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째깍’하는 시계 초침 한 번에 1초가 흐른다. 일상에서는 더 쪼갤 필요 없는 짧은 시간이지만, 미국 월가는 이를 1000분의 1초로 나눠 베팅한다. 이른바 ‘밀리초’(ms·1000분의 1초)의 전쟁이다. 고성능 컴퓨터가 정보를 읽고 자동으로 거래하는 초단타매매(HFT·high frequency trading)는 초 단위 경쟁을 밀리초, 마이크로초의 세계로 끌고 갔다.뉴욕과 시카고 사이에는 광케이블과 마이크로파 통신망이 놓여 있다. 뉴욕 일대의 주식, 상장지수펀드(ETF) 시장과 시카고의 주가지수선물 시장 간 가격 정보를 조금이라도 빨리 전달하기 위해서다. 시카고에서 S&P500 선물이 먼저 오르면 뉴욕의 관련 ETF와 주식도 따라 움직인다. 두 시장에서 순간적으로 가격이 차이 날 때 싼 쪽을 사고 비싼 쪽을 팔면 이익이 생긴다.
이 속도 경쟁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등장했다. 트루스소셜 SNS를 운영하는 트럼프미디어가 트럼프 대통령의 게시물을 일반 이용자보다 밀리초 단위로 먼저 확인할 수 있는 ‘트루스 API’ 유료 서비스를 다음달 출시하기로 결정하면서다. 가격은 월 최대 10만달러, 약 1억5000만원이다.
트럼프의 SNS 게시물 하나에 원자재 가격이 춤추고, 증시가 폭락과 폭등을 오가는 점을 감안하면 월가로서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펀드스트랫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S&P500 ‘최고의 날’과 ‘최악의 날’ 상위 다섯 거래일은 모두 트럼프의 발언과 게시물이 갈랐다. 전문기관이라면 개인이 SNS를 읽기도 전에 인공지능(AI) 알고리즘에 따라 정보를 분석한 뒤 주문을 체결할 수 있다. 뉴스가 대중에게 도달할 때는 이미 거래가 끝난 상태다.
HFT의 밀리초 경쟁은 시세 자체를 조작하지는 않는다. 거래를 처리하는 속도와 싸울 뿐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말 한마디를 사고파는 시장이 생긴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발언 자체가 권력이고, 접근권을 값으로 매기는 순간 정보의 공정성과 투명성은 자리를 잃는다. 대통령의 말까지 초고속 데이터 상품이 된 세상이다. 이제는 누가 1밀리초 먼저 아는지에 따라 시장 우위가 갈린다.
이심기 수석논설위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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