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8만원짜리였나" 난리 났는데…판 뒤집은 '남자' 정체 [안혜원의 명품의세계]

입력 2026-08-01 16:00   수정 2026-08-01 16:09

"고작 8만원짜리였나" 난리 났는데…판 뒤집은 '남자' 정체 [안혜원의 명품의세계]

최근 프랑스 명품 브랜드 디올은 이른바 ‘8만원짜리 가방’ 논란에 휩싸였다. 이탈리아 밀라노 법원의 조사 과정에서 매장에서 수백만원에 판매되는 디올 가방이 현지 하청업체에서 개당 53유로에 납품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명품 가방의 가격과 실제 생산비 사이에 지나치게 큰 격차가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물론 53유로는 가죽 등 원재료와 디자인, 유통, 마케팅 비용을 포함한 전체 원가가 아니라 하청업체의 조립 납품가에 가까웠다. 그러나 일부 하청공장의 열악한 근로 환경과 불법 고용 정황까지 함께 드러나면서 논란은 공급망 전반으로 번졌다. 장인정신과 이탈리아 생산을 강조해온 디올의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불가피했다.

8만원 백 논란에 명품시장 소비 둔화까지 겹치면서 디올 실적은 급감했다. LVMH는 디올 실적을 별도로 공개하지 않지만 디올 실적이 포함된 모회사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패션·가죽제품 부문 매출은 논란 당시부터 역성장을 이어갔다. 명품업계에서는 디올이 코로나19 이후 시장 호황기에 매출을 빠르게 늘리는 과정에서 브랜드의 희소성이 약해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여성복을 맡은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와 남성복 디자이너 킴 존스 체제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디자인에 새로움이 부족해졌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조나단 앤더슨의 합류와 디올의 성장
분위기를 바꾼 것은 지난해 디올에 합류한 조나단 앤더슨이다. LVMH는 2025년 6월 앤더슨에게 디올 여성복과 남성복, 오트쿠튀르를 모두 맡겼다. 한 명의 디자이너가 디올의 전체 컬렉션을 지휘하는 것은 창업자 크리스찬 디올 이후 처음이다.

성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LVMH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디올 매출은 증가세로 돌아섰다. 미국과 일본에서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며 그룹의 대표 브랜드인 루이비통보다 높은 성장세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디올의 회복에 힘입어 LVMH 패션·가죽제품 부문 매출도 전년 동기보다 1% 증가한 89억유로를 기록했다. 증가 폭은 크지 않지만 일곱 분기 연속 이어진 매출 감소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시장의 관심을 끌었다.

LVMH는 디올의 반등 배경으로 조나단 앤더슨을 직접 지목했다. 회사는 올해 상반기 실적 발표에서 “앤더슨의 첫 디자인이 성공적으로 출발하면서 디올의 성장세가 빨라졌다”고 밝혔다. 특히 크리스찬 디올의 과거 드레스에서 영감을 받은 ‘시갈 백’과 새롭게 해석한 레이디 디올 등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앤더슨은 스페인 명품 브랜드 로에베를 다시 성장시킨 디자이너로 평가받는다. 2013년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취임한 뒤 가죽 공예라는 브랜드의 전통에 실험적인 디자인과 현대미술 감각을 더했다. 퍼즐백과 해먹백 등 대표 상품도 잇달아 내놨다. 앤더슨이 합류한 뒤 로에베는 한동안 존재감이 약했던 전통 가죽 브랜드에서 LVMH의 핵심 성장 브랜드로 올라섰다. 명품업계가 앤더슨의 디올행을 단순한 디자이너 교체가 아니라 브랜드 재건 작업으로 본 이유다.

앤더슨은 디올에서도 브랜드의 역사적 유산을 다시 꺼내 들었다. 크리스찬 디올이 즐겨 사용한 꽃과 정원, 구조적인 재킷, 풍성한 실루엣 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기존 인기 제품을 반복하기보다 과거의 디자인을 해체하고 다시 조합하는 방식을 택했다. 패션쇼에서는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화제를 만들고, 매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가방과 의류를 선보이는 전략도 병행했다. 브랜드 이미지를 새롭게 만드는 동시에 실제 판매로 이어질 수 있는 상품군을 함께 강화한 것이다.
스타 디자이너의 힘

디올의 반전은 침체에 빠진 명품업계가 스타 디자이너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도 보여준다. 코로나19 이후 명품기업들은 가격 인상과 매장 확대를 통해 매출을 늘렸지만 중국 소비 부진과 중산층 고객 이탈로 기존 성장 방식이 한계에 부딪혔다. 가격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할 이유를 만들기 어려워지자 브랜드의 이미지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 디자이너의 중요성이 커졌다. 샤넬이 마티외 블라지를, 구찌가 뎀나를 영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디올의 회복세가 장기간 이어질지는 아직 불확실하다는 평가도 있다. 중국과 유럽의 명품 수요가 뚜렷하게 살아나지 않은 데다 신임 디자이너의 상품이 실제 매출에 본격적으로 반영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공급망 논란으로 훼손된 신뢰를 회복하는 것도 과제로 남아 있다. 다만 디올이 디자인 쇄신을 통해 다시 성장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은 분명하다. 명품 소비가 위축될수록 소비자가 브랜드를 다시 욕망하게 만드는 상품과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걸 디올이 잘 보여준다.

안혜원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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