연구할 당시 그는 문헌을 통해 벨라스케스가 1626년 당대 스페인의 실세 올리바레스 백작-공작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림은 400년 가까이 사라진 상태였고, 작품이 어디 있는지 끝내 알 수 없었다. 지난 20년간 미국에서 큐레이터로 커리어를 쌓아 미술관장 자리까지 오르면서도 살로르트폰스 관장은 늘 그림의 행방을 좇고 있었다.
이메일을 받고 스페인으로 날아간 그는 자신이 찾던 작품을 발견했다고 확신했다. 정밀 분석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X선과 자외선·적외선 촬영, 안료 분석 결과는 작품이 진품이라는 사실을 가리켰다. 캔버스의 실 밀도는 프라도미술관이 소장한 벨라스케스의 걸작 ‘펠리페 4세’와 같았다. 살로르트폰스 관장은 최근 스페인의 미술지 ARS 매거진을 통해 발견 사실을 발표했다.
초상화의 주인공 올리바레스(본명 가스파르 데 구스만)는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의 총애를 받은 재상이자, 벨라스케스에게는 은인이었다. 1623년 무명이던 벨라스케스를 궁정화가로 발탁한 인물이 그였다. 올리바레스는 이 초상화를 교황청 추기경에게 선물했지만 그림은 이후 수백 년간 잊혔다.
질스 녹스 미국 인디애나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이번 발견을 두고 “큰 의미가 있는 발견”이라고 평가했다. 현존하는 벨라스케스의 작품이 전 세계에 120여 점뿐인 데다 초기 올리바레스 초상화는 극히 드물다는 이유에서다. 마침 올리바레스를 주제로 한 전시를 준비하던 DIA는 이 작품을 앞세워 내년 1월 특별전을 연다.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한국에서 볼 기회도 곧 온다. 오는 9월 서울 예술의전당 ‘스페인 미술 500년’전에는 벨라스케스, 고야, 엘 그레코 등 스페인 거장들의 작품 100여 점(뉴욕 히스패닉소사이어티 소장)이 걸린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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