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이념과 시장 경제 체제를 따르는 우리 사회에서 기본적 조직은 기업이다. 자연히, 기업들이 본성대로 움직여서 효율적이 되면 사회는 저절로 융성한다.이런 원리에 ‘노란봉투법’은 근본적 수준에서 도전한다. 이 법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의 일부 개정을 가리킨다. 즉 제2조에서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그 범위에 있어서는 사용자로 본다”와 제3조 ‘손해배상 책임의 제한’에서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하여야 한다”이다.
90년 전 로널드 코즈는 거래 비용(transaction cost)에 주목해 기업의 역할을 밝혔다. 핵심적 활동을 기업의 틀 안에서 수행하고 나머지는 시장에서 구매하면, 거래 비용을 최소화해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통찰이었다. 그 뒤로 기업 활동을 위계(hierarchy)를 지닌 기업과 시장의 상호 작용으로 보는 시각이 정설이 됐다.
노란봉투법은 이런 경제학의 정설을 부정한다. 기업의 일체성을 부정하고 기업이 자유 계약을 통해 시장에서 고용한 종업원의 조직에 기업의 틀을 넘나들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한다. 탈이 아니 날 수 없다. 주로 원청 기업의 곤혹스러운 처지가 주목받지만, 종업원에게 무시받는 하청 기업의 경영진은 더욱 곤혹스러울 것이다. 기업은 위계 조직인데, 종업원들로부터 멸시받는 경영진이 제대로 기업을 이끌까? 이래저래 기업의 틀이 허물어진다.
쟁의 과정에서 불법 행위로 기업에 입힌 손실을 보상하는 일에서 조합원이 특혜를 받는 것은 모든 시민이 평등하다는 원칙에 어긋난다. 한 나라의 법체계는 헌법에서 도출된 연역적 체계이므로, 법체계의 한 부분에서 생긴 작은 오류도 법체계의 일체성을 뒤틀리게 한다. 한시라도 빨리 이 오류를 시정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이 원칙이 무너지면서 쟁의가 더욱 기괴해졌다. 반도체 경기가 갑자기 좋아져 큰 이익이 나자 해당 부문 종업원들이 미리 자신이 받을 엄청난 상여금을 제시하고 파업으로 경영진을 위협해 뜻을 이뤘다. 그러자 다른 부서 종업원들이 반발해 회사의 일체성이 깨졌고, 배신감에 이직 희망자가 많아졌다. 우리 경제가 시드는 것을 보여주는 희비극(tragi-comedy)이다.
이처럼 기업의 틀이 무너지는 것은 경제적 영역을 넘어 정치적 영역에도 심중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역사가들은 입헌주의(constitutionalism)의 연원이 경제 활동이었다고 본다. 계약에 관한 법률의 표준화를 통해 갖가지 비효율과 위험을, 즉 거래 비용을, 줄이려는 욕구가 법전의 편찬으로 이어지고 정치적 자유의 바탕이 됐다는 얘기다.
실제로, 기원전 23세기께부터 메소포타미아에서 문명이 발전하고 원거리 교역이 활발해지자 법전을 만들어 불문법 체계를 합리화하려는 시도가 나왔다. 기원전 18세기의 함무라비 법전은 재산권이 잘 보장되고 문명이 번창했던 바빌로니아 왕국이 피운 꽃이었다.
그 법전엔 교역에 관한 규정이 많다. 특히 원거리 교역에 나선 상인과 투자자 사이의 관계를 상세하게 규정했다. 타푸툼(tapputum)이라고 불린 관행에선 상인은 먼저 투자 금액의 곱절을 투자자에게 갚아야 했다. 그러나 강도를 만났거나 갈취를 당했으면 면제가 됐다. 교역이 성공적이었으면, 상인과 투자자는 이익을 절반씩 나눴다. 이런 규정은 관계자들이 유한 책임을 안정적 관계의 핵심으로 여겼음을 보여준다.
해외 교역이 활발했던 중세 이탈리아에선 타푸툼과 비슷한 코멘다(commenda)가 나왔다. 여기서도 난파나 나포와 같은 불가항력 조항이 적용됐다. 코멘다는 일회 항해를 위한 주식회사의 성격을 지녔다. 마침내 근대 초기에 현재의 주식회사와 원리 및 형태가 같은 주식회사들이 출현해 세계의 발전과 번영에 기여했다.
이렇게 살피면 노란봉투법의 본질과 위험이 뚜렷이 드러난다. 이 법을 안고서 우리가 시장 경제를 영위하면서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는 없다. 당장 고칠 정치적 능력이 없다면, 그런 진실이라도 널리 퍼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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