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기술만 빼먹은 ‘먹튀(먹고 튀는)’."
2009년 여름 쌍용자동차(현 KG모빌리티) 평택공장은 중국 상하이자동차(SAIC)를 규탄하는 목소리로 가득 찼다. 상하이차는 ‘코란도’, ‘무쏘’, ‘렉스턴’을 개발한 쌍용차를 2004년 인수했다가 투자 대신 SUV 기반 기술만 확보한 이후 2009년 회사를 법정관리로 몰아넣었다. 쌍용차 노동조합은 법정관리에 따른 정리해고에 맞서 2009년 5월부터 8월까지 77일간 공장을 점거한 채 ‘옥쇄파업’을 벌였다. 이 파업은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의 계기가 됐다. 2014년 법원이 쌍용차 노조가 파업 관련 피해 47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자 한 시민이 노란 봉투에 성금을 담아 언론사에 보냈고 이후 전국적으로 모금 운동이 벌어졌다. 어찌 보면 노란봉투법은 상하이차가 남긴 유산인 셈이다.
○현대차·기아 내수 점유율 70% 무너져
20년 가까이 흐른 2026년 쌍용차에서 SUV 도면이나 훔치던 중국 차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내연기관 시절 3류 취급을 받던 중국 차들은 전기차 시대를 맞아 글로벌 플레이어로 탈바꿈 했다. 중국 차들은 감히 쳐다볼 수도 없었던 국내 시장에서 현대자동차와 기아를 위협하고 있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승용차 신차 등록 대수는 76만5631대로 작년 상반기보다 1.5% 증가했다. 국산 승용차 등록은 58만1229대로 전년보다 5.6% 감소한 반면 수입차 등록(18만4402대)은 33.5%나 급증했다. 2023년부터 70%(72.5%)를 돌파했던 현대차·기아의 내수시장 점유율도 올 상반기 69.8%까지 떨어졌다. 현대차·기아의 철옹성 같았던 점유율 70%선이 무너진 것.
올 상반기 수입차 시장점유율은 사상 최대인 24.1%를 기록했다. 신차 등록 대수 4대 중 1대꼴이다. 현대차의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의 성장 등으로 2023년 상반기 16.8%까지 떨어졌던 수입차 점유율은 3년 만에 폭풍 성장했다. 2024년까지만 해도 수입차는 매년 신차 등록대수가 줄고 있었다. 2023년, 2024년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자 수입차시장 정체론마저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2025년 상반기 10.5% 반등한데 이어 올 상반기에는 33.5%에 달하는 이례적인 증가율을 보였다.
수입차 전성시대의 일등공신은 단연 전기차다. 상반기 수입 전기차 신규 등록 대수는 8만3928대로 수입차 판매량(18만4402대)의 45.5%를 차지했다. 휘발유차(7만4731대·40.5%)를 제치고 연료별 점유율 1위에 올라섰다. 경유차는 7722대(4.2%)에 그치며 사실상 퇴출 수순을 밟고 있다.
○테슬라 10대 중 9대는 중국산
올 상반기 판매 1위는 테슬라였다. 테슬라는 5만6147대를 판매해 전체 수입차의 30.4%를 차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0%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수입차 3대 중 1대 가까이가 테슬라인 셈이다. 판매량이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난 수입차는 중국의 전기차 비야디(BYD)였다. 한국 진출 첫해인 지난해 상반기 1286대에 그쳤던 BYD는 올해 상반기 판매량이 807.9% 폭증한 1만1675대에 달했다. 6개월 만에 ‘판매 1만대 클럽’에 가입하며 렉서스와 볼보 등 프리미엄 브랜드를 제치고 수입차 4위에 올랐다.
테슬라 돌풍의 주역인 모델Y와 모델3 차량도 사실상 중국 상하이 공장에서 만들어 오는 중국산 전기차다. 모델Y 상반기 판매량은 4만3361대로 수입차 1위는 물론 기아의 중형 SUV 쏘렌토(4만3359대)에 이은 전체 2위를 기록했다. 테슬라 모델3도 8861대가 팔리며 수입차 4위에 이름을 올렸다. 중국산 모델Y와 모델3가 전체 테슬라 판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3%에 이른다. BYD까지 합치면 중국산 전기차 판매량은 6만3897대로 전체 수입차의 34.7%를 차지했다.
