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가계의 ‘빚내는 시계’가 30년 빨라졌다. 과거에는 자산과 소득을 어느 정도 쌓은 50대와 60대가 가장 많은 돈을 빌렸지만, 이제는 자산 형성 초입에 있는 30대가 신규 대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금리 상승과 변동성 장세가 맞물린 시기에 미래 소득을 당겨쓴 30대가 부채 리스크에 가장 취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0대 차입자의 신규 가계대출액은 1인당 5033만원으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많았다. 40대가 4215만원, 50대가 3433만원, 60대 이상이 2957만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12년 전에는 정반대였다. 2013년 차입자별 신규 대출은 60대 이상이 4023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50대 3901만원, 40대 3526만원, 30대 3037만원 순이었다. 대규모 차입의 정점 연령대가 60대 이상에서 30대로 30년가량 낮아진 셈이다.
이런 변화의 핵심 요인은 주택담보대출이다. 30대 차주당 신규 주담대는 2013년 8882만원에서 지난해 2억6504만원으로 198.4% 증가했다. 지난해 5대 은행의 주담대 순증액 가운데 60% 이상(20조8382억원)이 30대 증가분이었다.
차입에 비해 30대의 저축 여력은 충분하지 않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30대 가구의 평균 금융부채는 9419만원으로 저축액(6989만원)의 134.8%에 달해 전 연령대에서 가장 많았다.
대출 받아 집 산뒤 상환 부담…30대 평균 자산만 '나홀로 감소'

30대 가구의 자산 형성 방식이 ‘저축한 뒤 차입’에서 ‘먼저 차입한 뒤 상환’으로 바뀌고 있다. 금융 자산을 충분히 쌓지 못한 상태에서 장기 상환 부담을 안게 되면서 30대의 저축액 대비 금융 부채 비율은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 흐름에서는 30대만 뒷걸음질쳤다. 30대 가구의 평균 자산은 3억6175만원에서 3억5958만원으로 0.6%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전체 가구의 평균 자산은 4.9% 늘었고 29세 이하와 40~60대 이상 가구의 자산도 모두 증가했다. 평균 순자산 역시 30대만 2억5402만원에서 2억5060만원으로 1.3% 줄었다.
30대의 금융 부채 자체는 1년 새 0.7% 감소했다. 하지만 저축액이 1.3% 줄면서 저축액 대비 금융 부채 비율은 134%에서 134.8%로 높아졌다. 최근 1년을 놓고 보면 30대는 자산과 저축의 완충력이 약해져 상대적인 부채 부담이 커진 것으로 해석된다.
물론 30대의 차입 증가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주택은 자산인 동시에 안정적인 거주 환경을 제공한다. 대출로 집을 먼저 사면 전·월세 비용이 오를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30대는 경력이 쌓일수록 소득이 증가할 가능성이 큰 만큼 미래 소득을 앞당겨 주택을 사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며 “기존 규제 안에서 대출받았다면 과도한 차입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30대는 주거와 양육을 비롯해 소비가 본격적으로 늘어나는 시기다. 이들이 소비와 저축을 줄여 빚부터 갚아야 한다면 내수 부진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고 장기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직이나 창업 등 새로운 경제 활동에 나설 여력도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이 교수는 “젊은 가구가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과 실효성 있는 주택 공급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집값과 주거비가 안정돼야 저축보다 빚부터 늘리는 흐름도 완화될 수 있다”고 했다.
조미현/김수현/박시온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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