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참으면 바둑이 미세해지겠다 싶었다. 그래서 결행했다.”
신진서 9단이 바둑 인공지능(AI) 카타고와의 두 번째 대국에서 승리한 뒤 꼽은 승부수와 그 이유다. 첫 대국 완패 뒤 거둔 290수, 흑 4집 반 승. 한경TV 유튜브 생중계를 동시에 지켜본 사람은 3만6000명을 넘었다. 그만큼 많은 이가 인간의 승전보를 기다렸다는 뜻이다.
물론 신진서가 두 점을 먼저 뒀고, 카타고는 매 수 20초 안에 착수했다. 인간이 AI의 절대 기력을 넘어섰다고 할 승부는 아니다. 그도 “실력적으로나 퍼포먼스적으로는 AI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했다.
그래도 이번 승리는 가볍지 않다. 신진서는 AI보다 더 많이 계산해서 이긴 것이 아니다. 반발하고 싶은 순간을 견뎠고, 더 물러서면 우세가 사라질 순간 중앙의 흑 196으로 백을 끊었다(아래 기보 참고). 중앙 좌측 백돌의 연결을 차단하며 전투를 본격화한 수였다.
두 번째 대국에서도 카타고의 공격은 매서웠다. 신진서 진영 깊숙이 들어와 붙이고 끊으며, 인간의 감각으로는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 수를 잇달아 던졌다. 신진서는 “진짜 앞이 잘 안 보였고, 약간 어두컴컴해졌다”고 했다. 카타고가 2선으로 파고든 뒤에는 “숨도 못 쉬고 많이 맞아서 또 이렇게 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털어놨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았다. 시간을 쓰며 판을 다시 읽었다. 냉정하게 계산해 보니 아직은 자신이 좋다고 판단했다. 승부처는 중앙이었다. 더 물러서면 집 차이가 줄어 바둑이 미세해질 수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면 아마 끊지 못했을 텐데, 시간을 보니 여유가 있었다. 여기서 손해를 최대한 덜 보면서 전투를 하자고 생각했다.”
신진서는 흑 196으로 중앙의 백돌을 끊었다. 카타고와의 전투를 피하지 않고 받아들인 이 수를 스스로 승착으로 꼽았다. 무모한 공격이 아니었다. 형세와 시간, 전투의 위험을 모두 재본 끝에 내린 결단이었다.

연습 대국에서도 카타고와 싸움이 벌어지는 순간 집 차이가 급격히 줄거나 역전당한 적이 많았다. 그래서 두 번째 대국에서는 카타고가 던지는 모든 싸움을 받아주지 않았다.
“반발하거나 공격하고 싶었던 장면이 정말 수도 없이 찾아왔는데, 그때마다 정말 많이 참으면서 고통을 인내했다. 마지막에 중앙에 나와 끊을 때는 더 이상 참으면 바둑이 미세해지겠다 싶었다. 그때는 결행했고, 그게 승착이었던 것 같다.”
이 말에 두 대국의 차이가 담겨 있다. 첫 대국에서는 싸우고 싶은 마음이 판단보다 앞섰다. 두 번째 대국에서는 판단이 먼저였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싸움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참아야 할 때 참지 못하면 무모해지고, 싸워야 할 때까지 참으면 우세를 잃는다. 신진서가 흑 196으로 찾아낸 것은 바로 그 경계다.

“두 점에는 안 될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 이번에 AI에 아직 두 점에서 이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크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2국은 특별했다. 끝내기만으로 우세를 지켜낸 승리가 아니었다. 중앙에서 카타고와 맞섰고, 수읽기 전투를 거쳐 승리를 거뒀다. 신진서는 “카타고와 연습할 때 끝내기로 이긴 기억은 있지만, 오늘처럼 수읽기 전투를 통해 이긴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퍼포먼스만 놓고 보면 이미 AI의 시대다. AI는 더 멀리 읽고, 더 빨리 계산하며, 좀처럼 실수하지 않는다. 하지만 바둑의 중심까지 AI로 옮겨간 것은 아니다.
AI는 가능한 수와 확률을 제시한다. 그러나 무엇을 목표로 삼고 어떤 위험을 감수할지, 그 결과를 누가 책임질지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신진서는 카타고보다 더 빨리 읽어서 이긴 것이 아니었다. 수도 없이 싸우고 싶은 마음을 참았고, 더 이상 참아서는 안 될 순간을 알아봤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으로 돌을 놓았다. AI는 최선의 수를 계산했지만, 싸울 시점을 선택한 것은 인간이었다. 그 한 수의 이름은 결행(決行)이었다.
이심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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