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로봇이 오기 전에, 사람이 떠나고 있다

입력 2026-07-19 17:40   수정 2026-07-20 00:11

현대자동차 노조가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사흘간 부분파업을 벌였다. 근무조별 2시간씩, 생산라인 기준 총 12시간. 2년 연속이다. 지난해 16시간 파업으로 7000대의 생산 차질과 3000억원대 매출 손실이 났으니, 이번에도 2000억원대는 각오해야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런데 이번 파업의 쟁점 목록에 낯선 이름이 하나 끼어 있다. 아틀라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만든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노조는 이 로봇을 생산라인에 들이려면 노사 합의를 거치라고 요구했다. 임금협상 테이블에 사람이 아닌 존재가 안건으로 올라온 것이다.

함께 요구한 ‘완전 월급제’도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지금 생산직 임금은 시급을 기본으로 계산된다. 잔업과 특근이 붙어야 봉투가 두툼해지는 구조다. 그런데 로봇이 들어와 라인이 빨라지면? 일할 시간이 줄고 봉투는 얇아진다. “시간이 줄어도 월급은 그대로 달라.” 노조 요구를 한 문장으로 옮기면 이렇다.

이 불안을 엄살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국제로봇연맹(IFR)의 ‘세계 로보틱스 2025’에 따르면 한국의 제조업 로봇 밀도는 근로자 1만 명당 1220대, 세계 1위다. 세계 평균 132대의 아홉 배쯤 된다. 2위 싱가포르(818대)도 한참 아래다. 대한민국 노동자는 이미 지구상에서 로봇과 가장 가까이 붙어 일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현대차그룹은 2028년까지 미국에 연 3만 대 규모 로봇 생산 역량을 갖추고 아틀라스를 포함한 로봇 2만5000대 이상을 현장에 투입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국내 적용 시점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해외에서 검증이 끝나면 다음 차례가 어디일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데 정작 현장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뒤집힌다. 현대차 노조 가입 인원은 2023년 4만985명에서 지난해 말 3만7829명으로 줄었다. 생산직 정년퇴직자가 해마다 1800~2000명씩 공장을 떠나는데 그 빈자리가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로봇이 사람을 밀어내기 전에 사람이 먼저 걸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두려워하는 미래는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정작 현재가 조용히 비어 가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익숙한 함정에 빠진다. ‘고용이냐 효율이냐’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문제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자동화의 역사가 가르쳐 준 것은 다르다. 일자리는 증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사한다. 방직기가 들어왔을 때 사라진 것은 직조공이지 일자리 자체가 아니었다. 문제는 언제나 그 이사를 따라갈 다리 힘이 사람에게 있느냐였다.

로봇 한 대가 들어오면 그 로봇을 세팅하고, 정비하고, 데이터를 읽어 공정을 다시 짜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 자리는 반드시 생긴다. 질문은 하나다. 그 의자에 누가 앉을 것인가. 지금 우리 공장에서 20년 일한 그 사람인가, 바깥에서 새로 데려올 누군가인가. 이것이 이번 교섭의 진짜 쟁점이다.

스키를 탈 때 우리는 활강부터 배우지 않는다. 안전하게 넘어지는 법, 그다음 일어서는 법을 익힌 뒤에야 슬로프에 선다. 자동화도 마찬가지다. 지금 필요한 것은 ‘넘어지지 않게 해 달라’는 요구가 아니라 ‘넘어지더라도 일어설 수 있게 해 달라’는 요구다. 답은 고용 ‘보전’이 아니라 역량 ‘전환’에 있다.

이 이야기가 현대차 공장 담장 안에서 끝날 것 같은가. 로봇은 적이 아니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로봇은 언제나 적으로 보인다. 아틀라스를 문 앞에서 막아설 것인가, 아틀라스와 나란히 설 사람을 길러낼 것인가. 파업의 12시간보다 그 답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훨씬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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