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생을 전장에서 살았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베개 밑에 단검과 <일리아스>를 두고 틈날 때마다 읽었다고 한다. 그를 가르친 스승 아리스토텔레스가 시인 호메로스에 정통했으니, <일리아스> 옆엔 트로이 전쟁의 후일담인 <오디세이아>가 함께 놓였을 것이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삶의 끝단에 서 있던 정복자가 고대 서사에 매료됐던 이유는 뭘까. 아마도 그의 시선이 ‘신의 불멸’이 아닌 ‘인간의 필멸’을 향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무한한 삶엔 비극도, 그걸 무릅쓸 용기도 없지만, 유한한 운명은 더 나은 마침표를 찍기 위해 몸부림치기 때문이다.
5일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신작 ‘오디세이’는 북미 등 앞서 개봉한 지역에서 제기된 몇 가지 ‘원작 왜곡’ 논란을 품은 채 국내 관객과 만났다. 비판은 크게 언어·시각적 고증의 파괴, 할리우드의 고질적인 ‘블랙워싱’ 캐스팅 논란, 그리고 오디세우스가 아테나의 지혜를 빌리고 포세이돈과 맞서는 영웅과 신의 신화적 상호작용을 들어냈다는 점이다. 그 자리를 대체한 건 놀런 특유의 리얼리즘 연출이다.
오디세우스는 신에게 바치는 선물로 위장한 목마에 숨어 난공불락의 트로이 성을 함락시킨다. 이는 상호존중을 전제로 손님과 선물을 환대하는 미덕 ‘크세니아’(환대)로 맺어진 인간 사회의 보편적 신뢰를 깨뜨린 행위다. 오디세우스를 필두로 그리스인들은 속임수가 만연해지고 적으로 규정한 대상과 공존할 수 없는 ‘제로섬’ 사회의 씨앗을 뿌린 것이다. ‘신의 뜻’이라는 편리한 명분을 앞세워 참회 없이 영광만 챙겨 돌아갔다가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아가멤논(베니 샤프디)과 끝내 과오를 기억해낸 끝에 가족의 품에 돌아간 오디세우스의 모습은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선명하게 만든다.
맷 데이먼부터 페넬로페를 연기한 앤 해서웨이, 아테네 여신이 된 젠데이아, 안티노오스로 빌런이 된 로버트 패틴슨 등 화려한 출연진도 볼거리다. 특히 앞서 개봉한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을 봤다면, 스파이더맨과 퍼니셔로 찰떡 호흡을 보여준 톰 홀랜드와 존 번탈이 각각 이타카 왕자 텔레마코스와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로 진지한 호흡을 맞추는 모습에서 웃음 지을 수 있다. 그리스·이오니아 세계를 뒤흔든 경국지색 헬레네 역에 흑인 배우 루피타 뇽오의 캐스팅, 그리스어 한 마디 없는 영어 대사는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오디세이’는 지난달 17일 북미에서 개봉해,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전 세계 9억 달러가 넘는 박스오피스 수입을 거두며 흥행몰이 중이다. 다만 국내 흥행대박을 낙관하기엔 다소 조심스러운 면도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가 미국, 중국에 이어 한국이 세 번째로 큰 흥행 수입을 거둘 만큼 놀런의 팬덤이 탄탄한 시장이지만, 3시간에 가까운 긴 러닝타임과 건조한 연출, 다소 난해하고 철학적인 메시지는 지루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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