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과의 대국에서 ‘전투’를 했다가 이긴 적은 처음이라 더 의미가 있습니다.”
신진서 9단은 19일 한국경제TV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쎈수학·한경 기신전(棋神戰)’ 3연전 2국에서 290수 만에 네집 반 승을 거둔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투를 중심으로 실리를 취하는 기풍을 선보이는 신 9단은 이번 대국을 준비하며 최대한 싸움을 피하며 ‘지키는 바둑’을 두겠다고 했다. “AI와 전투로 풀어가는 건 거칠게 말하면 자살 행위”라고 했다. 연산 능력으로 AI를 당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대국 초반부터 변칙적인 수를 선보인 첫 대국과 달리 카타고가 ‘삼삼 대형 정석’을 두면서 초반 국면은 빠르게 진행됐다. 하지만 중반부터는 치열해졌다. 신 9단은 “반발하거나 공격하고 싶었던 장면이 수도 없이 찾아왔다”며 “하지만 중앙이 워낙 많이 남아있고, 상대는 AI기 때문에 수비적으로 판을 짰다”고 표현했다.
신 9단은 “정말 많이 참으면서 고통을 인내했는데, 마지막에 중앙을 나와 끊을 때는(흑160수) 더 이상 참으면 바둑이 미세해지겠다 싶어(승부를 확신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해) 결행을 했고, 그게 승착이 됐다”고 했다. 신 9단이 본격적으로 전투에 나서면서 AI의 연산 능력에 맞선 복잡한 수읽기가 이어졌다.

신 9단은 “그 시점에서 전투를 피하고 집으로 지켜나갈 확신이 없었다”며 “차라리 전투를 해서 정리를 통해 실전 같은 그림이 나오면 최상의 그림이라고 생각했고, 생각한대로 그림이 나왔다”고 했다. 이때 신 9단의 결정을 도와준 건 시간이었다. 신 9단은 “시간이 없었다면 끊어가지 못했을 텐데, 시간적 여유가 있어 AI만큼은 아니더라도 여기서 최대한 손해를 덜 보면서 전투를 하자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이후 카타고가 중앙을 찔러오며 반격(백179수)에 나서면서 신 9단은 또 다시 기로에 섰다. 신 9단은 “빈삼각을 찾아(흑180수) 거기서는 이겼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상대는 AI이기 때문에 승부를 예상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백 대마가 약해진 상황에서 신 9단은 응수타진(흑194수) 후 공격(흑196수)에 나섰다. 카타고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백197수와 백199수라는 묘수로 신 9단을 흔들었다. 공격을 하려고 둔 수에서 역공을 당한 것이다. 신 9단은 당시 상황을 “앞이 캄캄해졌다”고 표현했다.
이후 신 9단은 일부 손해를 감수하며 우세를 지켜나가는 전략을 선택했고, 냉정한 판단이 승리로 이어졌다. 신 9단은 “중반 들어 숨도 못 쉬고 하도 맞아서 또 지겠다 싶었는데…냉정하게 판단해 보니 아직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다잡았다”고 위험했던 순간을 돌아봤다.

지난 17일 진행된 1국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지고 나니 개인적으로 후회도 많았고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져 굉장히 힘들었다”며 “오늘은 불계패만은 안 되고, 지더라도 미세하게 지자는 마음으로 대국에 임했다”고 했다. 3국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에 대해서는 “마음 같아선 3국에선 큰 전투를 하고 싶지만, 50수만에 역전되는 모습을 보일 수 없는 만큼 오늘처럼 끝까지 알 수 없는 승부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신 9단의 승리는 AI 시대에도 여전히 바둑의 중심에 인간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는 “인간의 실력이 AI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스토리나 매력이 존재하기에 팬들이 찾아주신다고 생각한다”며 “프로기사로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