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래미안트리니원 월세 물건을 찾는다는 고객이 있어 인근 중개업소 수십 군데에 모두 전화를 돌렸는데, 계약할 수 있는 집이 단 한 곳도 없더라고요. 입주를 시작한 대단지 아파트에서도 전·월세 씨가 말랐어요."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A 공인 중개 관계 대표는 최근 전·월세 시장 현장 분위기를 이 같이 전하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이달 입주를 시작하는 2091세대의 초대형 단지인 '반포래미안트리니원'을 비롯해 반포·잠원동 일대 부동산 시장이 심각한 전·월세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규모 신축 입주가 시작되면 전·월세 물건이 쏟아지면서 가격이 일시적으로 하락하는 이른바 '입주장 특수'는 옛말이 된 지 오래입니다. 공급 가뭄에 불안해진 세입자들의 조바심을 노린 전문 사기 범죄까지 기승을 부리며 서초구 일대 부동산 시장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월세 1000건 넘는다는데 실제론 '제로'…매물 증발
매물 정보를 가장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네이버부동산' 등에 따르면 반포래미안트리니원의 전세와 월세 물건은 각각 1000건 넘게 등록돼 있습니다. 그러나 현장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이 중 실제로 계약이 가능한 '진짜 매물'은 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동일한 물건이 여러 중개업소에 중복으로 올라오고, 손님을 끌기 위한 '미끼용 매물'을 제외하면, 실제 수급은 무너졌다는 전언입니다.래미안원베일리 인근의 B 공인 중개 대표는 "반포·잠원 일대에서 전·월세 구하기는 지금으로선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라고 전했습니다.

"당장 가계약금 입금 안 하면 넘어간다"…사기 사건 발생
전·월세 물건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다급해진 세입자들의 불안 심리를 파고든 사기 사건까지 발생했습니다. 반포래미안트리니원 일반 분양자를 사칭해 수천만원 상당의 가계약금을 받고 달아난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에 관할 경찰서에서 관련 사건을 여러 건 조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사기 일당의 수법은 일부 공인중개사까지 속일 정도로 치밀했습니다. 이들은 주민등록증과 분양계약서를 위조한 뒤, 자신이 실제 아파트 소유주인 것처럼 행세하며 여러 부동산에 물건을 내놨습니다. 특히 '보증금이 낮은 월세 물건이 귀하다'는 점을 겨냥해 보증금은 낮게, 월세 금액도 시세보다 조금 저렴하게 정했습니다.
이들은 '신축 분양' 현장이 원조합원이나 일반 분양자의 명단을 일일이 대조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이용했습니다. 재건축 조합이나 분양 사무실이 업무를 마감하는 '평일 오후 6시 이후'를 집중적으로 공략한 것입니다. 당사자 진위를 즉시 확인하기 어렵다는 허점을 악용해, 임차인들에게 "지금 당장 가계약금을 넣지 않으면 다른 대기자에게 매물이 넘어간다"며 계약 체결을 재촉했습니다.
이 같은 수법에 속아 가계약금을 보낸 피해자는 현재까지 최소 3명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피해액은 건당 수천만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뒤늦게 사실을 파악한 실제 분양자는 일대 부동산으로부터 '계약 진행 여부를 확인해달라'는 전화를 여러 차례 받고서야 범죄 사실을 인지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반포동에 있는 C 공인 중개 관계자는 사기를 당할뻔한 당시 경험을 전했습니다. 그는 "신분증과 분양계약서를 확인했지만, 급하게 가계약금부터 입금하라고 요구하는 게 어딘가 찜찜했다"며 "다행히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조합원을 통해 직접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사기를 면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시장에 매물이 워낙 없다 보니 임차인들이 매물을 놓칠까 봐 우선 가계약금부터 보내는 심리를 노린 것 같다"고 부연했습니다.
전문가 "월세화 현상 속 관련 제도 허점"
전문가들은 제도적 허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실수요자의 주의를 당부했습니다.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은 "월세화 현상이 계속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월세 수요에 비해 공급이 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수요가 많은 것과 달리, 미등기 상태인 신축 아파트에서 원조합원이나 진짜 분양자인지를 안전하게 검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허점을 이용한 범죄"라고 설명했습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 역시 "전·월세난으로 인해 세입자 사이 '패닉' 현상이 나타난 것 같다"며 "거래 가뭄에 시달리던 중개사마저 물건 확보에 급급해 검증을 소홀히 한 책임이 크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짚었습니다. 이어 "소유권 보존등기가 완료되지 않은 신축 아파트는 권리관계 원본 확인이 대단히 어렵다"며 "장기적으로 중고 거래 플랫폼처럼 보증금을 제3의 기관에 안전하게 예치한 뒤, 열쇠 수령과 최종 권리관계 확인이 끝난 후 임대인에게 전달하는 '에스크로(결제대금예치) 제도' 등 위탁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