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대중을 사로잡는 K-드라마의 흥행 공식은 <참교육>과 <김부장>으로 요약됩니다. 악인을 철저하게 응징하고 세상의 부조리를 단칼에 베어버리는, 이른바 ‘사이다’ 같은 톡 쏘는 맛에 매료됩니다. <참교육>은 공개된 지 고작 한 달 만에 올 상반기 넷플릭스에 공개된 모든 작품 중 시청 수 6위를 기록했고, <김부장>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가 아닌데도 공개 2주 만에 비영어권 쇼 1위에 올랐습니다. 언제든 재미 없으면 다른 콘텐츠로 넘어가는 OTT 시대에 “시청자를 붙잡으려면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입니다.
이 견고한 ‘사이다 흥행 전선’ 사이에 묘한 작품이 하나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 넷플릭스에 공개된 시리즈인데, <참교육>과 <김부장> 틈바구니 속에서 괄목할 흥행 성적을 내진 못했습니다. 6월 말 공개 첫 주 비영어권 8위, 둘째 주 5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작품 성격도 정반대 지점에 있습니다. 말초적 청량감은커녕 찝찝함이 도드라집니다. 이야기가 흐를수록 기이한 불쾌감이 화면을 채운달까요. 6부작으로 제작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맨 끝줄 소년> 얘기입니다. 이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쾌감은 돌아서면 휘발되지만, 지독한 서스펜스의 잔상은 꽤 오래 뇌리에 남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맨 끝줄 소년>은 충무로의 국민배우, 최민식의 첫 넷플릭스 출연작입니다. 시리즈 공개 직전 서울에서 열린 제작 발표회에서 최민식은 이런 감상 팁을 건넸습니다. “늦은 밤 한 번에 몰아봐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라고요. 어슬녘 골방에 앉아 스스로를 ‘활자의 감옥’에 가둔 채 타인의 삶을 탐닉하는 한 남자의 망상에서 비롯된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는 작품이라 그렇습니다. 소음이 잦아든 늦은 밤 홀로 남겨졌을 때, 비로소 외면해왔던 비틀린 욕망이나 모른 척하고 싶던 나의 본성을 오롯하게 마주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여기 훔쳐보는 학생과 부추기는 선생이 있습니다. 대학 강단에서 교양 강좌 ‘기초 작문의 이해와 실제’를 가르치는 허문오(최민식)가 ‘쓰레기 같은’ 학생들의 과제 속 흥미로운 작문을 발견하며 사건이 시작됩니다. 과제 주인공은 공대생인 이강(최현욱). 대학 친구 세윤(이진우)의 가족을 관찰하는 글을 썼는데, 문오는 그의 글솜씨에서 대작의 기운을 감지합니다. 결국 이강을 따로 불러내 알바비까지 쥐어주며 개인 교습을 진행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강의 글이 위험하다는 겁니다. 자신에겐 부재한 가족(특히 엄마)의 사랑을 느끼기 위해 의도적으로 세윤 가족에 접근하고, 관찰을 넘어 관음의 영역까지 선을 넘어버릴 듯한 모습들이 보입니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듯한 이강의 글에 문오는 “천박한 가십거리”라며 화를 내고 돌아서지만, 우연찮게 글의 소재인 세윤의 부모가 허문오의 역린을 건드립니다. 그 커플이 잘나가는 대학 동창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김수훈(허준호), 첫사랑 후배 안은주(김윤진)라는 사실을 알게 되죠. 그 순간 모든 게 달라집니다. 문학의 고결함, 작가의 윤리를 내세우던 그가 “진실의 작은 빈틈을 상상으로 메워야 한다”면서 멈추지 말고 글을 쓰라고 독촉하고 마감에 집착하기 시작합니다.
문오가 수훈의 내밀한 모습을 들여다보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문오는 자신의 삶이 수훈 때문에 망가졌다고 믿습니다. 수훈은 문오에게 평생의 라이벌입니다. 짝사랑하던 은주를 빼앗긴 데다 문학적 성취에서도 줄곧 수훈에게 밀렸기 때문이죠. 첫 번째 소설을 출간한 후 영감을 얻지 못하는 문오와 달리 수훈은 소설을 내는 족족 성공하며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가 됩니다. 사실 문오가 더는 글을 못 쓰게 된 데에는 수훈의 책임도 큽니다. 오래전 소설을 평가해달라는 문오의 요청에 수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할 얘기가 없으면 그냥 안 해도 되지 않아? 그렇게 살아도 괜찮잖어. 무엇보다도, 너 문장 공부부터 다시 해야겠더라.”
수훈이 심드렁하게 말한 순간 문오는 모차르트를 질투한 살리에리로 살게 됩니다. 서재에 틀어박혀 애써 과거를 잊은 척 살고 있는 이런 문오에게 이강이 가져온 작문 과제는 ‘수훈을 발가벗기고 싶은 기회’가 된 거죠. 아, 물론 이건 전부 문오의 생각입니다. 수훈은 딱히 문오를 라이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문오에 대한 수훈의 기억은 “그냥 과묵하고.. 늘 맨 끝줄에 앉았던 대학 동창” 정도가 전부거든요.

