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부터 쇼팽까지… 조성진이 직접 꾸린 '춤곡 선물세트'

입력 2026-07-20 16:14   수정 2026-07-20 17:40

바흐부터 쇼팽까지… 조성진이 직접 꾸린 '춤곡 선물세트'



조성진의 손끝에서 선율이 흘러나오자 공연장은 무도회장이 됐다. 1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조성진은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인 하우스 아티스트'로 무대에 올랐다. 바흐에서 쇼팽까지, 시대를 가로지르며 '춤곡'을 들려줬다. 바로크의 궁정에서 시작된 춤은 고전과 낭만을 거쳐 현대에 이르러 뒤틀리고 그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났다.

1부: 바흐에서 슈만까지

첫 곡은 바흐의 파르티타 제1번. '클라비어 연습곡집' 1권에 수록된 곡으로, 알르망드, 쿠랑트, 사라방드, 지그 등 4개 악장으로 구성된 바로크 춤곡을 기본 틀로 한다. 춤의 몸짓이 선율로 바뀌는 과정을 조성진은 직접 노래하듯 춤추듯 연주했다. 가볍고도 청아한 음색이 공연장 전체에 골고루 퍼져나갔다. 피아노 한 대가 만들어내는 울림이 볼륨이나 파워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교한 터치와 음색의 전달력에서 비롯된다는 걸 실감케 하는 연주였다.

조성진은 첫 곡 이후 쇤베르크의 피아노 모음곡 작품번호 25를 곧바로 연주했다. 바흐 파르티타 이후 약 200년 후에 작곡된 이 곡은 '12음 기법'을 전 악장에 적용한 쇤베르크의 첫 작품이다. 바로크 시대 춤곡 형식을 그대로 차용했지만 내용은 정반대였다. 익숙한 춤곡의 느낌 대신 그로테스크한 현대음악의 질감이 두드러졌다. 조성진은 바흐와는 확연히 다른 건조한 타건에, 박자를 자유자재로 조율하며 두 곡간 대비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1부의 마지막은 슈만의 '빈 사육제의 어릿광대'였다. 슈만이 '낭만적 스펙터클'이라 불렀던 곡으로, 조성진은 5개 악장의 개성을 또렷하게 살렸다. 1악장 알레그로는 경쾌한 리듬과 프레이징으로 생동감을 살렸고, 파워풀하면서도 빠른 템포로 슈만 특유의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표현했다.

이어지는 2악장 로만체는 한층 내밀하고 고요한 분위기로 앞선 악장과 대비를 이뤘다. 짧은 정적 후 곧바로 이어진 3악장 스케르치노는 다시 소란스럽고 활기찬 거리로 장면을 돌려놓았다. 4악장 인터메초에선 청중에게 익숙한 멜로디를 서정적으로 극대화해서 표현했다. 축제의 활기가 다시 살아나는 5악장 피날레까지 조성진 특유의 파워풀하면서도 맑고 또렷한 음색으로 슈만의 곡을 재해석했다.

2부: 쇼팽이 건넨 선물



2부는 조성진이 관객들에게 건네는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였던 그는 이후 의도적으로 쇼팽 이외의 레퍼토리를 확장하는 데 공을 들여왔다. 이날 선보인 쇼팽의 왈츠 14곡은 10여년 피아니스트로 쌓아온 경험과 내공이 녹아든 무대였다.

조성진은 작품번호 순서나 작곡 시기 순이 아닌 자신만의 배열로 곡을 재구성했다. 쇼팽 사후 출판된 유작인 e단조 왈츠(Op.14)로 문을 열어, 쇼팽이 생전 세상에 처음 화려하게 선보인 화려한 대왈츠(Op.18)으로 마무리했다. 그 사이에는 쇼팽이 생전 출판한 왈츠와 미공개 유작 왈츠가 뒤섞여 배치됐다. 쇼팽은 생전 총 25곡의 왈츠를 남겼지만 그중 출판한 것은 8곡뿐. 나머지는 주변 이들에게 건넨 선물 같은 곡들이었다. 그 곡들을 한데 엮어낸 이번 연주는 팬들에게 건네는 또 하나의 선물이었던 셈이다.



이날 무대는 2015년 이후 조성진의 음악적 항해를 들여다보는 자리였다. 서두르지 않고 자기만의 속도로 성장해온 그는 단순히 기교가 완벽한 연주자, 그 이상이었다. 예술적 깊이를 더하고, 자기만의 색채를 만들어가는 예술가. 관객들은 그 궤적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조민선 기자 sw75j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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