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회사'에서도 노조·성과급·파업을 둘러싼 불만이 나왔다. 차이는 불만이 향하는 종착지에서 드러났다. 직장 행복도가 높은 조직에선 평가 기준과 근무환경을 바꾸려는 목소리가 높았다. 반면 행복도가 낮은 조직의 경우 "어느 회사가 좋냐"는 질문처럼 이직·퇴사를 전제로 한 불만이 쏟아졌다. 회사 안에서 풀리지 않은 갈등이 노사 분규로 번질 땐 최소 9주 전에 '이상 신호'가 감지됐다. 이는 블라인드 AI를 활용해 지난해 1~12월 블라인드지수 상·하위 기업 구성원들이 공개 채널에 작성한 게시물 21만8000건을 분석한 결과다.
블라인드는 분석 결과를 통해 "좋은 회사는 문제없는 회사란 환상"이 확인됐다고 요약했다. 게시물 1000건당 '노조' 관련 언급은 블라인드지수 상위 기업군이 79.5건으로 하위 기업군(72.8건)보다 많았다. '성과급' 관련 언급은 상위·하위 기업군이 각각 62.6건, 66건을 나타냈다. '파업'은 상위 기업군이 32건, 하위 기업군이 35건으로 집계됐다. '연봉'의 경우 각각 32건·35.3건을 기록했다.
블라인드는 "최다 언급 키워드는 상하위 기업군 모두 동일했다"며 "상위 기업군 역시 노조·성과급·연봉·파업을 하위 기업군만큼 치열하게 이야기했다"고 분석했다. 행복도가 높은 조직에서도 보상·노사 문제는 피할 수 없는 화두였던 셈이다.
상위 기업군 재직자들은 재택(13.4건), 기숙사(15.9건), 통근버스(9.4건) 등이 관심 대상으로 꼽혔다. 하위 기업군 재직자들의 경우 같은 키워드를 각각 5.6건, 1.5건, 3.7건 언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위 기업군 재직자들이 퇴직에 관한 고민과 경영진을 향한 불만을 털어놓을 때 상위 기업군에선 재택근무·통근 여건을 논의한 것이다.
특히 '정년연장'은 상·하위 기업군의 관심사를 가르는 대표 키워드였다. 상위 기업군에서는 게시물 1000개마다 관련 표현이 평균 11.6건 등장했다. 하위 기업군은 0.6건에 그쳐 언급 빈도가 19배 이상 차이 났다. 상위 기업군 재직자들이 정년연장에 더 긍정적이란 의미는 아니다. 다만 행복도가 높은 조직일수록 정년연장을 비롯해 회사에 더 오래 머무는 문제를 비교적 활발하게 논의했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하위 기업군 재직자들은 '이탈'을 전제로 한 질문 게시글이 56.8건으로 개선(37.6건)보다 1.5배 더 많았다. 이 같은 추이는 모든 하위 기업군 회사에서 예외 없이 나타났다. 구성원이 불만을 말한다는 사실보다 회사를 바꿀 대상으로 보는지, 떠날 곳으로 보는지에 따라 직장 내 행복도가 나뉜 것이다. 블라인드는 "만족도가 높은 조직일수록 조직을 바꾸려는 논의가 활발하다"고 봤다.
이후 잠시 잦아든 관련 언급은 쟁의 발생 3주 전 '파업', 2주 전 '투표'로 다시 치솟아 평시 8배 수준에 달했다. 1주 전엔 주간 게시물 수가 평소보다 4.6배, 이탈을 전제로 한 질문은 18배로 급증했다. 회사 밖으로 갈등이 터져 나오기 전 최소 두 달가량 손을 쓸 수 있는 '골든아워'가 있었다는 분석이다.
위기는 갑자기 닥치는 것처럼 보여도 구성원의 행동은 일정한 순서로 바뀌었다. 블라인드는 이를 '간접 징후 포착→뉴스 수집→대상 여부 확인→조건 확인→이직처 모색' 등 다섯 단계로 구분했다.
실제 지난해 대규모 해고 등 전환기를 겪은 미국 직장인 데이터를 보면 초기에 재택 종료·채용 중단 같은 간접 징후가 포착됐다. 이후 레이오프·해고 뉴스를 찾으면서 접속 빈도와 체류시간이 급증했다. 발표가 가까워지면 성과 리뷰·등급을 확인하려는 게시물·댓글이 늘었다. 퇴직금과 대상 직급을 검색하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마지막엔 오퍼·추천서를 알아보면서 다른 회사를 조회했다.
신재용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사람을 회사로 오게 하는 것은 연봉이지만 사람을 머물게 하는 것은 정서적 연봉"이라며 "결국 기업의 지속가능한 경쟁력은 급여 수준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매일 경험하는 자율성, 성장, 인정과 존중, 그리고 건강한 조직문화에서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김대영/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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