답습하면 모방에 머물고 벗어나면 배신이 되는, 매 순간 비교의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는 리메이크의 숙명을 고려하면 <맨 끝줄 소년> 제작은 처음부터 리스크가 꽤 큰 모험이었습니다. 한 번 완성된 세계를 다시 재구축하려면 소비자를 설득할 각색의 차별점이 있어야 하니까요. 이를 염두에 둔 가운데 원작을 읽어보면 각각 드라마 연출과 각색을 책임진 김규태 감독, 장명우 작가의 고민이 명징해집니다. 밑그림은 같지만, 칠해진 색채과 질감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최민식의 말을 빌리면 이렇습니다. “원작이 관음과 예술의 경계에 주안점을 뒀다면, <맨 끝줄 소년>은 한국적 스릴러와 서스펜스 요소, 인과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6부작인 이 작품은 3회쯤부터 원작을 완전히 떠나 독자적인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희곡이 고등학교 문학 수업을 배경으로 교사 헤르만이 제자 클라우디오가 친구 라파의 집을 훔쳐보는 이야기에 예술적 집착을 부리는 과정을 마치 독자를 미로에 던져놓은 듯 모호하게 늘어놓았다면, 드라마는 수훈의 집에서 벌어진 사건을 작문 과제로 추적하고 조립하는 서스펜스 장르로 치닫습니다. 이강의 펜 끝이 평범한 중산층 가정을 관찰하는 망원경에서 나아가 문오가 평생 외면하고 싶던 해묵은 열패감과 억눌린 치부를 날것 그대로 들추는 거울이 되는 것이죠.
특히 긴장감 넘치는 메타픽션 구조를 보다 실감 나게 구성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메타픽션은 등장인물이 작품 속 세계가 허구(픽션)임을 인지하거나,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다루는 장르입니다. 드라마에서 문오는 이강의 작문이 ‘소설’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읽기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실화라고 여깁니다. “다음에 계속...”으로 과제를 끝맺을 때마다 이강에게 전화해 다음 이야기를 내놓으라 독촉하고, 그마저 여의치 않자 자신이 필자가 되어 밤새워 글을 써내려 갑니다. 여기서 반전. 사실 이강은 문오를 향한 자신의 복수극을 완성하기 위해 그동안 명백한 허구의 이야기를 쓴 것인데도 말입니다. 재밌는 점은 시청자도 문오와 동일하게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절묘하게 흐릿해진 메타픽션 구성은 대학교수인 문오가 이강의 작문에 빠져들게 되는 이유에 설득력을 더합니다. 대학교수로 수십 년간 명품 글만 읽어오던 문오가 고작 새내기 학생의 글에 단숨에 빠진다는 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강이 치밀하게 문오의 열등감과 결핍을 건드리는 글을 썼다는 점에서 문오에겐 세상 어떤 글보다 와닿는 작품이 됩니다. 이는 원작보다 인물의 심리적 붕괴와 추락을 훨씬 더 정교하고 입체적으로 납득시킵니다.

문오가 이강의 글을 주로 읽는 서재 인테리어도 시각적 시너지를 더합니다. 마치 사방이 숨 막힐 정도로 빽빽한 책창에 둘러싸인 감옥처럼 보이고, 조명은 무겁게 깔려 있습니다. 평생 쌓아 올린 문학적 자존심의 성벽이자 동시에 스스로를 가둔 거대한 활자의 감옥이 바로 그곳입니다.
드라마를 완주했다면, 원작 희곡의 일독도 추천합니다. <맨 끝줄 소년>이라는 제목의 의미가 선명해지기 때문입니다. 원작에서 학생 클라우디오와 교사 헤르만은 작문의 제목을 두고 각각 <허수>와 <맨 끝줄 소년>을 제시합니다. 클라우디오에 따르면 허수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그걸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개념입니다. 헤르만에 따르면 맨 끝줄은 아무도 못 보지만, 거기선 모두를 조망할 수 있는 자리죠.
이강이 쓰고 문오가 마침표를 찍어 완성한 그들의 소설 <맨 끝줄 소년>에 대입해보면 깨닫습니다. 드라마 속 이강에겐 허구의 이야기지만 문오를 파멸시킬 수 있는 허수였고, 맨 끝줄에 앉아 모두를 조망한다고 믿었던 문오는 그저 가련한 관찰 대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요.
<맨 끝줄 소년> ★★★☆☆
※ 불 켜진 극장을 나설 때 비로소 쏟아지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영화의 만듦새부터 명연기의 순간, 영감을 주는 음악, 원작의 오묘한 변주까지. <유승목의 잔상>은 한 편의 영화에서 뻗어나가는 무수한 가지를 타고 온갖 이야기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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