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문을 모두 닫고 에어컨을 최대로 튼 채 정체 구간에 멈춰 서있어도 귀에 들어오는 건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뿐이었다. 정차 중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로 실내는 고요했다. 서울 도심에서 경기 의정부까지 왕복 약 60㎞를 달려본 볼보 순수 전기 플래그십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EX90은 '조용함' 하나만으로도 플래그십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지난 4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의정부를 오가는 구간을 달렸다. 내부순환로와 동부간선도로 등 정체가 잦은 도심 구간과 고속도로를 함께 주행했고, 폭염특보가 내려진 날씨 속에서도 에어컨을 최대로 가동했다. 대부분 운전자가 실제 마주하는 환경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조건이었다.

시승을 시작할 때 81%였던 배터리 잔량은 약 60㎞를 달린 뒤 71%를 기록했다. 폭염 속에서 에어컨과 오디오를 계속 사용한 점을 감안하면 일상 주행에서는 무난한 수준으로 느껴졌다.

이번에 시승한 모델은 최고출력 680마력의 'EX90 트윈 모터 퍼포먼스 울트라'다. 가격은 7인승 1억2120만원, 6인승 1억2320만원이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제로백) 4.2초 만에 도달한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자 몸이 시트에 파묻힐 정도로 즉각적인 힘이 쏟아졌다. 반면 평소 도심 주행에서는 배터리 효율을 우선하는 레인지 모드만으로도 부족함이 없었다. 퍼포먼스 모드는 필요할 때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여유처럼 느껴졌다.

주행 안정감도 인상적이었다. 차체가 큰 SUV지만 코너에서 불안하게 기울거나 무게감이 과도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회생제동 오토 모드는 앞차와 교통 흐름에 맞춰 감속 강도를 자연스럽게 조절했고, 정체 구간에서도 거슬리는 이질감이 크지 않았다.
다만 승차감은 다소 아쉬움도 남겼다. 잔진동은 효과적으로 걸러냈지만 다리 이음부처럼 단차가 큰 구간에서는 충격이 예상보다 선명하게 전달됐다. 플래그십 SUV에 기대하는 묵직한 승차감과 노면 대응력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긴 힘들었다.

이번 시승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것은 오디오였다. 25개의 독립 스피커와 돌비 애트모스(Dolby Atmos) 공간 음향 기술을 적용한 바워스앤윌킨스 하이 피델리티 사운드 시스템은 보컬과 악기를 또렷하게 분리해 들려줬고, 공간감도 뛰어났다. 영국 애비로드 스튜디오와 협업한 '애비로드 모드'에서는 공간감을 취향에 맞게 조절할 수 있어 같은 음악도 전혀 다른 분위기로 들렸다. 차가 밀리는 도심 구간에서도 음악을 듣는 시간이 오히려 즐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 같은 사운드는 뛰어난 차음 성능과 만나 더 큰 강점으로 이어졌다. 모터 소음은 거의 들리지 않았고 풍절음과 노면 소음도 효과적으로 억제됐다. 오디오를 끄면 실내가 더욱 적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폭염과 강한 햇빛 아래서도 냉방 성능은 만족스러웠고, 실내는 쾌적한 온도를 유지했다.

실내 인터페이스는 호불호가 갈릴 만했다. 대부분 기능을 센터 디스플레이로 조작하는 방식이라 자주 쓰지 않는 기능은 여러 단계를 거쳐야 했다. 특히 사이드미러 조절은 화면 메뉴에 들어간 뒤 핸들 버튼으로 선택해야 하는 방식이었는데, 운전 중 빠르게 조작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한 단계 더 거쳐야 하는 점이 번거로울 수 있다.
조절 방식 자체도 독특했다. 일반적인 차량처럼 거울면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미러 하우징 전체가 움직이는 구조였다. 반면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간결했다. 평소에는 속도만 표시하고 갈림길에서만 방향 안내를 추가로 띄워 시야를 방해하지 않았다.
안전 사양은 플래그십다운 구성이다. 5개의 카메라와 5개의 레이더, 12개의 초음파 센서를 기반으로 운전자 모니터링과 실내 승객 감지 시스템 등을 기본 적용했다. 짧은 시승이어서 모든 기능을 확인하기는 어려웠지만, 주행 중 시스템 개입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은 없었다.
EX90은 모든 면에서 완벽한 플래그십 SUV라고 하긴 어렵다. 화면 중심의 조작 방식은 적응이 필요했고, 일부 노면에서는 승차감의 아쉬움도 남았다. 그럼에도 조용한 실내와 뛰어난 오디오가 만들어내는 '머무르고 싶은 이동 공간'은 분명한 경쟁력이었다. 정숙한 공간에서 음악을 즐기는 시간은 단순한 이동을 넘어 하나의 경험으로 다가왔고, 그 점이 EX90을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이유였다.
의정부(경기)=신용현 한경닷컴 기자 yong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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