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둑 세계랭킹 1위 신진서 9단이 인공지능(AI) 카타고와의 두 점 접바둑 공식 대국에서 첫 승을 올렸다. 두 점 치수는 인간이 ‘바둑의 신’ AI를 상대로 정면 승부를 벌일 수 있는 극한의 조건이다.
신 9단은 이날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TV 스튜디오에서 열린 쎈수학·한경 기신전(棋神戰) 3연전 2국에서 4시간50분간의 혈투 끝에 290수 만에 흑 네 집 반 승을 거뒀다. 지난 17일 1국에서는 카타고의 변칙적인 두 번째 수에 말려 완패했다. 하지만 이날은 인내와 끈기를 앞세워 국면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신 9단에게는 제한 시간 5시간과 30초 초읽기 1회가 주어졌고 카타고는 20초 안에 둬야 했다.
신 9단은 초반 우하귀에서 초대형 정석을 유도해 차분하게 판을 이끌었다. 승부처는 중앙 전투였다. 1국에서 신 9단은 너무 빨리 중앙 싸움에 나서 승기를 뺏겼지만 이날은 초반 초대형 정석으로 변수를 크게 줄인 뒤 중앙에서 격돌했다. 카타고는 끊임없이 변칙적 수를 내놓으며 신 9단의 전투 본능을 자극했다. 신 9단은 정확한 수읽기로 도발을 차단하다가 결정적일 때 160수의 끊는 수로 응징했다. 179수에서 카타고가 둔 강력한 승부수로 순간 집 차이가 크게 줄었지만 신 9단은 완벽한 수읽기로 수습했고, 끝내기까지 빈틈없이 마무리하며 승리를 확정지었다.
이날 대국을 생중계한 유튜브 한국경제TV 채널에는 동시접속자 3만7000여 명이 몰려 신 9단의 도전을 응원했다. 대국 뒤 그는 “네 집 반 차이는 지금까지 내가 AI와 치른 대국 중 가장 큰 차이의 승리”라며 “3국에서도 오늘처럼 후반까지 다섯 집 차이를 유지하며 이기는 바둑을 두겠다”고 말했다.
쎈수학·한경 기신전 최종 3국은 21일 한국경제TV 스튜디오에서 오전 10시부터 열리며 바둑TV에서 실시간 중계한다.

신진서, 카타고와 2국서 승리…21일 최종전 '운명의 한판'
신 9단의 첫 수는 소목에서 화점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카타고는 바로 삼삼에 들어갔다. 인공지능(AI) 시대를 거치며 인간 바둑에서도 완전히 자리 잡은 대표적인 정석이다.
백17로 젖혔을 때 신 9단은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간명한 정석으로 갈 것인지, 복잡한 대형 정석으로 유도할 것인지. 접바둑에서는 초반에 대형 정석이 나오면 흑이 유리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판이 많이 채워질수록 백이 형세를 뒤집을 여지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신 9단 역시 대형 정석으로 카타고를 끌어들이는 선택을 했고, 1국과 달리 자신의 페이스로 초반을 이끌 수 있었다.
우하귀 정석이 마무리되자 바둑판의 4분의 1이 채워졌다. 집 차이도 시작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검토실에서 “카타고의 포석 실패가 아니냐”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신 9단에게는 더없이 만족스러운 출발이었다.
흑62 역시 불필요한 전투를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착수다. 백147의 곳으로 우변 백 두 점을 모자 씌워 공격하는 것이 AI가 제시한 블루 스폿이기도 했고, 신 9단 역시 가장 먼저 떠올렸을 법하다. 하지만 신 9단은 복잡한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며 우세를 굳혀갔다. 흑82로 꾹 참고 이은 수도 평소 신 9단의 기풍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백85는 AI 특유의 유연한 감각이 돋보인 한 수였다. 사람이라면 2선으로 젖혀서 받았을 자리지만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은 발상으로 검토실의 프로들에게 호수로 평가받았다.
흑114까지 진행된 시점에도 승률 그래프는 여전히 99% 흑의 우세를 나타냈다. 집 차이도 10집 안팎. 특별히 공격당할 약한 돌도 없었고 집의 윤곽 역시 어느 정도 갖춰졌다.
평범한 진행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카타고가 승부수를 던졌다. 카타고는 백115·117로 흔들기에 나섰다.
백117의 끊음을 당하자 신 9단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장고에 들어갔다. 10여 분을 생각한 뒤 중앙으로 뻗은 흑118은 실리를 다소 포기하더라도 중앙을 두텁게 하겠다는 뜻이었다. 1국 중앙 승부처에서 어려움을 겪은 만큼 이날은 같은 흐름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한 수였다.
다만 이때 조금 더 좋은 수가 있었다. AI는 118의 뻗음 대신 입구자를 추천했다. 인간이라면 떠올리기 힘든 행마지만 놓이고 보니 의미가 명확히 이해된다. 어차피 실전의 진행이 될 수밖에 없는데, 흑돌이 118의 곳보다 한 칸 아래 호구 모양으로 있는 것이 훨씬 좋은 모양이다. 이 선택이었다면 1집가량을 더 지켜낼 수 있었다.
백155까지 진행되자 이제 남은 승부처는 중앙뿐이었다. 카타고가 백157로 날일자 행마를 선보이자 신 9단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나와 끊는 수(158·160)를 택했다. 초반부터 안전하게 우세를 지켜오던 신 9단이 먼저 전투를 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제 승부는 계산이 아니라 수읽기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흑이 우세한 형세는 여전했지만 국면이 더 복잡해져 해설진과 검토실 모두 불안한 시선으로 다음 수를 기다렸다.
신 9단은 완벽한 수읽기로 이를 기우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다소 위험해 보이는 결단이었지만 대국이 마무리되자 검토실의 프로기사들은 오히려 승착으로 평가했다.
미지의 영역인 중앙에서 신 9단은 과감하게 정면 승부를 택해 백 대마를 압박하며 자연스럽게 중앙을 정리했다.
신 9단이 백 대마를 압박해가자 카타고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흑180의 강수에 이어진 백181·183·185는 의미를 찾기 어려운 수순이다. AI가 최선의 대응을 찾지 못할 때 종종 나오는 수순으로, 신 9단의 승리가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흑194가 이날 승리를 확정 짓는 마지막 결정타였다. 유일한 승리의 길을 신 9단은 정확히 찾아냈다. 1국에서 카타고의 신수에 당황했다고 밝힌 그는 더욱 철저한 준비를 다짐했고, 2국은 그 다짐을 증명한 한 판이었다. 1국에서는 중앙에서 무너졌지만 이날은 중앙에서 승부를 결정지으며 의미 있는 1승을 거뒀다.

조수영/고재연 기자/채현지 월간바둑 필자·아마6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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