과거 수입차 시장을 주도하던 메르세데스-벤츠는 판매 방식 변경 여파로 부진에 빠졌다. 상반기 판매는 2만9765대로 전년 대비 8.6% 감소했고 점유율은 23.6%에서 16.1%까지 급락했다. 벤츠는 플래그십 세단인 S클래스 페이스리프트(부분 변경) 출시 등을 앞두고 대기 수요가 발생한 데다 ‘제조사 직접 판매(직판)제’ 도입도 영향을 미쳤다. 제조사가 차량 가격과 재고를 직접 관리하는 직판 방식인 ‘리테일 오브 퓨처(Retail of the Future·RoF)’라고 이름 붙은 직판제는 전국 어디서나 동일한 가격으로 차량을 판매하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딜러 간 할인 경쟁이 사라지면서 소비자의 구매 혜택이 줄어든다는 지적도 받는다. 대신 벤츠는 본사 차원에서 최대 10% 수준의 할인 프로모션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적인 가격 할인은 중고차값 하락을 불러올 가능성도 크다.
차세대 전기차 아키텍처인 ‘노이어 클라쎄’를 적용하는 등 전기차 라인업을 확대한 BMW의 상반기 판매량은 3만9151대로 전년보다 2.3% 증가하며 선방했다는 평가다. 다만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27.7%에서 21.2%로 소폭 낮아졌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전기차 브랜드가 내수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며 “전기차 보조금 등으로 수입차 진입 장벽이 낮아진 것도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BYD가 국내에서 큰 성공을 거두자 중국 지리자동차 산하 프리미엄 전기차 브랜드 지커도 국내 시장 공략을 위한 첫 모델로 중형 전기 SUV 7X를 내놓고 본격 판매에 나섰다. 지커코리아 측은 전국 9개 매장에서 기록한 사전 예약 대수가 이미 1000대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중국판 테슬라로 불리는 샤오펑도 최근 국내 진출을 염두에두고 한국법인 총괄 책임자를 채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올해 하반기에도 중국산 전기차의 질주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BYD가 정부의 전기차 보급사업 수행자 선정 평가를 통과하지 못해 7월부터 구매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대신 BYD는 자체 보조금 카드를 꺼내 판매량 감소를 최소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신차로 반전 노리는 현대차
국산차 가운데서 판매가 늘어난 곳도 전기차 라인업이 잘 갖춰진 기아와 SUV 전기차를 내놓고 있는 KG모빌리티 정도다. 기아는 쏘렌토와 스포티지 등 스테디셀러 SUV와 EV3·EV4·EV5·EV6·EV9 등 전기차(EV) 전용 모델을 앞세워 상반기 등록 대수가 전년보다 2.6% 늘어난 26만8868대를 기록했다. 반면 현대차는 같은 기간 등록 대수가 11.4% 줄어든 26만5786대에 그쳤다. 6년째 풀체인지(완전 변경) 신차를 내놓지 못한 현대차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제네시스는 상반기 등록 대수가 전년보다 24% 급감한 4만7824대에 불과했다.
상반기 맏형 역할을 못한 현대차는 하반기 신차로 승부수를 띄운다.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인 ‘플레오스 커넥트’를 장착한 페이스리프트 그랜저는 지난 6월 본격 출고 이후 한 달 만에 9741대가 팔렸다. 이어 지난 6월 ‘부산모빌리티쇼’에서 공개한 준중형 세단 아반떼와 SUV 투싼 풀체인지 모델이 차례로 출격한다. 제네시스도 하이브리드카로 승부수를 띄운다. 준대형 SUV GV80 하이브리드(2.5 가솔린 터보)와 G80 하이브리드(2.5 가솔린 터보)를 내놓는다. 풀체인지 신차 역할은 플래그십 전기 SUV인 GV90이 맡는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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