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왜 여태 안 팔았지?'…출시 40일 만에 100만개 팔린 '술' [권용훈의 트렌드워치]

입력 2026-08-04 12:00   수정 2026-08-04 13:11

'이걸 왜 여태 안 팔았지?'…출시 40일 만에 100만개 팔린 '술' [권용훈의 트렌드워치]


국내 최대 소주·맥주 업체인 하이트진로도 선뜻 내놓지 못한 제품이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소주와 맥주를 미리 섞어 캔에 담은 ‘완제품 소맥’이다. 소비자는 캔 하나만 열면 되지만 소주와 맥주를 모두 파는 종합주류업체에는 기존 제품 두 개의 수요를 한꺼번에 잠식할 수 있는 까다로운 상품이다.

4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선양소주의 ‘선양 오크소맥’은 출시 40일 만에 누적 판매량 100만 캔을 넘어섰다. 출시 닷새 만에 30만 캔이 판매된 데 이어 여름철 주류 성수기를 맞아 판매 속도가 빨라졌다.

선양 오크소맥은 라거 맥주에 선양소주의 오크 숙성 소주 원액을 섞은 제품이다. 알코올 도수는 일반 맥주보다 높은 5.7도다. 별도로 소주와 맥주를 구매하거나 비율을 맞춰 섞지 않아도 일정한 맛을 낼 수 있다는 점을 앞세웠다. 맥주 생산은 수제맥주 업체 세븐브로이가 맡았다.

완제품 소맥 시장을 선양소주가 먼저 파고들 수 있었던 배경에는 주류업체마다 다른 사업 구조가 있다. 선양소주는 소주가 주력인 지역 주류업체다. 자체 주력 맥주 브랜드가 없는 만큼 캔 소맥이 인기를 얻어도 기존 맥주 판매가 줄어드는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다. 세븐브로이 역시 제품 생산량을 늘릴 수 있어 양측 모두 새로운 매출을 확보하는 구조다.


반면 하이트진로처럼 소주와 맥주를 모두 주력으로 판매하는 업체의 계산은 복잡하다. 소비자가 소맥 한 잔을 마시려면 기존에는 참이슬이나 진로 한 병과 테라·켈리 등 맥주를 함께 주문해야 했다. 이를 캔 하나로 대체하면 신제품 매출은 늘지만 기존 소주와 맥주 판매량이 동시에 줄어들 수 있다.

하이트진로는 지낸해 매출 가운데 소주가 약 60%, 맥주가 약 30%를 차지할 정도로 두 주종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특히 소주 사업은 맥주보다 수익성이 높은 핵심 사업이다. 캔 소맥이 새로운 수요를 만들기보다 기존 제품의 소비를 옮겨오는 데 그치면 회사 전체로는 실익이 크지 않을 수 있다.

음식점과 주류 도매상도 변수다. 소맥은 한 사람이 소주와 맥주를 함께 주문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음용 방식이다. 완제품 소맥이 대중화되면 업소에서 판매되는 병 소주와 병맥주 주문량이 함께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 전국 유흥시장 유통망이 강한 대형 주류업체일수록 기존 거래 구조와의 충돌을 따져야 한다.

브랜드 조합을 정하는 문제도 있다. 하이트진로가 ‘참이슬·테라 소맥’을 출시하면 진로와 켈리 등 같은 회사의 다른 브랜드가 배제된다. 소비자가 각자 선호하는 비율로 술을 섞는 소맥 문화를 제조사가 하나의 맛으로 표준화하는 데 따른 위험도 있다.

선양소주는 이런 대형 업체의 딜레마를 비집고 들어갔다. 직접 맥주 사업을 키우는 대신 세븐브로이의 생산 기술을 활용하고, 기존 오크소주 원액을 소맥이라는 새 용도로 확장했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 업체가 캔 소맥을 만들 기술이나 면허가 없어서 출시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며 “기존 소주와 맥주를 각각 판매하는 것보다 수익성이 높은지, 유통망과 브랜드에 미칠 영향까지 계산해야 해 쉽게 뛰어들기 어려운 시장”이라고 말했다.
유행은 빠르게 번지지만 그 이면은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트렌드워치’는 뜨는 소비 트렌드 뒤에 숨은 업계의 전략과 시장의 변화를 추적합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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